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1) ‘김운용 독주 장기화’ 부작용 키워

①왜 ‘김운용’이 문제인가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 실패 후 터져 나온 이른바 ‘김운용 책임론’은 근본적으로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해 온 한국 스포츠 외교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김씨가 국회 윤리위 제소까지 검토되는 등 스포츠 외교는 또한번 도덕적 타격을 받은 채 변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세 차례에 걸쳐 김씨를 중심으로 한 우리 스포츠 외교의 현주소와 함께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국제무대 거물후광삼아 국내서 전횡 후계양성 막아


김운용 의원이 14일 자신의 평창유치 방해
의혹에 대한 국회 특위에서 답변하고 있다.

김운용(72)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부위원장이 ‘국제스포츠계의 거물’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30년, 국제경기단체총연합회 회장 9선, 국제올림픽위원 18년, 올림픽위 집행위원 3선 및 텔레비전 분과위원장 역임 …. 그리고 2001년에는 백인들의 아성인 국제올림픽위 위원장 자리에 동양인 최초로 도전함으로써 그의 국제적인 명성은 최정점에 달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국내 스포츠계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박정희 정권 시절 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스포츠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특히 김씨가 올림픽위원이 된 86년 이후 한국 스포츠는 곧 김운용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통한 영어실력과 특유의 추진력으로 국제올림픽위에서 영향력을 키운 김씨는, 94년 14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와 29차 국제경기단체총연합회 총회, 96년 세계생활체육 총회, 109차 국제올림픽위 총회(99년)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기구 회의를 한국에 유치했다. 또한 97년 전주·무주 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와 부산 동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해, 99년 용평 겨울아시아경기대회,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 유치에도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김씨에 대한 국내 스포츠계의 평가는 외국에서와는 딴판이었다. 9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10년 간 대한체육회 수장을 맡으면서도 스포츠 외교분야에 후계자를 키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정점으로 한 독주체제를 고수해 왔고, 국가적 이익을 앞세운 이면에서 개인적 이득 챙기기에 나선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 등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김씨가 최근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훼방론’에 휘말린 것도, 바로 이런 부정적 평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신만이 국제올림픽위 내부 사정을 안다며 다른 사람의 참여를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오만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스스로 키워 왔으며, 국내 스포츠인들은 물론, 각종 유치위원회 및 정부 관계자들과도 숱한 불신과 불화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한국 스포츠의 얼굴로 장기 집권하면서 비롯된 부정적인 측면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김씨는 93년 체육회장에 취임한 뒤 회장후보 1인 추천위원회를 만드는 등 회장 선거 규정을 바꿔 다른 경쟁자들의 진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한국 스포츠계 전반을 기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각종 의혹에 휘말려 한국 스포츠의 명예를 적지 않게 손상시켰다. 그는 98년 터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유치 스캔들에 연루돼 올림픽위로부터 ‘엄중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또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때 ‘오노 액션’ 파동으로 김동성이 금메달을 빼앗기다시피해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치달았을 때도 이런 국민적 정서를 무시하고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발언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이 사건이 계기가 돼 결국 체육회 회장직에서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특히 김씨는 올해 국제올림픽위 부위원장 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가 김씨의 국제적 영향력에 큰 기대를 걸었던 평창 유치위 관계자들과 불협화음을 빚었고, 이것이 결국 ‘김운용 책임론’으로 번지면서 전체 한국 스포츠 이미지에도 커다란 타격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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