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고수를 찾아서>`일격필살` 도리깨 타법위력
두렵다.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태권도 5단의 30대 고수. 줄넘기를 시작하면 1000회를 쉬 넘기는 군살없이 탄탄한 체구가 날렵하다. 3m 앞에 맞선 상대의 눈이순간 날카롭게 번뜩였다. 어제 도장 입회 신청때와는 천양지차. 사범으로써 받아주는 지도대련이 아닌 고수와의 대적임을 직감한다. 도장에 정좌한 20여명의 수련생들. 만약 내가 지면 도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지난 6개월간 나를 쓰러뜨리고자 찾아온 고수가 벌써 20여명. 그때그때마다 힘든 고비를 잘 넘겨왔다.
일격필살(一擊必殺). 깊은 심호흡을 했다. 빈틈을 찾자. 연이은 앞차기와 옆차기 페인트. 주먹과 발질 주고 받기를 그렇게 수차례. 일순 상대의 체중이 앞으로 내뻗은 오른 다리로 옮겨가는 동시에 왼쪽 어깨가 살짝 열리는 틈이 보였다. 태권도 특유의 돌려차기다. 기회. 한 스텝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한 뒤 상대 왼발이땅에 닿는 순간을 노려 섬광처럼 찔러 들어갔다. 앞차기가 그의 명치에 꽂힐 찰라, 상대가 허리을 틀어 공격을 흘린다. 이어진 왼손 정권 훅이 그의 쇄골(鎖骨)을 뚫었다. 상대가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일어나질 못했다.
지난해 6월 부산지부에 이어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극진 가라데’ 도장을 낸 김경훈(32) 사범. 전설적인 무도인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본명 최영의) 선생의 후예다. 최 선생이 입산수도로 깨우침을 얻은 뒤 고수들과의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60년대초 창시한 것이 극진(極眞) 가라데.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데 반해 한국에는 그 전통이 미천한 수준. 때문에 김 사범이 서울에 처음 도장을 냈을 당시 그 실력을 확인하려 일주일이 멀다하고 도장을 찾아온 숱한 고수들과 ‘맞짱’을 떠야했단다.
“최배달 선생님이 고수를 찾아 바람처럼 세계를 떠돌았다면 저는 도장에 앉아 고수들의 끈질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죠. 어쩌면 그게 실전을 중시하는 극진 가라데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원체 수련 강도가 높은데다 실전대련 경험이 풍부해 어느 상대 앞에서도 주눅든 적은 없어요.”
반면 가장 두려운 것은 수련생들 앞에서 대련이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고수들이 중국 무협영화에서 처럼 도장 현판을 떼려 찾아오지는 않았다지만 대련에 패할 경우 도장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다른 한편으론 강자와 맞선다는 것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에 떨리는 일인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사범이 무예수련을 시작한 근본적 이유는 하나. 어려서부터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극진 가라데가 끌렸다.치명적 살수(殺手)만 금한 채 직접 부딪혀 단박에 상대와 자웅을 겨루는 데 극진의 매력이 있다. 고수들끼리의 대결이란 한두 수손만 읽어봐도 서로의 강약이 명확해 지는 법. 그게 쾌감이 돼돌아온다.
“남자들은 누구나 강해지고 싶은 타고난 본성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고된 수련을 통해 공력이 깊어져도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지 않죠.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만 커지게 마련입니다.”
최배달 선생이 50여마리의 소와 대결해 26개의 소뿔을 자르고, 3마리를 즉사시키는 기행을 벌인 것도 다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사를 건 일본 한 전통 가라데 도장에서 벌인 100명 고수와의 대련. 또 2년 마다 산속에 들어가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흐트러진 자신을 다잡았다는 고행도….
고등학교 1학년 이후 꾸준히 무예수련을 해온 그는 극진 가라데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 이미 유도 2단에 전통 가라데 5단의 고수였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파이터 기질 때문이었을까. 그는 극진 가라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된 지난 98년 중국(중부권)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전세계 1400만 수련인구가 있다는 극진가라데. 그중 200명 고수를 뽑아 무체급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이같은 성적은 놀라운 것이다. 이후 그는 출전 대회마다 ‘톱10’안에 연이어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놀랍게도 그의 극진 가라데 단수는 불과 3단. 그래도 어느 것보다 애착이 간다. 3단 이상은 도쿄(東京) 본부에 가서 치러야 하는데 승단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을 쥐고 구령에 맞춰 팔굽혀펴기를 흔들림 없이 100회를 하는 정권단련 및 파워 테스트. 또 물구나무를 선채로 앞뒤로 10m씩 움직이는 유연성 평가 등등. 무엇보다 평가비중의 80%를 차지하는 대련이 가장 어려운 관문. 승단시 도전 단(段)의 10배수에 해당되는 유단자들과 맞대련을 해야 한다. “실전이 아니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최배달 선생의 지도방침에 근거해 만들어진 룰.
김 사범은 1∼4단 고수 30명과 체급 구분없이 쉬지 않고 각각 1대1로 1분씩, 30분간 대련했다. 승률 3할이 안되면 낙방. 그는 20명을 꺾었다고 했다. 파워가 뛰어난 그였지만 16명째 대련자가 나왔을때는 숨이 턱까지 찼고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가 도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1m76, 90kg의 당당한 체구가 드러났는데 팔뚝이 초등학생 종아리만 했고 다리는 통나무 같아 도장 바닥을 울렸다.
쉐도우 복싱. 원―투 스트레이트와 앞차기. 이어 앞돌려 차기와 양손 훅, 뒤 후려차기 가 따른다. 보법은 태권도 같은 껑충거림이 없고, 맨발이 바닥을 스치듯 낮고 가뿐하다. 끊어치는 타법에도복이 ‘휘릭’ 거센 바람소리를 낸다. 주위가 서늘해질 만큼 가공할만한 힘이 느껴진다.
‘화권수퇴(花拳秀腿)’. 역시 꽃 같은 주먹 지르기와 빼어난 발차기는 없다. 극진이 멀리하는 수법이다. 실전에 쓸 수 없는 기예는 아예 수련을 안한다. 고수들은 실전에 들어가면 자신의 ‘필살기’ 하나로 승기를 잡는다고 한다.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몸에 익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어와 공격술 한두 가지면 상대는 맥을 못추고 무너지게 돼 있다.
또 하나. 그가 15cm 두께 얼음 5장을 일격에 날리는 가라데 촙(당수)과 야구 배트 4개를 동시에 부러뜨린다는 발차기의 파괴력.극진 특유의 발경(發勁)에서 나온 듯하다. 흔히 무술에서 인체의 모든 힘을 끌어내 공격 하나에 실어낸다는 발경.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살펴보니 그의 권(拳)은 권투의 그것과 운용이 흡사했다. 동작을 작게, 짧지만 끊어치는 정권 지르기와 돌려치기 속도가 빠르다. 발차기는 몸쪽으로 대퇴부를 당겨 무릎을 접었다가 상대앞에서 쭉 펼쳐 찬다. 마치 도리깨가 바닥을 내리치는 식인데 목표에 도달할 때 힘이 한 점으로 폭발한다.
이처럼 뛰어난 그의 기예는 수련에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투 덕분이다. 일주일을 3일씩 부산과 서울 도장을 오가면서도 오전에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엔 러닝, 또 저녁엔 실전대련 연습에 매달린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넓고 상수(上手)는 많다”는 최배달선생의 말이 가장 공감이 간다.
인터뷰 말미, 김 사범은 “수련이란 몸 움직이는 법만 연구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강해져야 고수가 되는 거지요.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진짜 승리입니다”라며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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