그랜드마스터 김태연 2 - 나비의 탄생
“My name is Tae Yun, Kim. I want to be your friend.”
23세 되던 해에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폭력을 못이긴 남동생의 자살은 가족들이 도망치듯 이민길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꼬박 하루를 날아 도착한 곳은 동부의 보스턴.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괴롭고 아팠던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온 땅이었기에 묘한 기대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뉴잉글랜드에 새 터전을 마련하고 식당과 주유소등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거듭하고 비록 하루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속에서도 그녀는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태권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My name is Tae Yun, Kim. I want to be your friend.” 라는 피켓을 든 채 미국인의 이웃집을 찾아 다니던 한국 여성이 바로 그 시절의 김태연이다. 그녀는 곧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태권도 실력은 그녀가 미국사회에 터전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한 달 동안을 쉬지않고 교장을 찾아간 끝에 미국 고등학교의 태권도 교사자리를 얻는다.
정(情)의 교육학

그녀의 삶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무술은 무술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를 가르치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정신 수양의 높은 경지를 이루기 위한 무도라는 점을 인식시켜 주었다. ‘Have a date flower”라는 식으로 미국적 사고로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 나름의 인성교육이 효과를 보면서 그녀는 체육 교사 뿐만이 아닌 도덕 교사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녀는 당시 60년대 말에서 70년대의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방황을 하는 미국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약과 섹스, 폭력에 절어있던 10대들에게 그녀의 놀랄만한 태권도와 정을 통해 아이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그녀의 명성도 올라갔다.
그녀에겐 5남 2녀의 자식들이 있다. 양자와 양녀로 그들에게 김태연은 가정의 따뜻한 정을 주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불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개 사제의 관계에서 모자간으로 발전하였다. 태권도 가족인 그녀 가족의 단수를 합치면 무려 30단이다.
몸은 미국인이지만 속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철저히 한국식으로 김치와 고추장을 먹으며 자란 그녀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Mom! We have an American body outside, inside Korean.”
그녀는 30년 이상 태권도를 가르쳤다. 그녀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의지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인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그녀가 받은 어떠한 상보다 더 빛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받은 무수한 상들보다 소중히 여긴다.
태권도는 1년도 되지않아 그녀가 미국인들과 같은 어깨높이로 사는 법을 그녀의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라이트하우스와 피크를 미국 100대 우량기업으로 성장시키고 500여명의 제자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정수원을 키운 것은 그들과 함께 였다.
실리콘 밸리의 신화
버몬트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의 심장부 산호세로 갔을 때 그녀는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진 물고기’였다고 회상한다. ‘그 뜨거운 모래판에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물고기.’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끼니마다 수제비와 고구마로 배를 채우며 산호세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간다. 그녀가 회사운영으로 고생할 때의 교훈을 들려준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난 다시 한번 농부의 교훈을 되새겼다.
지혜로운 농부는 씨 뿌릴 때를 놓치지 않지만,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도 안다. 피를 뽑아 줄 때는 피를 뽑고, 벌레를 잡아 줄 때는 벌레를 잡아 주고, 논물이 넘치지 않도록 적당한 때를 봐서 물꼬를 터놓기도 한다. 그리고 차분히 수확할 때를 기다린다.”
결국 현재 모토롤라, 시게이트, AT&T, 삼성전자 등 세계의 유명 업체들이 그녀 회사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미국 내 100대 우량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녀 회사의 이름은 라이트 하우스이다. 말 그대로 등대이다. 항해하는 선박이 등댓불을 보고 길을 잃지 않듯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일에 그녀의 인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터였다.그러기 위해 사업체만이 아닌 태권도장은 필요했다.
정수원은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갈고 닦아 정신의 조화와 안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정수원은 단순히 태권도의 형과 격파술 등의 외형적인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태권도를 가르치되 정신수양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기를 가르치고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도장과는 달랐다.
1987년에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연령층의 문하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무인의 길’이라는 비디오를 제작한다. 심공(心功), 형(形), 내공(內功)의 세편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것이다.
나비의 탄생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방법은 자연과의 호흡을 통해서 무술정신의 실체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을 수련의 도량으로 삼아 온 것은 정수원의 오랜 전통이다.
그녀는 ‘최후의 주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건물 안에서는 태권도의 신체적 원리와 자기조절의 수양법에 대해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말한다.
“ 창의력은 긍적적인 기 에너지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삶을 창조하기위해서는 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현실적으로 이루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기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쳐놓은 장애물 때문에 기 에너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의 기를 발견하고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기를 발견하고 기와 연결되면 외면적으로 낙천적이고 활달한 사람으로 변화할 것이고 내면적으로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쳐 놀라운 내면의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긍정적인 사고가 배양되고 스스로 결정하는 의지가 강해지며 비록 실패에 부딪쳐도 그걸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녀는 마스터 테스트라는 자아발견 이벤트를 만들었다. 정수원 사범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스터 테스트의 첫 관문은 한 움큼의 쌀과 사과 한 개, 한 모금 정도의 물이 담긴 수통을 건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으로 열흘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무술실력을 시험하는 과정으로 눈을 가린 채 유단자들과 대련하는 방법, 손을 등 뒤로 묶은 뒤 유단자와 대련하는 방법, 다음엔 격파력 테스트로 벽돌 여덟장을 팔꿈치로 격파하기, 열 겹의 유리를 정권으로 깨기, 다섯 장의 얼음벽돌 깨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두 사람이 쏜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내는 고도의 테스트가 치러진다. 마지막으로 기 수련의 정도를 시험하기위한 고난도 테스트는 오토바이 바퀴살을 양 팔꿈치에 꿰고 그것으로 양동이를 들어올린 후 떡갈나무 숯이 이글거리는 불 판 위를 걷는 시험이다.
송충이와 번데기라는 미숙한 과정을 거쳐 이젠 자신의 뜻대로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된 한 마리 나비로 깨어나는 절정의 순간이다.
금기에 도전한다.
그녀는 세계최초의 여성 그랜드 마스터이다. 또한 세계태권도연맹이 결성되고 1978년 국제태권도대회 시 연맹 측에 건의해 여성 부문을 만든 장본인이다. 1978년 국제태권도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여성이 태권도 한다는 데 야유하던 사람들에게 쩌렁쩌렁한 고함소리로 말한다.
“ 여긴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를 겨루는 신성한 자리입니다.”
곧 야유소리는 환호로 변한다. 세계태권도연맹 최초의 여성 마스터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1991년 5월. 태권도의 역사에서 기록이 된, 세계적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태권도 타임즈에서는 표지인물로 그녀를 선정한다. 최초의 여성 표지였다.
1994년 12월 30일. 세계무술마스터협회에서 그녀에게 그랜드 마스터를 인정서를 보내기에 이른다. 1995년 1월 7일 미주 무덕관 형제회에서 준 최고지도자상은 무술분야에서 노벨상 이상의 권위를 가진 상이다.
그렇게 그녀는 세계가 인정하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그랜드 마스터는 수련생들이 스스로 내면의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고, 발견된 내면의 힘을 이용해 달라진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목표이자 그녀가 가르치려는 것 전부라고 한다.

그녀는 미국정부로부터 무수한 상을 받았다. 게다가 중요한 봉사활동 3관 왕이기도 하다. 수잔 앤소니 상은 미국 여성들에게 여성의 인권을 위해 땀 흘리고 불우한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데 미국 내에서 이 상은 노벨상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상으로 그녀에겐 아주 소중한 상이다.
또한 마약퇴치운동에도 참여하여 조지 부시대통령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한다. 그녀에게 뜻 깊은 상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한인 공동체 사회로부터 받은 ‘Cultural Living Treasure’이다.
우리는 귀하의 사회적 공헌을 인정하면서 이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수원의 무술의 창시자로서 귀하는 세계적인 공헌자이며,
기 에너지의 마스터로서 귀하는 강인한 빛입니다.
귀하는 또한 작가로서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웠으며,
하이테크 컴퓨터 회사의 회장으로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귀하는 우리의 젊은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며,
한국의 딸로서 새롭고 더 나은 미래를 이끄는 희망입니다.
귀하는 ‘Cultural Living Treasure’ 입니다.
같은 핏줄에게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값진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다. 예수도 그의 고향에서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난 한국인이야. 난 한국인이니까 내가 세운 꿈을 이룰 수 있어.’ 그녀가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이를 악물며 되뇌었던 말이다.
그녀는 그랜드 마스터나 라이트하우스 회장 김태연이라는 이름보다 모국을 사랑하는 한국인 김태연으로 남고 싶어한다.
그런 그녀에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가 각 언론매체를 타고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특히 이 땅의 여성들은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 보고 싶어했다.
많은 한국의 여성들은 ‘김태연 다와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용기를 가지고 사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을 하고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녀 삶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용기인 것이다.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로 말이다.
수줍게 피어있던 달맞이꽃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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