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수형의 비유
나팔꽃과 부챗살에 대한 소고(小考)
국내에 다이토류의 존재가 일반에게 알려지고, 합기도와의 관계가 논의되면서 하나의 화두로 떠오른 것이 나팔꽃이다. 술기를 할 때 취하는 손 모양을 나팔꽃에 비유한 것으로 다이토류에서는 다케다 소오가쿠 이래 마치 나팔꽃이 피어나 듯 손을 펴라라고 하는 비유를 써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국내 합기도계에서는 부챗살을 펼치듯 하라라는 표현을 널리 써오고 있다.
그렇다면, 나팔꽃과 부채살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분분하다. 나팔꽃과 부채살은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 같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둘은 실제 손 모양에서부터 기법까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기자는 둘이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은 다음 카페 합기도 공부의 주인장인 황규경님(이하 존칭 생략)의 착상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나팔꽃
우리나라에서 나팔꽃이라는 표현이 처음 소개된 것은 아마도 요시마루 게이세츠의 책 "합기도의 과학"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대동류에서 손목 합기를 이용한 띄우기 수에서 팔을 원상으로 내뻗으며 손끝을 나팔꽃처럼 만들어 신장시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국내 합기도에서 흔히 말하는 손을 살리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부챗살을펼치듯 하는 것은 이 손 살리기에 대한 구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으로 현재합기도에서 행하는 부챗살처럼 펴는 손 모양이 나팔꽃처럼 펴는 손 모양과 다르다는데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원래 나팔꽃과 부챗살은 같은 손 모양에 대한 다른 표현이었으나 후대로 전해지면서 현재의 모양으로 분리되었을 가능성, 그리고 처음부터 다른 손 모양에 대한 다른 표현일 가능성이다. 기자가 전자에 더 큰 가능성을 두는 이유는 현재 최용술 도주의 술기를 가장 잘 보전하고 있다는 용술관에서 술기를 할 때 취하는 손 모양이 나팔꽃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故 최용술 도주가 이 손 모양을 두고 부챗살처럼 펴라고 했다면 나팔꽃은 곧 부챗살에 다른 표현인 셈이다.
황규경은 이에 대해서 "술기를 할 때 처음에는 부챗살처럼 펴고- 기를 살린다는 식의 표현을 일반적으로 쓰는 형태로-나중에 손의 위치나 동작에 따라 손이 오므라지는 모양을 취한다는 것과 술기의 처음부터 나팔꽃을 강조하는 것을 같다고 보는 것은 오해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했으나, 용술관 술기는 처음부터 나팔꽃 손 모양을취할 뿐 아니라, 단전호흡(타유파에서 기합짜기, 기초짜기 등으로 불리는)에서도 역시 같은 형태의 손 모양을 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동류에서 나팔꽃을 강조하는 것은 단지 손 모양 뿐 아니라 술기를 풀어 가는 모습과도관련이 있다. 즉 나팔꽃 줄기가 벽이나 기둥을 타고 올라가 듯 해야 한다는 것인데, 특히 홍무회의 송일훈 관장은 이런 형태의 술기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일견 보이기 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상대의 팔을 타며 과장스럽게 이리저리 꼬고 돌리며 허리에서부터 손끝으로 뻗어 올라가는 손목의 움직임은 매우 복잡하며 화려하여 정말로 나팔꽃이 피어나는 듯하다. 그런데 합기도나 아이기도 술기도잘 살펴보면 비슷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다만 그처럼 눈에 드러날 정도가 아닐 뿐인데, 손목의 움직임은 분명히 나선형 흐름을 따르고 있으며 잡힌 손이 상대의 팔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나팔꽃의 비유는 다케다 소오가쿠 영향 아래에 있는 세 유파에 공히 적용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부챗살
그렇다면 현재 취하고 있는 손 모양과 손 살리기, 부챗살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일반적으로 부챗살이라는 표현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손가락을 쫙 벌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기도회에서 발행한 무술교본(1980년 초판 발행)을 보면 기초짜기 단전기법을 행할 때 손가락을 펴서 손가락 사이가 완전히 벌어지도록 손을 살리라고 하고 있으며, 1973년에 초판 발행된 혈도 호신술에서는 지기생왕법(指氣生旺法) 또는 손 살리기라고 하여 두 손의 모든 손가락 사이가 찢어져라 하고 손가락을 벌려 상대방을 향하게 하되, 열 손가락이 모두 이 제 막 목표물을 뚫고 들어가는 화살인 양 생각하며 손가락 사이는 마치 힘껏 끊어지도록 잡아당기는 활줄처럼 생각하라고 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이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챗살 모양의 손 모양이다. 그런데, 주지해야할 사실은 손가락을 쫙 펴고 손가락 사이를 벌리기 위해서 손바닥까지 쫙 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바닥을 쫙 펴면 손가락 사이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적다. 손바닥은 장심이 둥글게 되도록 오므리되 손가락만을 뻗어 줘야 한다. 결국 나팔꽃과 같은 형태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혈도호신술에 소개된 기초짜기 사진을 보더라도 그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부챗살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나팔꽃이라는 표현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다 손쉬운 비유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부챗살의 실제 모양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기점을 축으로 해서 나선형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나팔꽃에서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현재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형태는 술기와 관계없이 외부 기술의 유입으로 인해 손가락 힘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별전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팔괘장에서는 손바닥을 펴는 모양에 대하여 일평 이립 삼만(一平 二立 三彎 - 엄지는 눕고 검지는 세우며 중지부터는 구부러진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에 따라 손 모양을 취해보면 요시마루 게이세츠의 지적처럼 합기 수형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아이키도에서도 비슷한 수형을 취하는데, 그들은 수도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이는 아이키도가 검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태극권의 손 모양도 비슷하다. 이 여러 유파의 수형들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손목 신장력을 내기 위한 포인트를 동일하게 취하고 있다. 결국 같은 대상을 두고 각자 강조하고픈 바에따라 표현이 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림 1 좌[합기도의 과학] 195p다케다 소오가쿠의 구전 "나팔꽃이 벌어지듯이 벌리라" 는 의미는 원상으로 내뻗는 것을 말한다.
그림 1 우
일반적으로 부챗살 펴듯 손을 살린다고 하는 합기도의 손 모양은 손바닥을 쫙 펴고 손가락 사이를힘껏 벌리는 것이다.
그림 2 좌요시마루 게이세츠는 나팔꽃의 의미를 설명함에 있어서침견추주를 지키고 팔을 원상으로 만들 것을 강조한다.
그림 2 우
송일훈 관장의 합기 수형
그림 3 좌[국술교본] 43p 서인혁 국사의 기초 짜기. 손가락 사이가 완전히 벌어지도록 손을 살리라고 하고 있다.
그림 3 우
[혈도호신술] 159p 지기생왕법은 손가락 힘을 기르기위한 방법이다.
그림 4 좌[혈도호신술] 197p 이한철씨의 기초 짜기.나팔꽃 손 모양과 다르지 않다.
그림 4 우
인천팔괘장의 시조 노수전 노사의 대적세.취하고 있는 손 모양이 합기 수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 5 좌[합기도의 과학] 106p 진식 태극권 정금우 노사의 장형. 손가락을 쫙 펴지는 않지만 역시 손목 신장력을 살려서 몸힘을 끝까지 쓸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림 5 우
[合氣道] 표지. 아이키도에서 취하는 수도(手刀) 역시 차이가 없다. 중요한것은 이런 형태를 억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자연스럽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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