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의 무술만화 편력(1) - YAWARA!
야와라짱 타무라 료코

타무라 료코(머리 모양에 주목! ^^)
얼마 전 무토에서는 일본의 유도 여왕 타무라 료코가 사상 최초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6연패에 도전한다는 뉴스를 전한 바 있다. 146㎝의 키에 48㎏의 체중에도 불구하고 상대할 자가 없으며, 거의 모든 유도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천재라 불리우는 타무라 료코는 1990년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후쿠오카 국제유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후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도인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는 지 충분히 금메달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92년, 96년 올림픽에서 모두 은메달에 머물렀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야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첫 출전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4년 후 "이번에야말로!"라고 다짐했던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마저 느닷없이 나타난 북한의 신성 계순희에게 판정패하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이다. 특히 96년 당시 타무라 료코는 계순희 선수에게 패하기 전까지 국제대회 84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다.아틀란타 올림픽이 한창이던 그 때 나는 마침 일본 배낭여행 중이었다. 타무라 료코 선수의 인기는 지금도 그렇지만,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그 때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해서, 당시 남자 유도 선수 대표였던 코가 선수와 함께 그가 "감밧테시마쓰(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치는 기린 맥주 광고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당시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버스 광고가 없을 때였기 때문에,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에 달려있는 광고판을 보며 "와∼ 저런 식으로도 광고를 하네"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요코하마 유스호스텔에서 아침을 먹다가 TV에서 애니메이션 <YAWARA!>가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YAWARA!>는 천재적인 유도 감각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유도보다는 평범한 여자의 행복을 꿈꾸는 주인공 이노쿠마 야와라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로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으며 국내에서도 (당시에는 해적판으로 소개되었지만) 많은 팬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이 만화의 팬이었기 때문에, 왜 TV에서 <YAWARA!>를 방영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주인공 야와라에 버금갈만한 천재성 때문에 당시 일본에선 타무라 료코를 야와라짱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았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타무라 료코가 만화의 야와라처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애칭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 야와라의 도복 입은 옷맵시나 머리 모양(운동할 때 거슬리는 앞머리만 위로 묶어 올린 속칭 야자수 머리), 제스쳐 등 모든 부분이 타무라 료코처럼 바뀌어 있었다.
최고의 스포츠 만화

이 만화의 진정한 테마는 사랑(!)이다
<YAWARA!>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의 영지(Young誌 - 대학생에서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만화 잡지를 이르는 말)인 <Big Comic Spirits>(小學館)에 연재되었고, 타무라 료코가 데뷔한 1990년에는 ‘小學館 漫畵大賞’을 수상했다. 이 만화의 작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라사와 나오키(대표작 : <파인애플 아미>, <마스터 키튼>, <해피>,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로, <YAWARA!>는 그 때까지 약간 매니아 성향의 팬층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대중적인 인기까지 안겨다 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사실 이 만화는엄밀히 따지자면 로맨스물이다. 이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와라와 남자 주인공인 마츠다(그는 아직 대외적으로 유도를 하지 않던 시절의 야와라를 발견해낸 3류 스포츠신문 기자이다)의 사랑이 이루어지느냐이기 때문이다(작가는 주인공이 유도 천재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유도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도를 하고, 이야기도 주인공의 유도 인생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유도 경기 장면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역시 유도 만화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특별히 전문적인 유도 지식이나 기술적 전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박진감과 감동은 그 어떤 스포츠물 만화보다도 뛰어나다(혹자는 <슬램덩크>보다도 <YAWARA!>가 한 수 위라고 평하기도 한다).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워낙 드라마틱한 구성과 연출에 뛰어난 작가인 까닭이다. 게다가 주인공 야와라가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에 따뜻한 서민적 정서를 담고 있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한 할아버지 이노쿠마 지고로(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와 이름이 같다)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코믹 연기 등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만화의 미덕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만화의 진정한 매력이다.
감바레요, 야와라짱

야와라와 타무라 선수의 주특기이며 유도 기술의 대명사인 업어치기
<YAWARA!>라는 만화를 너무나 재미있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96년 당시 나는 또한 타무라 료코의 팬이기도 해서 올림픽에서 그가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의 결승전이 있었던 날, 유스호스텔 휴게실에서 타무라 료코가 북한의 신예 계순희 선수에게 패했다는 TV뉴스를 본 순간. 나의 감정은 복잡미묘 그 자체였다. 야와라짱이 지다니 서운하기도 하고, 북한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니 기쁘기도 하고…. ^^
하지만 그런 복잡한 감정은 곧 말끔히 사라졌다. 나이 열여덟, 그 때까지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한 번도 없던 말 그대로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던 계순희가 호랑이 타무라 료코를 이기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요"라는 당찬 한 마디를 남긴 것이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파워 플레이(지금은 그 빛이 조금 바랜 감이 있지만, 당시 계순희 선수와 같이 연습했던 우리 선수들이 그를 두고 "마치 전봇대를 붙잡고 연습하는 것 같다"라고 한 바 있다)를 본 그 순간, 어느새 나는 계순희 선수에게 빠져들어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취침 시간이니 조용히 하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관리인한테 구박받았더랬다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와라짱은 야와라짱. 타무라 료코는 국적을 떠나 정말로 응원하고 싶은 훌륭한 선수이다. 그가 올 9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전하기를 바란다. 감바레, 야와라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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