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해 첫날 고추 없이 태어난 아이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나를 한 마리 나비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싶다. 송충이와 번데기라는 미숙한 과정을 거쳐 이젠 내 뜻대로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된 한 마리 나비.’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무술을 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남을 의식해서 잘 보이려고 하거나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자꾸 신경 쓰다 보면, 자기 자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아요. 자아를 잃어버리고 마는 거죠.”
“내면의 힘을 일깨워라”라는 그녀의 두 번째 책의 도입부에서 말한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태어나듯, 번데기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나비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우리도 나비처럼 자유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건 삶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다.
…번데기는 곧 나비의 ‘자아’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공포. 의심 같은 것에 가려져 아직 빛을 내지 못하는 자아가 있다. 나비가 되려면, 나비처럼 비상하려면 이 자아를발견해야 한다. 진정한 자아를 재발견해야 한다.
우린 모두 강하고 순수한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 의식 세계를 ‘사일런트 마스터’라 부른다. 자신의 그런 세계를 재발견하는 것은 자기 삶을 더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의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취해야 할 중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내적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노력하라. 자기가 정한 목표를 이룰 때까지 행로를 유지하면서 노력하라.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노력하는 동안 분명히 극복해 나가야 할 장애물과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장애물과 실수는 우리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그것들은 인내와 극복의 힘을 길러준다. 처음에는 약간의 희생과 두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진정한 의미에서 손실이 아니다. 희생을 통해 여러분은 자신을 더욱 순수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과 실수는 패배가 아니다. 승리로 이끄는 밑거름이다. 사일런트 마스터가 보여주는 힘은 사랑의 힘이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 놀라운 잠재력을 가져다 준다. 또한 사랑은 우리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풀잎처럼 여러분 각자는 자신이 준 생명력을 갖고 있고, 각자의 꿈을 실현시킬 능력과 힘을 갖고 있다.
내 가장 큰 바람은 여러분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으로 ‘평화와 기쁨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의 유산과 교통사고 등 몇 번의 죽을 고비 속에서, 150센티미터에 43킬로그램의 작은 아시아 여성의 몸으로 북가주 최고의 태권도 도장과 기 에너지센터를 이끄는 그랜드 마스터로 자리잡기까지 겪어야 했던 시련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괴롭고 힘들 때면 샤워실로 달려가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다짐했죠. ‘김태연. 지금 흘린 눈물과 함께 속상하고 아픈 것 다 흘려 보내는 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누가 저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면 전 속으로 그래요. 감사합니다. 저를 채찍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뚜렷한 목적이 한가지 있거든요. ‘엄한 집안에서 새해 첫날 고추 없이 태어나 천덕꾸러기로 자랐지만 언젠간 빛나는 사람이 되리라. 지금은 어렵고 눈물이 나도 언젠가 고국에 돌아갈 때는 큰 선물을 가지고 돌아가리라.’ 이런 다짐을 뼈 속 깊이 새기며 살았거든요.”
새해 첫날 고추 없이 태어난 아이
1946년 음력 1월 1일. 집안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경북 금릉의 명망 있는 가문의 첫 자손이 태어나는 날.
그러나 곧 “이를 어쩌나, 이를 어째. 암만 봐도 고추가 없네, 고추가 없어요. 저 년이 김 씨 집안을 망칠 년이지. 조상님 전에 차례를 모시는데 방정맞게 가시나를 낳았으니…”
새해 음력 제사를 앞두고 아들을 기대하던 집안 어른들에게 아들이 아닌 죄로 천덕꾸러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미역국을 먹지도 못한 그녀의 어머니와 이후 술에 탐닉한 아버지에게 그녀의 출생은 언제나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실망한 어른들의 구박은 말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외삼촌에게서 우연히 배운 태권도의 세계 몰두할 수 있었죠.”
태권도를 배우는 가시나
“가시나가 무슨 태권도는… 바느질이나 잘하고 수나 잘 놓으면 되지. 말도 안 되는 얘기는 다신 꺼내지 마라.”
“태연아 태권도는 힘든 무술이란다. 남자들도 배우기 어려운 거야. 다치기도 쉽고, 어쨌든 여자한테는 안 맞는 거야. 알겠니?”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건 한국전쟁 중이었다.
한국 전쟁 와중에 외가에서 지내던 어느날 새벽. 그녀는 호기심에 이끌려 문에 구멍을 냈다. 내 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으로 거무스레한 옷을 똑같이 입은 사람들이 또렷이 보였다.

외삼촌 두 분이었다. 세상이 다 잠든 새벽녘에 그녀의 외삼촌 두 분이 무술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엔 그 무술이 아름다운 춤으로 보였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동작 하나하나가 올올이 잘 짜여진 모시처럼 정교하면서도 힘찬 곡선을 그려내는 춤… 함부로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그 ‘정체 모를 신비한 춤’을 훔쳐보면서, 그녀는 막연히 그녀가 이룰 꿈을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 무술을 당수도라 부르기도 하고 태극권 또는 태권이라고도 불렀다. 외삼촌들이 당수도 고단자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수련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거기엔 아리랑을 부르며 덩실거리는 어깨춤이나 장터에서 보았던 탈춤과는 다른 어떤 힘이 실려 있었다.
정교한 모양새가 간간이 내지르는 기합소리와 어우러져 힘찬 곡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듯 호흡도 가지런한 외삼촌들의 모습은 함부로 엿봐서는 안 될 것 같은 신비스러움이었다.
그녀는 행여 외삼촌들에게 들킬까 봐 얼른 창호지 구멍을 메우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 일곱 살 어린 나이였던 그녀에게 한 가지 분명한 건 ‘저걸 꼭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날이 밝으면 외삼촌들에게 졸라야지. 외삼촌들은 날 귀여워 하시니까 분명히 들어주실 꺼야.”
날은 더디게 밝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싶은데 눈을 떠 보니 밖이 훤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마당은 아무 흔적도 없었고, 외삼촌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기 않았다.
외삼촌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그날은 참으로 긴 하루였다고 술회한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외삼촌에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물론 어른들께는 비밀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태권도는 오늘날처럼 통합된 형태와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수도 또는 공수도 등으로 혼동해 부르고 있었다.
소림권법에서도 남권이니 북권이니 파를 가르듯, 태권도도 뿌리는 같으나 전수하는 사범들의 기량과 무술관의 차이에 따라 자세나 기본기, 손발을 쓰는 수법 등이 조금씩 달랐다.
혹독한 훈련이 계속되면서 온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 성한 곳이 없었다. 난 피멍이 든 다리를 감추느라 늘 바지만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열 네 살에 마침내 도복에 검은 띠를 두르는 날이 왔다. 하늘을 곧게 가르며 머리 위까지 박차는 앞차기와 용이 꿈틀거리듯 힘있게 곡선을 그리는 돌려차기를 완벽하게 시연할 수 있었다.
기의 세계를 보여준 스승
검은 띠를 따고 난 후 그녀는 더 심오한 무술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세상의 배척, 심하게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었다. 남자들이 갈고 닦는 것이 상식인 태권도를 열 네 살짜리 계집아이가 검은 띠의 경지까지 수련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면서도, 금녀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온 파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의 반대도 대단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그녀는 진정한 자아에 대해, 그리고 그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서서히 눈을 떠 가고 있었다. 달리 말해 그녀는 이미 바느질이나 하고 음식이나 하는 평범한 여자와는 다른 길로 접어든 셈이었다. 그녀는 태권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보통 여자들이 취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나타난 사람. 김호라는 기의 권위자였다. 그는 신비에 가득한 고대 무술의 대가였다. 그분이 지니고 있는 신기는 불가의 선과 오천 년 동안 비밀스럽게 맥을 이어 온 한민족의 ‘기’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시작된 스승과의 인연은 그 후 10년 넘게 이어진다.
스승은 그녀의 상을 범상치 않게 여겼던 터.
”장차 뭇사람들을 가르칠 큰 스승이 될 것이다.”
후에 그 예언은 이루어진다.
그 스승이 가르치려고 한 것은 ‘고대 무술’이었다. 이를 테면 배달겨레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후 오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무술이었다. ‘무예도보통지’ 같은 전래의 문헌에 그 윤곽이 그려져 있는, 고구려시대의 수박도나 태껸과 오늘날의 태권도의 원형으로 짐작되는 그 무엇이 바로 그분이 말하는 고대 무술의 실체였다.
그렇게 산사에서 온 그분을 모시고 무술뿐 아니라 기의 세계를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그분은 그녀가 오늘날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도록 전통 무술의 오묘한 깊이는 물론이고 범상한 사람들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기의 세계를 가르쳐 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동작을 통해 우주의 순환 원리와 맞닿아 있는 몸 고유의 조화로움과 힘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승님은 그녀에게 호흡을 통한 자기 조절의 정수를 가르쳐 주었다. 이른바 명상법이라고 하는데 동트기 직전의 숲이 보여주는 고요함처럼 마음을 한없이 가라 앉히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마침내는 내 자신의 내부에서 퍼져 나오는 깊은 울림과 떨림을 깨닫는 수련이었다.
그것은 곧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해 내는 과정이었고 흔히 부르는 직관이나 영감이라고 부르는 잠재의식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명상법에 익숙해져 가며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과 분노, 증오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적과 이기기에 앞서 네 안에서 너울거리는 두려움과 나약함을 먼저 이겨야 할 것이다.”
스승님은 결국 ‘나를 이겨야만’ 진정한 대가의 길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결국 자기를 이기려는 노력을 통해 심안이 열리면서 아름다움과 자비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고도의 명상 훈련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이 ‘지혜의 소리’를 ‘사일런트 마스터’라고 일컫는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신비한 체험이 참으로 운명처럼 그 때 그녀의 앞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명상법을 통해 그녀는 지혜의 눈이 떠지면서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태권도도 다르게 인식되었다. 처음 외삼촌에게 태권도를 배울 때는 단순히 동작이 주는 아름다움에 반했었고 그 동작에 실려있는 어떤 힘에 매료되었었다.
어린 눈에 비친 태권도는 무술이었으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태권도를 무도로 인식하게 했다.
그때부터는 동작 하나하나를 연마해 갈 때도 우주의 삼라만상과 조화를 생각했고 힘의 원천인 자연계의 기와 내 속의 기를 합일 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태권도는 단지 신체단련의 수단을 넘어서 명상과 기 수련을 심화 시켜 주는 징검다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천여고를 어렵게 졸업한 그녀는 여전히 천덕꾸러기였고 태권도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당시 그녀의 태권도 실력은 이미 4단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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