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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故 최홍희 총재는 아들보다 태권도를 택했다.


미국 놀스캐롤라이나 이준혁 사범이 최총재 사망 이후 ITF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본인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작성한 글을 본사에 보내왔다. 무토는 오스트리아의 ITF 본부를 직접 방문하여 사실관계를 확인, 본 글을 개제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이 글은 이준혁 사범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무토의 편집방향과는 관계가 없음을 밝혀둔다.



최 총재와 담소하고 있는 놀스캐롤라이나이준혁 사범



해외에 있으면서 한국의 태권도 소식을 가끔 접하게 되는데 태권도 관련 신문이나 특정 인터넷 site의 기사 중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실들이 왜곡되어 독자들에게 잘 못 전달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충분히 있어 펜을 들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최 총재의 유언데로 새로이 추대 된 장 웅 ITF 총재가 추대되는 과정들을 지켜본 그 데로 적고자 한다.

요즘 신문 기사 내용들이나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보면 장 웅 ITF 총재에 대한 인신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고 궁국적으로는 남북 통일에 일익을 담당하자는 대의를 두고 미약하나마 내 가 본 사실 그대로를 적고자 한다.

본인은 2002년 9월 태권도 타임지(사장 정우진)의 기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김형석 박사(무도인 역사학자)도 같이 동행을 했다. 아들 최 중화 씨는 아버지 최 총재의 마지막 유언의 순간에도, 100일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2002년 9월 22일은 최 총재가 서거한지 10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100일제 겸 ITF 긴급 총회 문제로 42개국에서 각국 임원 진들이 모여들었다. 최 총재는 평양 외곽 지역 애국 열사능에 안치 되어 있었다. 묘비에는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최홍희, 탄생일, 서거일 그리고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태권도 전당에는 최 총재의 부인이 평소의 유물들을 모아 가져다 놓은유물들이 있었다. 그 유물들은 주로 패와 상장들이었고, 제법 규모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최 총재의 추모식과 ITF 긴급 총회 장소는 인민문화궁전이었다. 회의장은 7개국어가 동시에 통역이 되었고 시설 면에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국제적인 규모였다. 당시 생각에 북한에서 ITF를 전폭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최 총재님의 추모식은 평소 가까이서 뜻을 같이하던 ITF 임원진들 몇이 나와서 의견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악대들의 연주도 있었고,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 Video도 상영하였다. 행사는 짧았다. 그러나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추모식 이후 잠시 쉬고 바로 ITF 총회가 이루어졌다. 회의 내용은 최 총재의 유언을 실현하여 새로운 총재에 장 웅 선생을 추대하자는 것이 주 골자였다. 이기하 부총재가 총 회의를 열었고 황광성 부 대변인이 최 총재의 유언을 그대로 읽었다. 잠시 후 러시아 대표가 나와 최총재의 유언을 따라야 한다며 장웅 선생을 지지했고, 그리스 대표가 나와 장웅 선생의 추천을 환영하며 최총재의 유언을 따라 총재의 후보자로 조선인이 되야 한다고 했으며, 중국대표가 나와 현 ITF가 발전하려면 장 웅 선생 같은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지지를 했다. 이디오피아의 대표는 역시 장웅 선생의 선임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들이었다.

전날 밤무터 한 두 사람이 반기를 들고 있다는 애기를 들어 궁금해 하고 있었으나, 대세를 앞설 수가 없었는지 크게 나서지는 못하는 듯 했다. 결과는 장 웅 선생이 만장일치의 박수로서 ITF의 새로운 총재에 추대되었다. 박수를 통한 만장일치 통과가 조금은 비 민주주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웅선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회의를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도 아니었다.


장웅 총재는 카리스마있는 호인처럼 보였다. 대화에 있어서도 주제가 분명했고 부드러우면서도 직설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 이었다. 그는 타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의견이 다른 것은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을 하곤 했다. 그는 ITF 본부를 평양으로 옮길 생각은 없느 냐는 나의 질문에도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장 웅 총재는 최 총재의 유언에 따라 ITF 를 맡았지, 개인의 욕심으로 총재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북한에서의 유일한 IOC 위원으로써 국가의 부름에 따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그는 자의든 타의든 자기 임무에 사명감을 갖고 태권도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 홍희 총재님이 마지막 유언에 후계자로 장웅 총재를 지목 한 것은 국제적인 정치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총재자리를 이양해서 ITF 의 발전을 이루려는 뜻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총재님은 무었보다도 풍전 등화의 ITF를 반석에 올려놓는데 장웅 총재 같은 인물이 필요 했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 5

태권도 2003.12.23
이 준혁사범님은 절대 옳은 자입니다.
^^ 2003.12.24
어떻게...오스트리아 itf에가서만 취재를 하는건지? 무도언론 싸이트라는곳이 중립을 유지해야하는것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itf의 본부가 있으니 그곳도 취재해보시길!! 왜? 겁이나서 못가는감??
이 준혁 2003.12.30
"ITF 이준 혁 사범" ? 무토에서 실수 하셨습니다. 이 준혁은 ITF사범도 Member도 아닙니 다. 즉시 정정해 주십시오. 본인이 99년 10월"세계평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한민족 태권도 인들의 열린광장"을 주최하였는데 이 행사에 고 최총재께서 참석해 주셨고, 2002년에는 미국 태권도 타임지의 기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ITF나 평양을 배제하기 보다 는 열린 마음으로 그 분들과 대화를 해오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하시는 분들이 화합하여 남북화합에 일익을 담당했으면 하는 절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ITF,WTF를 떠나 순 수한 태권도인으로 말입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제가 목격한바를 발언 하였고, 앞으로도 사실이 왜곡되거나 태권도 발전에 해가되는 일이 저에게 발견된다면 서슴치 않고 나서겠 습니다. 이 준혁
없어 2003.12.30
무토에서 한 것인지 아니면 이준혁 사범쪽에서 한것인지 알고 싶군요. 그리고 그 글이 지워 져야 될 이유가 없는데 지워졌다는데 참으로 안타깝군요. 무토에서 답변을하던, 아님 이준혁 사범측에서 답변을 하던 이준혁 사범의 개인적인 문제 를 앞으로 국기원의 행정과 단증 발급의 효율성 그리고 단증 발급 절차 등에 대하여 계속 적인 글을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글을 지우는 것은 자율에 의한 것이지만, 개인적인 문제를 거론함에 정확한 답변 없이 지 웠다는 것이 심이 불쾌합니다. 곧 이준혁 사범의 국기원 단적부를 확인하는데로 그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단 심사를 한 것인지 따져 보고 또 만약 정상적인 단이라면 정중한 사과를 할 것이며 만일 비정상적인 단증이라면 끝까지 무토와 국기원 단체 등에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관찰 2004.02.17
글세, 이준혁이라고, 못들어 보던 이름인데,,, 허기사 정우진 고용인이라고 하였으니, 정우진씨 돈을 번 사람이지. 그러나 인색하기는 그지 없는 돈만 아는,,, 장웅이 호인이라고, 웃기지 마라, 내가 보기에는 주체가 없는 허수아비이다. 그러니 준혁아 그만 웃겨라! 아니면 또 정우진이가 시키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