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라스트 사무라이, 또는 스러져가는 벚꽃의 아름다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는 한마디로 말해, 일본 사무라이 문화에 바치는 할리우드의 경배다. 사무라이를 다룬 할리우드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사무라이와 무사도, 그리고 일본의 문화를 깊은 애정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라스트 사무라이>는 할리우드의 자본과 톰 크루즈 라는 걸출한 주연배우, 에드워드 즈윅 이라는 이미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에 와타나베 겐, 사나다 히로유키 등의 일본 유명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본적인 영화적 완성도를 이미 가지고 시작한 영화다. 게다가 무토(mooto.com)를 즐겨찾기에 추가한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필독영화의 목록에 추가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가지 덧붙여 두고 싶은 말은 세상에 범람하는 영화평이라는 형식의 글들은 그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안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 기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독자들 중에 영화를 볼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평은 여기까지만 읽고, 영화를 본 후에 다시 보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무사도란 무엇인가?
일본이 수 백년 동안 칼을 찬 사무라이의 나라였으며, 그 사무라이(侍), 즉 무사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선비(士)에 대응하는 계급이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에게 곳곳한 선비정신이 있었고, 그것을 우리가 지금도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에는 무사도(武士道, 부시도)가 있었고, 그것을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이 자랑스러워 한다.거부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시대인 21세기에 선비정신과 무사도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돈으로는 구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득과 손해가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 시대에 ‘너희들이 모르는 숭고한 무엇인가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사도가 일본 제국주의의 기본이념으로 악용이 되었다는 이유로 무사도를 폄하하는 견해에 기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본 기자, 꼴통 보수주의자들을 누구보다 싫어하지만, 한가지 잣대로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때로는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자, 민족주의자가 아니며, 민족주의를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때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칠 수도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일본국 총리대신’의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야스쿠니에 묻힌 전범(그들의 생각에선 순국선열이다.)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이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 영화에 나오는 무사도는 두 개의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사군이충(事君以忠)과 임전무퇴(臨戰無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라 화랑의 도덕규범이었던 세속오계 중의 두 가지 아닌가. 이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무사도인 것이다.
신식군대에 맞서 싸우지만, 언제나 천황을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는 카츠모토는 사군이충의 표본이며,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날아오는 총탄을 향해 전진하는 사무라이들은 임전무퇴의 표본이다. 이것이 ‘부시도’다.
일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모두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사도 또한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나, 어찌되었건 무사도는 무사도, 일본 사무라이의 도덕규범이며, 그것은 분명 일본의 것이다.
개화와 보수. 1876년, 조선과 일본의 사정.
이 영화는 천황을 배경으로 서양열강과 수교하며 세력을 키워가는 개화세력과 이것을 견제하는 구 사무라이집단의 갈등을 이야기의 축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시작되는 1876년은 어떤 해인가? 바로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해가 아닌가. 일본에서와 똑 같은 일들이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영화에서 나온것 처럼 일본은 20여년전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수동적인 개항을 하고 난 후,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뒤를 따라가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조선은 그 후발주자 일본에 의해 개국을 강요받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여.다시말해, 메이지천황은 고종황제에, 오구라의 개화세력은 김옥균의 개화세력에, 카츠모토로 대표되는 사무라이는 면암 최익현으로 대표되는 유생의병세력에 대비되는 것이다. 단발령에 저항하는 것마저 똑같지 않은가. 메이지 천황의 일본이 고종의 조선을 접수한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충신 최익현은 고종의 신식군대와 일본군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지만 그가 저항했던 대상은 고종황제가 아니고, 난신적자(亂臣賊子, 개화파)와 오랑캐(일본)였던 것이다. 이것은 카츠모토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 카츠모토가 할복으로 자살을 했다면, 면암은 단식투쟁으로 목숨을 끊었던 것.
어찌되었건,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Scene 1. 생 마린들을 향해 돌진하는 발업 질럿
개화의 물결에 휩싸인 일본의 신식군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파견되어 온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은 개화를 거부하는 사무라이 토벌에 참가한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네이든이 보기에 신식군대는 아직 훈련이 되지 않은, 다시말해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은 생마린에 가깝다. 마음만 급한 일본관료와 상급자의 억지에 의해 전투에 나서지만, 역시나, 결과는 신식군대의 처참한 패배. 엉터리로 소총을 사격하고 있는 신식군대는 메딕(medic)이 딸려있지 않은 마린(marine)을, 총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오는 사무라이들은 속도 업그레이드된 질럿(zealot)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의 첫번째 전투씬.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알그렌의 눈에 패장이 되어 할복하는 신식군대의 사령관과 그 사령관의 할복을 도와주며 거기에 예를 올리는 적들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시 오버랩되지만, 신식군대건 구식 사무라이건 그들은 모두 무사도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Scene 2. 산중에서 벌어지는 이종격투기- 앵클락에 걸린 톰 크루즈
사무라이의 포로가 된 알그렌. 사무라이의 지도자 카츠모토는 이방인인 알그렌을 죽이지 않고 교감을 나눈다. 조금씩 사무라이의 문화에 관심과 적응이 되어가는 알그렌은 카츠모토 일족의 검술 달인(사나다 히로유키)에게 목검으로 도전을 하나, 역부족임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는 달려들어 힘으로 이겨보려고 하나, 사무라이들이 검술만 수련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유술의 뿌리가 사무라이에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준다.히로유키는 달려드는 톰 크루즈를 넘어뜨려 멋지게 앵클락(ankle lock, 발목꺾기)을 성공시키고, 톰 크루즈는 깨끗하게 바닥에 탭을 두드린다. 이종격투기 애호가라면 누구나 눈을 크게 떴음직한 장면.
Scene 3. 옥쇄하는 사무라이들
스펙타클하다는 점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이고, 또한 가장 비장미(悲壯美)가 흐르는 장면.병력자체도 우세하고, 곡사포와 연발기관총등의 신무기로 무장한 신식군대에 맞선 사무라이들, 이들은 이미 자기들이 모두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옥쇄(玉碎)다. 영화에서 알그렌은 카츠모토에게 백만 페르시아 대군에 맞선 그리스 결사대를 이야기 했는데, 기자는 황산벌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선 백제의 계백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임전무퇴. 오로지 나아감만이 있고, 돌아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면서 또한 태평양의 미국함대를 향해 돌진하는 카미카제특공대를 연상한 것은 기자의 지나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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