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그를 '그랜드 마스터' 라고 부르는 이유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ATA가 더욱 크게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만남이 있다.
그것은 1985년의 이행웅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당시 이행웅은 알칸소주 주지사를 찾아갔다. 그 시절에 알칸소주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에게 중대한 무언가를 담판 짓기 위해서 주지사실로 쳐들어간 사건으로 이행웅과 클린턴의 첫 대면은 이루어졌다.

이유는 이러했다. 1976년 이행웅은 회원들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미국 중간지점에 위치했던 알칸소주 리틀락시로 ATA 본부를 이전시켰다. 이전 초기에 백인들의 시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리틀락시의 냉대가 생각보다 강했다. 외부인들에게 폐쇄적이었던 리틀락시는 이행웅 일행을 결코 반기지 않았다. 더구나 동양인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10년간 변함없이 그곳에서 살았고 매년 열리는 ATA 세계대회는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에 중요한 축제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다. 대회가 열리면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선수와 그외 관계자들이 리틀락을 다녀가게 되었다. 그 대회 기간 동안 리틀락의 거리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고 모든 숙박업소는 동이났다. 별 볼일 없는 작은 도시가 ATA로 인해 하나의 관광코스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틀락시는 한푼의 보조금도 내지 않았다. 이행웅이 주지사 클린턴을 찾아간 것은 보조금 몇 푼을 받자는 것이 아니었다. 이행웅은 ATA 세계대회의 공로를 클린턴이 인정해주길 기대했다. 방관적인 자세로 있는 알칸소주의 변화가 없다면 떠날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클린턴은 알고 있었다. ATA가 알칸소주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었다. 클린턴은 시원시원하게 대회 개최지로 엑소시어 호텔 지하의 컨벤션센터를 무료로 사용하게 해 주었다. 그 장소가 후일 클린턴 대통령 당선축하 장소가 되었다.
클린턴은 또 태권도에 관심을 표명하고 명예 4단증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이행웅과 클린턴은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며 사제 지간으로 발전했다. 이행웅이 9단으로 승단할 때 사부의 날이라고 선포한 것도 바로 클린턴이었다. 또한 클린턴은 ATA 세계대회가 열리는 동안에 주청사에 태극기를 걸도록 했다.
미국의 주청사에 사흘동안이나 태극기가 걸리는 일은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한다해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행하고 지킨 사람이 바로 이행웅이었다.
모두가 함께 하는 운동, 태권도
1999년 6월 ATA 세계대회가 열리는 시각.
다른 태권도 경기장에서 볼 수 없는 승급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수로 호명된 사람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한 여성이었다. 목발을 짚고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대고 경기를 하고 있었다. 승급을 결정하는 사람도 그리고 지켜보는 관중도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그 경기에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2번의 실패를 거치고 마지막 발차기를 성공시킨다. 모두가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ATA는 나에게 혹은 장애자 모두에게 살고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어요. 만약 이행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전 휠체어 안의 세상만 알았겠지요
제 생애의 가장 귀한 만남은 태권도입니다."
이것이 이행웅이 말하고자 하는태권도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고 단련하는 운동, 태권도.
그것은 그가 이룩하고 있는 꿈의 실현이었다.

장애인이나 어린아이 혹은 노인들도 토너먼트부터 승급심사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쉬운 단계부터 전문가 단계까지 등급을 18단계로 세분화하여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ATA 세계대회는 대회라는 느낌보다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이행웅은 경기 시합과 병행해서 무기도입이나 호신술 프로그램의 활성화로 흥미를 잃지 않고 태권도에 모두가 참여 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노력도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무도에 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다수가 반대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굽힐 수는 없었다. 자유스러운 것은 좋아하면서도 질서를 찾는 미국인에게는 권위적이고 신비감을 주는 동시에 합리적으로 다양한 선택을 주어야 한다고 이행웅은 생각하고 있었다. 무기를 도입하는 계획은 미국식 사고 방식을 꿰뚫는 형태 중 하나가 되었고 태권도를 호신술로 배우는 새로운 회원들이 늘어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대회장을 꽉 채우는 것을 본다면 이행웅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행웅은 말한다. 태권도 시합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자신과의 싸움으로 경기의 내용을 결정짓는 것이라고 말이다. ATA 세계대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리고 자신과의 승부를 치를 회원들은 아름다운 미소를 보낸다.
태권도를 무예로써 배우고 익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심에 이행웅이 있다.
그가 말하는 함께 하는 운동 태권도....
그것을 우리는 ATA 세계대회 기간 내내 구석구석에서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가 되는 길

ATA 세계대회에서의 최고점은 단연코 마스터 임명식 이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이행웅은 태권도가 고급화 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이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귀하게 보아주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행웅은 남들이 종교의식이라도 되는 양 호사스럽다고 하는 임명식에 대해 어려운 수련과정을 통과한 마스터들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라고 말한다. ATA 회원들 사이에서 지도자의 달인이라고 불리 우는 마스터의 자리는 권위와 자긍심이 대단한 자리다. 왜냐하면 마스터가 되기 위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6단까지의 승급심사의 통과는 기간으로도 20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고 자기 수련이 명실공히 탄탄해야 하며 6단의 실력과 또한 수반되는 것이 바로 자신이 거느린 제자의 수가 1000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1000명의 제자들이 인정하는 스승 그것을 가장 기본으로 갖추어야 하고 그것을 다 한 뒤에 이행웅식 훈련을 거쳐야 하는데 그 훈련도 만만치가 않다.
이행웅이 참가하는 산행훈련이 끝난 후 9일 단식까지의 수련을 거친 자는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싸움에서 이긴자 라고 확정지어 질 수 있다. 이 수련과정을 전부 이수하는 사람들에게 마스터 자격을 인정해 주는 자리이다 보니 마스터 라는 자리는 모두의 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행웅은 그런 사람들의 정당한 대접을 위해서 엄격한 자격심사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이행웅은 이 모든 중심에 서 있지만 자기와 함께 태권도의 삶을 달리고 있는 사범들에게 그 영광을 돌린다.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들의 모임.. 그 속에 있는 자는 이미 마스터가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꿈의 틀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바로 이행웅 이다.
우리가 그를 그랜드 마스터라고 부르는 이유
그랜드 마스터 이행웅.
대회가 열리는 내내 그는 자신을 반기는 그 모두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단지 나라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온 그 사람들에게 고작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가지다. 내 이름 석자를 적어주는 것뿐이라서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환갑의 나이가 훌쩍 넘어버린 그는 한 명의 회원이라 더 만나기 위해 아예 대회가 열리는 3일 내내 단식을 한다고 한다. 밥먹을 시간을 쪼개가며 어린아이들에게 싸인을 해주는 할아버지. 아마도 돈이 있는 자가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이행웅일 것이다.
대회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가고 있는 그 시각 옷도 벗지 않고 쓰러져 잠들어 있을 그가 보이는 듯하다. 자신과의 진정한 한판승부를 벌린 자의 달콤한 휴식. 가난한 집안의 아들에서 듬직한 가장의 모습으로, 태권도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 아이들의 꿈을 전달하는 전령사로 한결같이 지내 온 단 한 사람.
우리는 그를 그랜드 마스터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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