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의 무술만화편력(4) - "띠를 꽉 묶어!"
쳄 코너에서 소개한 첫 작품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유도 만화 『YAWARA!』였다. 그 때 나는 96년도 당시의 일본 여행 기억을 언급했었는데, 오늘 또 다른 유도 만화 『띠를 꽉 묶어!』를 소개하면서 그 때의 기억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만화책을 잘 사는 편이 아니며, 어지간히 재미있는 만화라 하더라도 2번 이상 읽는 경우가많지 않다. 그런데 이 만화만큼은 유도황제 용소야라는 제목으로 필사본 해적판 만화책이 나오던 시절부터 따져서 수십 번을 읽었고, 비바!하이스쿨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권을 사모았을 정도로 좋아한다.
96년 일본 여행 때에는 마침 발행된 이 만화의 마지막 권 단행본을 뿌듯한 마음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술 서적 코너를 찾았을 때 일본 무술-격투기 만화에 대한 평론서를 발견했다. “야~ 일본에선 이런 책도 나오는군.”이라고 신기해하며 책을 펼치는데 반가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일본에서 연재중인 만화에 대한 대담 내용 중에 바로 이 만화 『띠를 꽉 묶어!』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있었던 것이다. 한 대담자가 “유도 만화라면 『띠를 꽉 묶어!』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다른 사람이 “아, 그 만화는 청춘물이지요”라고 받아치는 대목이었는데, 나는 웃으며 거기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띠를 꽉 묶어!』 - 카와아이 카츠토시 : 등장인물 총집합
현실적인, 너무나도 현실적인
『띠를 꽉 묶어!』는 타쿠미라는 유도에 푹 빠진 소년을 중심으로 유도를 좋아하는 고교 1년생들이 모여 만든 신생 유도부가 전국대회 우승까지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전형적인 학원스포츠물이다. 게다가 얼핏 봐서는 그림이나 스토리, 캐릭터 모두 그다지 강하게 어필하는 매력이 없는 만화이며, 실제로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얻지도 못했다. 하지만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만화가 냉혹한 일본 소년 주간 만화계에서, 그것도 소년 선데이라는 메이저 잡지에 거의 5년 간이나 장기 연재되었으니 이 만화에 무언가 ‘저력’이 있음은 확실하다.
나는 이 만화의 저력이 바로 리얼리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이 만화처럼 현실적인 소년만화를 본 적이 없다. 가끔 아, 이 만화는 상당히 사실적이구나 생각하게 하는 만화들이 있지만, 대부분 설정 등에서 작가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지 만화 자체가 현실적인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특히 독자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짧고 빠른 호흡에 맞춘 드라마틱한 연출을 상당히 과도하게 곁들이게 마련이고, 또 대부분 인물에게 천재성이나 특이한 성격, 능력을 부여해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그러다보니 극중에선 중고등학생에 불과한데도 프로급 때로는 거의 ‘초인’ 내지는 ‘괴물’ 수준의 능력을 지닌 캐릭터들과 필살기, 초필살기가 수두룩하게 등장하곤 한다.
『띠를 꽉 묶어!』에서도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천재적인 인물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저 녀석은 천재다’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고등학생 수준에서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천재라 하더라도 훨씬 더 많이 노력하고 연구한 상대에게, 때로는 마지막 한 순간의 방심으로, 때로는 더 대단한 천재에게 곧잘 고전하고 패하기 일쑤다. 또 고등학생답게 감정적인 기복도 심하다.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승부를 결정짓는다. 필살기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약간 특이한 기술이라고 해봐야 기술파 캐릭터인 사이토가 가끔 사용하는 관절기 정도일 뿐 현대 고교생 유도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만화만큼 유도 기술을 잘 묘사하고 있는 만화도 드물다
유도 교본 같은 만화
작가 카와아이 카츠토시는 실제로 유도 선수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 또한 작은 동네 유도 도장을 운영하는 지도자였다고 한다. 이런 풍부한 유도 경험은 이 만화를 더욱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매 경기 장면은 아주 섬세하며 실전적인 유도 기술의 공방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 어지간한 유도 초보자들에게는 기술 참고용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또, 작가는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유도에서부터 격투기로서의 유도의 모습을 골고루 그려내고 있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굳히기와 관절기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이는 유도를 모체로 한 그레이시유술의 대두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그레이시유술의 대부분의 기술은 이미 유도에 존재했던 기술이기 때문에 약간은 ‘유도가’로서 작가의 자존심이 발동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아마추어 레슬링과의 접목도 시도하는 등 깨인 시각을 보여준다.

일본 유도가 지향할 방향, 그런데 한국 유도 스타일과 비슷하잖아?! ^^
또한 유도가 점점 체중에 의지하는 스포츠가 되어가는 것을 우려하며, 외국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작고 선천적으로 근육이 다른 동양계(극중에서는 일본) 선수들이 올림픽 등에서 계속해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더욱 공격적이며 확실한 한판을 딸 수 있는 기술 유도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변한다(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것이 한국 유도의 특징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진정한 학원 로망
타쿠미라는 주인공이 존재하지만, 이 만화는 그의 유도가로서의 이야기이기보다는 하마나코 고등학교 유도부의 이야기에 가깝다. 타쿠미는 하마나코 유도부의 중심에 있긴 하지만, 경기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오히려 동료인 사이토 쪽이다. 후지타라는 타쿠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캐릭터도 존재하지만 특별히 대결 구도에 치중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이 현실의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이 만화만의 힘이다. 1995년인가에는 실제로 전일본고교유도선수권대회 포스터에 타쿠미가 등장하기도 했다.

사실은 이 만화야말로 청춘물이다!
이렇듯 이 만화는 하마나코 고등학교 유도부가 어떻게 실력을 키워나가고 어떤 상대를 만나 최선을 다해 승부하는가를 그리고 있지만, 그 만큼이나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이 만화는 ‘고등학생 유도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별활동으로 유도를 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그들의 학창 시절이 유도로만 도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때로 우연히 경기장에서 만났던 다른 학교 학생을 짝사랑하며 고민하기도 하고, 시험에 낙제 성적을 받을까봐 죽어라 공부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테니스부와의 두근거리는 합동 합숙 에피소드도 있다. 『띠를 꽉 묶어!』는 유도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래서 청춘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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