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바람의 파이터’를 꿈꾸는 사나이(4)

한국 극진회 본부도장 개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도전


2001년 3월, 일본에서의 지도원 생활을 마치고, 5년 여 만에 귀국한 그는 일단 자신의 연고지인 부산 시내에 <한국 극진회 본부도장>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극진가라데 보급에 나섰다.

처음에 부산에 도장을 오픈할 당시만 해도 극진가라데 수련생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차츰 입 소문을 통해 극진가라데의 실전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입관을 원하는 수련생들도 꾸준히 늘어나 이제는 도장안이 꽉 찰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극진가라데가 사람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모 방송국에서 방영해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끌었던 <인간극장~고수를 찾아서>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그 프로그램에서 고수를 찾아서 전국 방방곡곡을 유랑하던 주인공 소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숨어있는 고수로써 세간에 얼굴을 드러냈다.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그도 은거한 고수에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어느덧 실력 있는 고수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극진가라데가 소문처럼 진짜로 강한지, 과연 알려진 것처럼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고수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은 때로는 견학을 핑계 삼아 수련시간 내내 의심에 찬 눈길로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입관을 가장해서 쿠미테 시간에 거센 도전을 감행해오기도 했다.

“혹시, 그런 도전을 받았을 때 겁이 난 적은 없었습니까? ”하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뇨, 저는 그런 기회를 통해 뭔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오히려, 좋은 기회구나 싶었습니다. ”

역시나 싶었다. 평소, 최 영의 총재를 존경하고 동경해오던 그에게 있어서 그런 답변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수련생들 앞에서 실전 대련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을 걸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직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일순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명백한 도전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로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과 당당히 맞서 정면돌파를 시도해보였다. 바로 그런 그의 자세가 오늘의 그를 잊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몰아치던 거센 도전도 어느덧 잠잠해져 갈 무렵, 월드컵 열기로 한반도 전체가 온통 들떠있던 2002년 6월 어느날 그는 서울 강남에 서울지부를 개설했다.

서울 지부를 개설할 당시만 해도 그를 아는 지인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면서 서울 지부 개설 시기를 좀더 늦출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기적으로 ‘월드컵’이라는 초특급 태풍이 한반도 중앙을 강타하던 시기였으니, 누가 보더라도 다소 무모하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지부도 처음 부산에서 극진회 한국본부를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 여섯 명 남짓한 수련생들과 함께 조촐하게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어쩌면 다소 무모해 보이는 그의 그런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불과 1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지금 서울에도 이 만큼 번듯한 극진가라데 전문수련도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총본부 승단심사, 피 말리는 30인 조수!!


지난 3월, 그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던 제자와 함께 총본부에서 주최하는 승단심사에 응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제자가 도전하는 단수는 1단, 그리고 그가 도전하는 단수는 3단.

사실, 극진가라데의 승단 심사는 타 무술 승단 심사에 비해 종목도 다양하고 심사 판정도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고 한다. 기본기나 형 심사의 경우에는 타 무술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타 무술 승단 심사에는 없는 종목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물구나무 서서 걷기(왕복 12m), 점프해서 볼차기, 봉 넘기, 유연성 테스트, 정권단련 테스트, 그리고 마지막 관문으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실전 쿠미테(자신이 취득하고자 하는 단 수의 10배에 해당되는 인원과 맞선 실전 대련) 등등.

사실, 그는 연초부터 도장 이전 문제와 개인적인 이유 등 바쁜 일정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심사준비를 못해서 승단 심사 자체를 다음 기회로 미루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제자가 승단심사를 봐야 하기 때문에 총본부까지 동행할 수밖에 없었고, 기왕이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자’는 생각으로 승단심사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본기나 이동수련, 또 기타 심사 종목들이야 평소에 수련생들과 늘 함께 하던 수련 내용이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큰 부담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이 3단 승단 심사의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30인 조수’였다. 30인 조수에 임하는 상대는 짧게는 3~4년에서 길게는 1~20년이 넘는밤색 띠와 검은 띠의 고수들. 더구나, 상대의 기술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자신의 기술과 체력만 믿고 밀고 들어갈 수도 없다. 3단 승단 심사를 봐야 하기 때문에 30인 조수에는 반드시 응해야만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과연 그와 어깨를 견주면서 쿠미테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쿠미테 연습이 됐을 리가 만무했다.

30인 조수의 요령은 힘의 안배에 있다고 한다. 무턱대고 초반부터 무리하게 힘으로 밀어 부치다 보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힘에 부쳐서 제대로 된 실력을 구사할 수 없게 된다. 또 그렇다고 해서 초반에 소극적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극적으로 하다 보면, 바로 태클 아닌 태클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심사를 관장하는 이들로부터 바로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체력적인 소모를 줄이면서 최소 21명으로부터 승을 따내야 한다(승률 7할). 나머지 상대에 대해서도 유효나 판정으로 누르고, 패배 수를 최소한도로 억제해야 한다. 30인 조수에 임하면서 그는 나름대로 작전을 세웠다. 시간 절약과 체력 안배를 위해서는 초반 승부가 적절했다. 한 명을 상대로 1분이라는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탐색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 두 차례 몸을 섞어보고는 바로 자신의 페이스 대로 상대를 몰아 부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세운 작전 대로 초반부터 포인트 위주로 몰아 부치면서 틈을 보이는 상대에게는 과감하게 밀고 들어갔다. 적절하게 체력 안배를 해가면서 쿠미테에 임해서인지 중반까지는 비교적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중반을 넘어서면서 숨 고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지쳐가는 자신을 느꼈다. 고수를 상대로 한 30인 조수는 그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평소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지만, 승단 심사라는 부담감에서 오는 긴장감도 한 몫 했으리라.

그는 지쳐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한 몸을 추스르면서 마지막까지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으면서 최선을 다했다. 한번 주어진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그의 그런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30인 조수를 무사히 끝마쳤고, 총본부로부터 좋은 성적으로 3단 승단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아냈다.


평범한 사람은 엄두조차 못 낼 빡빡한 스케줄!

그의 스케줄 표는 언제 살펴봐도 항상 빡빡하기 그지없다. 일주일에 절반은 부산에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서 보내야 한다. 사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것만으로도 벅찬 스케줄일 텐데, 극진가라데 보급을 위해서 뭔가 하나라도 더 챙기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벤트 준비에도 실제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는 평소 좁은 강남도장에서 자신이 뻗어낸 발에 앞 사람이 맞을까 두려워 발차기 하나도 속시원히 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에게 못내 미안하고 아쉬운 맘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빠른 시일 내에 서울에서도 극진가라데 전문 도장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주 금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상경해서 수련시간 전까지 서울 시내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도장으로 쓸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선지 어언 3개월 여 만에 겨우 서울 사당동에 극진가라데 전문도장을 마련했다.

또, 5월에는 각각 부산과 서울에서 ‘야외수련’ 행사도 무사히 끝냈다. 이제 곧 6월 하순 경에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승단심사도 개최해야 하고, 또 8월에는 일본 대마도(쓰시마)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아리랑 축제’에서 선보일 시연을 위한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

9월에는 역시 한국 최초의 ‘극진제(교류시합의 성격으로 대회 도중 깜짝 이벤트도 선보인다)’가 개최된다. 처음 개최되는 교류 시합인 만큼,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 ‘극진가라데’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야만 한다.

그리고, 11월 1~3일까지 사흘동안 일본 동경에서 개최되는 ‘제 8회 전세계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출장하기 위해 나름대로 개인적인 트레이닝도 해야만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렇다고 그의 성격상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대충 넘기며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

그는 오는 11월 1일~ 11월 3일까지 3일간 일본 동경(도쿄체육관)에서 개최되는 ‘제 8회 전세계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그는 사실,지난 3월 총본부에서 3단 승단 심사에 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뭇 진지한 태도로 50인 조수에 임하던 어느 극진 지부장의 투혼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그는 이번 세계 대회 출장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을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나이 50세라던 어느 지부장의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이다.그 나이에도 젊은이들 못지 않은 진지함과 정렬적인 투혼은 승단 심사에 임했던 모든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실제로, 문장규 관장도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듯 심사 서류와 얼굴을 몇 번이나 비교해 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어쩌면 극진가라데는 수련하는 이들에게 육체적인 강함은 물론이려니와 이렇듯 정신력까지도 한 단계 업 그레이드 시켜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못내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그도 50세의 이름 모를 어느 지부장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고 한다.

그는 일단 자신이 세운 계획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자 마음 먹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강함이 아닌,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참된 강함,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샌드백 앞에 섰다.

이 시대의 진정한 ‘바람의 파이터’를 꿈꾸면서···!!

댓글 6

날림 2003.06.26
벌써 마지막 회라니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배 우는군요... 앞으로 계속 그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시길 바랍니다. 전통 가라데 수련생이지만 저도 언젠가는 30인 조수 같은 걸 하는 날이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며 이만 씁니다
조영주 2003.06.27
저희 도장에 몇명의 외국인이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두 분이 예전에 전통가라데를 수련하셨던 분인데...혼자서 몸풀기 할 때나 수련이 끝나고 나서 가끔 도장에서 전통가라데의 기본기나 형 연습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보면 전통 가라데도 나름대로의 멋과 품격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기억으론 현재 님은 일본에서 유학중이면서 전통가라데를 수련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 데..공부는 물론이려니와 머나먼 타국땅에서 기본적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수련 또한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그럼.. 오쓰~~
vedal71 2003.07.17
작년에 저는 극진의 소문을 듣고 서울 강남에 위치한 극진 가라데 서울지부 도장을 방문 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년때 처음 소년지에 실린 최배달 선생님의 기사를 읽은 후 그에 대한 동경심으로 한국에 나와있던 최배달 이라는 거인에 대한 모든 자료는 빠짐 없이 읽어 보았고, 무예에 대한 한 없는 동경심과 그것을 생각만하여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국내에는 가라데, 라는 무술이 생소하였었고, 또 아는 사람일지라도 일본무술 이라는 이유로 근거없이 등한시 하였던 터라 극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 던 중 극진 서울지부에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 김경훈 사범님을 보았을 때에는 순진 하게 생긴 얼굴에 둥글한 체격이 왠지 모르게 고수같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러나 막상 도장에 등록한 후 수련을 하다 보니 제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생각이 변하 였습니다. 김 사범님은 저하고 나이가 같으신데 그 열정과 실력은 그를 지켜보며 수련을 하던 저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 후 몸이 좋지 않아져서 병 원 신세를 진 후 한 번도 수련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한국 극진에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 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비록 짧은 한 달의 수련을 하였지만 무도의 본질을 좆아 행하 는 극진과 김경훈 사범님의 열정은 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 다. 그 어느 세계이든지 참된 본질을 좆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얻게되는 것 같습니다. 극진 가라데와 김경훈 사범님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한국 극진가라데의 무궁한 발전을 바랍니다.
끄덕끄덕.. 2003.08.27
우와..
이택곤 2003.09.04
왜 광주에는 극진가라데 도장이 없나요 ? 섭섭합니다... 극진가라데 책자 있으면 모조리 보내줄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쿄쿠신카라테 200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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