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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문화로써의 무술 아이콘 찾기 -그 놈의 변증법


“무인(武人)들이 무기(武器)를 부리는 기술로써 무예(武藝)라고도 한다.”
무술의 사전적 정의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무기 및 무술의 태동배경은 원시시대의 ‘생존’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고대의 수렵사회에서는 사냥감을 포획하는 도구와 기술들이 점차로 발달되었고, 이런 포획술의 발달은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호신 기술의 발달도 함께 가져왔으며 나아가 전투적 개념으로의 대인 방어술로 발전되었다. 위의 사전적 정의에는 ‘무기를 부리는 기술’이라고 한정지었지만 오늘날은 보다 광의적 개념으로 ‘맨손무술’까지를 아우른다. 본 사설에서는 ‘맨손무술’로 무술의 개념을 규격화하기로 한다.

Showing or Doing?


우리는 무술관련 사이트의 게시판 등에서 ‘실전(實戰)’에 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러한 논쟁에서 파생된 또다른 논쟁으로 인하여 얼굴을 붉히기까지 하는 사례들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이는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며 어쩌면 오늘날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게 될 과제일는지 모른다. 실전에 대한 계속적인 순환논증 속에서 ‘이종격투’의 스포트라이트는 실전상황에서의 ‘절대강자’라는 신비적 기대감을 제도해준다. 각 무술단체의 시합과 이종격투기 시합과의 대조적인 관심도는 사람들의 실전에 대한 신비적 기대감을 잘 대변해주는 실례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무술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생존이라는 실전상황의 전제하에 태동되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무술은 점차 생존과 멀어지게 되었고, 오늘날 무술은 전투복을 벗고 다양한 장르의 틈새-스포츠, 연극, 영화, 춤 등-를 비집고 들어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의상협찬을 받고 있다. 연극, 영화 등의 예술장르 이외에도 무술은 실전과 시범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이 실정이다. 단적인 예를 몇가지 들면 태권도의 경우 ‘시범 발차기’와 ‘시합 발차기’를 따로 지도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가 하면 우슈도 연무수련과 산타수련을 따로 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상당수의 무술이 보여주기 위한 수련체계와 시합 및 실전을 위한 수련체계가 따로 존재한다. 형(型)폐지론과 반(反)스포츠론의 등장은 현대무술 양분화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술 전체주의(全體主義)에서 탈피, 유연한 사고 필요


그렇다면 오늘날 무술이라는 아이콘이 가져야 할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규정지어야 하는가. 필자는 감히 “규정짓지 말자”에 추파(?)를 보낸다. 아니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 인정해 버리자”이다. (아, 이 약삭빠른 변증법이여……)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의 무술은 여러 장르로 스며들어가고 있고, 스며들어간 각자의 위치에서 아직까지는 ‘무술’이라는 확고한 영역을 유지한 채 나름대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실전위주의 무술 역시 몇 가지 제한된 룰이 있긴 하지만 인간 본연의 투쟁형태를 재현(再現)해가고 있다. 이러한 무술의 장르 데뷔와 재현은 투쟁을 근간으로 했던 무술의 특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전제한다. 즉 현대무술의 다양한 교집합적 문화성향을 인정하고 이러한 이해 속에서 무술도 하나의 거대한 문화컨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무술 뿐 아니라“무릇 ∼은 ∼해야한다”라는 근시안적 태도의 지양에서 우리는 또다른 삶의 거대한 사이클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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