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마당] 결투? 고수는 절대 싸우지 않아
중국영화 <영웅>이 무(武)의 세계로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몇해 전에는 영화 <와호장룡>이 은둔의 무사 리무바이(저우룬파)의 수도자 같은 삶을 통해 진정한 무예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현실은 어떨까. 조선시대 호국무예인 십팔기(十八技)의 달인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68)을 만나 무예에 대해 들어봤다.―무예에 입문한 계기는?
▲부산 피난 시절 우연히 스승님을 만나 무예를 접하게 됐지요. 스승님에게 배운 뒤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연마해 왔습니다.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스승님을 입에 올리는 건 도리가 아니고….
―십팔기를 중국무술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정조 때 우리나라에서 전해지던 무예를 모아 정리한 책이 <무예도보통지>요. 십팔기는 <무예도보통지>에 근원하고 있으니 분명 우리 무예라고 봐야지요. 물론 당시에 중국이나 일본의 것들 중 훌륭한 점이 있으면 일부 받아들였을 거요. 아마 우리의 본격 무예 중 문헌적 근거가 확실한 것은 십팔기뿐이 아닌가 하오. 태껸은 정통 무예보다는 민중의 놀이문화로 전승돼 왔고, 십팔기는 정조 이후 조선 정규군의 공식 무예로 전해져 오다 일제시대 이후 잠시 맥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중국무술로 오인됐을 거요. 예전에는 지금처럼 무예의 국경 개념을 말하지는 않았지요.
―십팔기의 특징은 뭔가요.
▲십팔기의 기예는 소박하면서도 짜임새가 있고 긴밀하며 엄격한 것이 특징이외다. 부드러움과 강함이 한치의 차이도 없이 조화를 이룬다, 그 말이오.
―다른 무예와 대결도 하나요. 영화에서 보면 그런 것이 많이 나오는데. 도장 간판을 발로 차 떨어뜨린다든가.
▲그건 영화 얘기고. 무예의 기본은 자기수양이오. 자기완성을 위해 수련하는 진정한 무예인들이 가벼운 행동은 하지 않지요. 그런 얘기들은 대개 작은 일이 입을 타며 부풀려진 겁니다.
―실제 겨뤄본 일은 있다는 말씀 같네요.
▲교류 차원에서 오가는 일은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너를 꺾겠다는 식은 아니오. 다시 말하지만 무예는 몸의 기술 이전에 성품을 닦는 수련이 먼저요.
―미국이나 일본에는 다른 무술끼리 정식으로 맞붙는 이종 격투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무술시합에 온갖 신기한 이름의 무술이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글쎄, 꼭 그렇게 겨뤄봐야 하는 건지….
―소림무술이 세계화한 것은 리롄제(이연걸) 같은 소림사 출신들의 공이 큽니다. 십팔기도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십팔기 수련자 중 영화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지요. 소림승려가 무예만을 목적으로 머리 깎은 것은 아닐 겁니다. 널리 알려진 중국무예의 본산인 무당, 화산, 곤륜 등도 모두 자기 수련을 하는 곳이지 무예만 닦는 곳은 아니오.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같은 천부적 싸움꾼한테는 아무리 고수라도 안된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그런 사람들도 날 때부터 그렇진 않았겠지요. 때로는 실전을 통해 스스로 싸움기술을 연마하며 일종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런 경우 한계가 있어요. 정식으로 무예를 수련한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지.
―수련을 오래하면 영화처럼 날아다닐 수도 있나요.
▲만약 체조선수들의 공중제비를 처음 본다면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않을까요. 오랜 기간 수련해 몸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심법을 익히면 궁궐 담장 정도는 훌쩍 넘을 수 있다고 봐야지요. 그렇다고 날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내공은 어떤 건가요.
▲무예의 기본은 공을 닦는 것이오. 요즘은 기공이라고 하나. 예전에는 내공이라 했지요. 내공이 충만한 사람이면 몸 안의 왕성한 기운을 집중시켜 무언가를 할 수도 있겠지.
―무예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자기를 완성하는 과정이오. 그래서 수련은 생활 곳곳에서 이뤄져야 하지. 논의 피뽑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벼에 섞여 있는 피를 찾는 것은 급소를 찾는 것과 같지. 그리고 피 하나를 뽑아도 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와 마음을 움직여 가며 해야 해. 그렇게 심신을 연마하는 것이 무예라고 봐야지요. 그렇지만 일반인들의 경우 거창하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방편으로 무예를 접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오.
김광석 선생은 무예의 고수라기보다 단아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선생께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질문이 태반인 인터뷰 자체가 결례일 수도 있었다. 선생은 무술이나 무도란 말 대신 꼭 무예란 말을 썼다. 붓글씨를 일본에서는 서도라 하고 우리는 서예라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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