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파이터’를 꿈꾸는 사나이(2)

한국 극진회 총본부, 김경훈 사범

김경훈사범의 스승, 아베사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강렬한 눈빛을 지녔던 스승, 아베 사범(왼쪽 사진)과의 첫 만남. 그리고, 평소 그가 그토록 동경해왔던 ‘극진가라데’와의 조우, 낯선 도장 풍경. 일순간, 멍해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왼쪽 가슴에 검정색 자수로 <극진회(極眞會)>라는 로고가 또렷하게 새겨진 도복을 입은 수련생들이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막 수련을 시작하고 있었다.이 모든 것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선명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역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어” 그렇게 그는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수련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정말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꿈은 아닌지 의심스러워 자신의 뺨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역시 꿈은 아니었다. 견학을 마치고 자치 집에 돌아온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하게 될 수련 모습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는 빨리 날이 밝아 오기만을 내심 기다렸다.
다음날, 그는 들뜬 마음을 억누른 채 입관비를 들고 도장으로 향했다. 자전거로도 40분이 넘는 그 먼 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갔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입관 수속을 마치고 받아 든 도복. 비닐 포장을 벗기고 접혀 있던 도복 상의를 펼쳐보니 왼쪽 가슴에 자수로 촘촘히 새겨진 <극진회> 로고가 그대로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올 것만 같았다. 어제 저녁 참관 때에 수련생들이 입고 있던 그 도복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이제 자신도 극진회 로고가 새겨진 도복을 입고 제대로 된 극진가라데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잠시, 그는 감격에 목이 다 메이는 듯 했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수련하면 반드시 노력한 결과는 있을 거야. ”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김 사범의 초창기 일본 생활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삼중고(三重苦) ’였다고나 할까? 밤늦은 시각까지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에, 부족한 잠으로 인해 항상 졸음을 참아가며 받아야 하는 일본어학교에서의 수업, 그리고 도장에서의 극진가라데 수련. 무엇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으며, 또 무엇하나 소홀히 할 상황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손짓과 발짓, 그리고 눈치로만 따라잡아야 하는 극진가라데 수련이란, 사실 누가 생각하더라도 순간 순간이 한계 상황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꼈던 것은, 오래 전부터 전통 가라데 수련을 해왔던 까닭에 이미 무술 수련에 대한 기본적인 적응 능력이 몸에 베어있던 상태였고, 극진가라데 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급수별 수련 시스템’ 덕택이었습니다”
‘극진가라데’의 수련 체계는 크게 준비운동, 기본기 수련, 이동수련, 쿠미테 수련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본격적인 수련에 앞서 시행되는 ‘준비운동’과 ‘기본기 수련’을 제외하면, ‘이동수련’이나 ‘쿠미테 수련’, ‘형 수련’ 등은 각각 급수에 맞춰 따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극진가라데의 수련 체계(시스템)는 전 세계 어느 지부에서 수련을 하던지 동일하다. 그만큼 기본 커리큘럼 자체가 튼튼하고, 견실하게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큰 틀(기본 수련체계)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세부적인 수련 모습이야 각 도장의 특색에 따라 약간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의 경우 일본어를 전혀 배우지 않고 무작정 상경하다시피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입문 초기에는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바디랭귀지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사전을 찾아서 대화를 나누기란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정말로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엄청 힘들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지 답답하기는 하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나마, 급수별 수련 시간이 따로 있어서 상급자가 수련할 때 하급자는 뒤에서 정좌를 하고 앉아서 상급자가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잖습니까? 그때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던 동작들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해 두는 겁니다. 그랬다가 제 수련 순서가 오면 앞서 선배들이 했던 동작들을 기억했다가 흉내를 내보는 겁니다. 말이 안 통하던 입문 초기에는 그런 식으로 수련을 했습니다. 모르는 단어는 항상 사전을 끼고 다니다가 그런 시간(상급자가 수련할 때)에 잠시 사전을 뒤척여보기도 하고요. ” 일본 생활 초창기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겪어야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에피소드라고 해야 하나?)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극진가라데 수련 도중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사실, 입문한 지 한달 정도 될 무렵이었죠. 5월 초에 승급심사가 있다는 말에 저는 나름대로 승급심사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좀 빠른 감은 없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전통 가라데 수련도 했던 터라 승급하게 되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승급 심사에 응하기로 맘을 먹고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
마침내 승급 심사 당일, 김 사범은 승급 심사 한 두시간 전에 미리 도장에 가서 그 동안 익혔던 형이나 기본기들을 심사 전에 한 번 더 점검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도장으로 향했다.
“공고문을 보니, 승급 심사가 10시부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가서 그 동안 배웠던 사항들을 점검할 목적으로 그날은 평소보다 한 두시간 전에 도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도착했던 시간이 좀 이르긴 했지만, 평소였다면 그 시간에는 도장 문이 열려있어야 할 텐데 그 날 따라서 이상하게 문이 닫혀 있더군요. 어째, 10시에 승급심사라는 게 그전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뭐 직장인들도 있고 하니 모두 참석하라는 뜻에서 일부러 좀 늦은 시간을 선택했구나 싶어서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가도 도무지 그 날 따라서 도장생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문이 닫힌 도장 밖에서 기다리면서 나름대로 심사 준비를 하다가도 사람들이 오나 싶어서 근처를 배회해보기도 하면서 초조하게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11시 가까이 되어서도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가 혹시 날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날짜는 그 날이 맞는데, 시간이 오후 10시가 아니라, 오전 10시였던 겁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오후에 심사를 진행하잖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생각만 하고 혼자서 착각을 해버렸던 거죠 일본어도 안되고 해서 시간만 나와 있는 것 보고 미리 짐작을 해버린 겁니다.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한 마디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달밤에 체조를 한 셈이 되 버리고 만 거죠. 하하하”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번째 심사는 웃지 못할 해프닝(?)처럼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참 동안 그의 극진가라데 수련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 웃지 못할 해프닝 이후 어떻게 해서든 하루라도 빨리 일본어 실력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극진가라데’라는 분명한 목적 때문에 일본에 온 이상, 도장에서의 수련 이외에도 나름대로 정확한 수련 스케줄을 세워서 착실하게 진행해 가기로 새롭게 마음을 먹었다.
“목표가 분명해지니까, 새로운 의욕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실천하지도 못할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하루 동안에 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수련 목표를 세운 거죠.”
그렇게 해서 세워진 하루 수련 계획이 팔 굽혀 펴기(손가락만 사용) 100회 3세트, 발차기 500회(한쪽 발 500번, 양쪽 합해서 1000번, 왕복 러닝 6km, 섀도우 트레이닝 한 시간.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일본에 체류 하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수행해 나갔다. 물론, 후쿠오카 지부 시절을 거쳐 대마도에서 지도원 생활을 할 때에도 변함없이 자신과의 약속을 꾸준하게 지켜나갔다.
☞여기서 잠깐☜
김경훈 사범이 ‘아베 기요후미’ 사범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의 무도 인생에 있어서 두 번 다시 접할 수 없는 ‘행운’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입문 당시 그는 그의 스승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짐작도 못했었겠지만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김경훈 사범의 스승이었던 아베 기요후미라는 사범에 대해 잠시 짚어보기로 하자.
<아베 기요후미>
●1967년 6월 1일생, 야마구치 현 출신
●90년 ‘제 1회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이때부터 선수로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함
●제 5회 세계 선수권대회(5회전 진출)에서는 세계적인 강호 ‘마이클 톰슨’ 선수를 눌러 이기고 대금성을 탈환함
●제 6회 세계 선수권 대회 출장(3회전 진출)
●주특기로 ‘뛰어 뒤차기’를 갖고 있다.
●극진 선수권대회 사상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고 있는 영원한 대기록을 보유(▲제 24회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기왓장 31장 격파) 제 5회 세계대회 때의 일이다. 아베 기요후미는 이전 대회(제4회 세계선수권대회-마쓰이 쇼케이 우승)에서 마쓰이 관장을 끝까지 몰아 부치면서 호각을 이루는 경기를 펼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바 있으며, 대회 내내 무서운 기량을 선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그 대회에서 세계 레벨 4위로 당당히 올라선 바 있던 ‘마이클 톰슨’ 선수를 맞아서도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치열한 대접전 끝에 대금성을 탈환한다. 그 일로 인해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기록’ 보다는 ‘기억’에 남는 사내로 유명해졌다.또, 그 대회(제 5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회전 상대 ‘에드워드 베렘’(짐바브웨)을 맞아 왼쪽 상단 돌려차기로 한판승, 2회전에서 ‘세리 곤잘레스’(우루과이)를 중단 돌려차기와 하단 돌려차기 연타로 역시 한판승을거뒀고, 그 여세를 몰아 3회전에서도 ‘안드레 메비스’(독일) 선수를 상대로도 압도적인 실력차로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5-0)을 거두는 등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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