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으로 제2의 삶을 시작합니다.
파란 만장한 무술인 조영주
불혹의 나이에 진정한 무술인으로 다시 태어난 조영주 사범. 이제 그가 극진가라데 사범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5월 1일 정식 오픈한 극진가라데 안산지부. 2년 여 간 극진가라데 전문인 수련반을 마치고 지난 3월 10인조수를 가볍게 통과하며 극진 1단을 획득, 20여년 무술인으로 살아온 그가 극진가라데 지도자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무술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살아온 그는 태권도는 기본, 검도와 택견 등 다양한 무술 수련하였을 뿐 만 아니라 카포에라, 사바트, 브라질리안 주짓수 등 타 무술에 대한 조예도 깊다. 그러나 무술을 좋아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무술을 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도 예외일 수는 없다. 게임잡지 기자, 자동차 엔지니어, 의류 오파상... 전혀 다른 업종을 넘나들며 살아온 그가 극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사업차 일본을 왕래하면서부터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몸담았던 일들이 모두 일본과 연관이 있었던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극진을 알게 됐고, 그러던 중 극진회의 김경훈 사범을 만나 수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노력하는 극진인, 그리고 극진을 사랑하는 무술인.
발목 부상은 기본, 갈비뼈도 몇 차례 금가고, 가슴과 다리에는 항상 멍을 달고 살았던 조사범. 서른을 훌쩍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극진가라데를 수련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아무리 태권도 유단자에 검도, 택견까지 수련하며 다져 온 몸이지만 나이를 속이지는 못했다. 게다가 실전무술을 지향하는 극진을 보호장비 없이 몇 시간이고 수련하다보면 순간의 방심이 부상으로 이어지기에 잠시도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극진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남보다 더 열심히 수련하며,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십 분 발휘, 극진가라데 일본어 서적 원문을 뒤적이며 보다 체계적인 이론과 함께 수련을 거듭,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극진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미 무토에서 "극진가라데를 배워보자"라는 연재 기획 시리즈 집필자로 잘 알려진 그는 이제 지도자로서의 삶을 착실히 다져 가고 있다. 수련생 한 명, 한 명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매일 수련일지를 쓰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고 보다 더 나은 수련지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도장이 잘 알려지지 않아 수련생이 몇 명 되지는 않지만 작은 도장을 하나 내고 흡족해 하는 그의 미소 속에 극진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본 기자와 친분이 있기에 "홍보 좀 적극적으로 해 보시지요!"라는 말에 "좀 쑥스러워서요.... 그냥 상록수 역 근처에 플랜카드 하나 붙여 뒀습니다. 수련생이야 뭐... 차츰 늘겠지요. 저는 그냥 열심히만 가르치렵니다. " 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부산에 본거지를 둔 극진회의 김경훈 사범이 처음 서울에 올라와 태권도장을 빌려 시작했던 극진가라데가 이제 사당본부를 시작으로 홍대도장에 이어 안산지부를 냈다. 게다가 올 여름이면 7~8개의 지부가 더 생길 예정이라고 한다. 빠른 속도로 확대 되는 극진가라데이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에게 극진가라데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무술인 듯 하다.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았던 최배달의 맨손으로 황소의 뿔을 절단 내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무술이 아니라 실전성을 최 우선으로 하는 수련 무술로서, 나약해져만 가는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극진을 한 번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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