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꿈꾸는가, 아니면 진정한 강자(强者)를 꿈꾸는가?!


새로운 무술에 입문하여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된 희망 사항이라면, 아마 모르긴 해도 상대를 통쾌하게 때려 눕힐 수 있는 ‘화려한 테크닉’을 갖고 싶은 마음일 것일 것이다.
실제로, 내가 수련하고 있는 ‘극진가라데’ 카페에 들어가 보면 심심찮게 접하는 것 중 하나가, “제가 지금 ○○무술을 수련 중에 있는데요 몇 달 수련해봤지만, 별로인 것 같아서요. 혹시 극진가라데를 수련하면 금새 강해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고수’란 ‘강하고 화려한 대련 테크닉을 보유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무술 수련자라면 한번쯤은 ‘눈 앞의 상대를 힘 안들이고 완벽하게 제압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그런 생각과는 달리 무술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는 초보 수련자들의 경우, 강해지려는 욕구가 지나친 탓인지 입문해서 사나흘 동안 애매한 샌드백만 죽어라고 두드린다거나,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헛된 손 동작, 발 동작만 열심히 하는 등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과는 정반대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왜? 강해지려는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상대를 앞에 두고 그렇게 열심히 수련을 하는데 쉽사리 강해지지 않는 걸까!? 또, 강해지는 것과는 정 반대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우선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앞서 다음 사항들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가령,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 그리고 C라는 사람이 동시에 입문했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자. 자신보다 오래 전에 입문해 이미 유색 띠의 소유자인 김 모 선배에게는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같이 입문한 B나 C에게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것이 평소 A씨가 갖고 있는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만약, 동기인 C와 자유 대련이라도 하게 된다면, 가벼운 발차기 하나라도 허용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절대로 C에게 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아마 타인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가 아니라면, 더욱이 자의에 의해 선택한 무술 수련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바로 도약을 막는 방해 요소일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
가령, C와의 쿠미테 수련에서 가끔 패했다고 해보자. 아마, 그렇다면 그날은 분한 마음에 잠자리까지 설치게 될 게 분명하다. 또,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기 위해 그 밤을 세워서라도 C의 약점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일 것임에 분명하다.
대련 때에는 다급한 마음에 상대의 약점을 찾을 시간도 없이 오로지 밀어붙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집에 와서 차분히 생각해보니 상대의 약점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 이제 생각해보니 그 녀석은 원래 선천적으로 왼발이 약했어. 다음 번에 또 대련할 기회가 주어지면 반드시 왼발만 노려서 하단돌려차기로 끝내버려야지’라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공략 방법까지 구상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다음 쿠미테 시간. 역시, 자신의 생각이 적중한 것일까? 이번 쿠미테에서는 C를 무난히 꺽고 승리자가 되었다.
자, 일단 여기서 잠깐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하자.
오늘은 도장에서 C군과의 쿠미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렇다고 해서 수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조폭과 붙었을 때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가라테는 게임이 아니라 무도이다.
무도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사를 건 싸움>이라는 가정 하에 창조된 것이다. 수련이란 바로 이 ‘생사를 건 싸움’에서 어처구니 없이 당하지 않기 위해 미리 단련을 하는 것이다.
그 단련의 극히 일부분이 쿠미테 수련이다. 하지만 쿠미테는 ‘생사를 건 싸움’을 가정하고 있지만, 썩 좋지 않은 시뮬레이션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쿠미테 수련이 좋지 않은 시뮬레이션일까? 그건 생사를 건 싸움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안전하게 유사 체험하게끔 함으로써 실제상황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실제상황을 충실하게 재현하자니 너무 위험하고, 목숨이 여분으로 몇 개 더 있어도 모자랄 형편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편의상, 슨도메 형식(상대의 면전에서 실제적인 타격 행위를 멈추는 스타일)을 취하거나, 보호구를 착용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신체의 특정 부위를 제한한 풀 컨택트 룰을 채용하여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불완전한 시뮬레이션 안에서 승부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승부에 집착하는 마음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가령, 보호구를 착용한 채 행하는 쿠미테의 예를 들어보자.
가끔, 별로 미더워 보이지 않는 심판이 지르기나 차기를 불문하고 단지 보호구에서 나오는 소리의 세기만 갖고 판정을 내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보호구를 맞춰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생긴다. 만약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상대에게 큰 대미지를 주기 위해 지르기나 차기 공격의 패턴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심판 판정 기준이 ‘그것(=보호구를 맞췄을 때 나는 큰 소리)’이기 때문에 커다란 소리를 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만약 길거리에서 마주친 폭력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이 내지른 발차기나 주먹 지르기의 효과음이 제 아무리 커도 자신이 내 지른 기술이 상대에게 먹히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과 마주친 폭력배가 배를 움켜쥔 채 땅 바닥에 나뒹구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자.
풀 컨택트 룰로 시합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일반적인 ‘풀 컨택트 룰’에서는 안면에 대한 주먹 지르기 공격은 금지하고 있다.
이런 룰이라면 안면 공격을 위한 지르기 자세나 동작들은 별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아니, 그보다는 그 룰 안에서는 가장 최적의 방어 체제를 취한 쪽이 승부상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그런 시합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무도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와 같이 룰을 이용하거나, 심판의 판정을 고려한 시합 방법을 무술 초보자가 익히게 된다면, 과연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힐 수가 있을까?
노력하는 자체는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노력인지 그 방향 만큼을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이기기 위한 노력이 아닌, 진정으로 강해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앞에서는 한 번도 따로 언급한 적이 없지만, 강해지고자 하는 노력과 이기고자 하는 노력은 분명히 말하건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맷집을 키운다는 것’은 강해지기 위한 노력의 하나의 방편이다. 맷집을 키우기 위해서는 평소에 복근이나, 허벅지 근육 등을 부단히 단련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실제 수련 중에 많이 맞아보는 연습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방적으로 맞는 다는 것은 승패가 걸려있는 시합에 있어서 곧 ‘패배’를 의미하겠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때리는 연습보다 오히려 맞는 연습이 절실하게 요구되어질 때도 있다. 많이 맞아 본 사람만이 때릴 때에도 아픈 곳을 골라서 때릴 수 있다.
강해지는 데에는 도장에서의 승부 따위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강해지기 위해서 가끔은 하루 정도는 도장에서 때리는 연습보다는 실컷 맞는 연습도 해보도록 하자.
‘진정한 강함’이란, 자신이 품어내는 기(氣)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 아닐까?! 실제로 강한 사람은 마주서기 전에 이미 전신에서 품어내는 기운 만으로 감지할 수 있다. 비록 그 사람이 지나치게 겸손하거나, 있는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있더라도 맞서서 단 몇 합만 주고 받아보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해진 룰 안에서 포인트를 따내는 시합 안에서의 강함이 아닌, 압도적인 우위에 있어서의 강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저 사람과 생사를 건 싸움이라도 하게 된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겠어’라고 마음 먹게 할 정도가 되어야만 진정한 강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무술을 수련 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나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 바로 이런 절대적인 강함을 추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지 않을까?
사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도장에서 하는 쿠미테 수련은 바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최종 목표도 아닌, 수단에 불과한 쿠미테 수련에서 승패에 연연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생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눈 앞의 고수를 원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한 강자를 꿈꾸고 있는지···?!
◆다음에는 <멘탈 트레이닝>에 대한 기사를 써보고자 합니다. 무술을 수련에 있어서 물론 육체적인 트레이닝도 중요하겠지만, 그와 병행해서 꾸준한 정신적인 트레이닝 역시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