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꿈, 무에타이(2)
그렇게 회비에서 띵구는^^ 5천 원! 그리고 차비 몇푼(그때는 정말 큰 돈 이었음 ^^;;) 땜에 난 복싱과... 그 뽀대나던 반짝이 프로-스펙스 마크가 박힌 복싱화를 뒤로 하고 형과 함께 부산 신평에 있는 백산 체육관에 입관 하게 되었다.
지겨웠다. 이미 수개월동안 지겹게 쳐 오던 원투를 다시 배워야 했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발차기를 배웠고, 또 다시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무릎치기와 팔굽... 그렇게 하나하나를 배워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난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럭저럭 운동에 재미를 붙일 무렵 다시 한번 내 인생에 전환기(?)가 찾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준비운동을 끝내고 줄넘기를 시작할 무렵 관장님께서 사무실로 부르신다.
"니 시합한번 나가 볼래?"
"예?"
"그냥 별거 아이다. 상대도 니랑 같은 신인인데 머... 어떻노? 함 해볼래?"
"그라면 상대도 고등학생 입니까?
그렇다. 그 나이 또래가 다들 그렇듯이 싸움에 앞서 상대의 덩치,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나이었던 것이다.. ^^;;
같은 또래인 고등학생과 붙여 주신다는 관장님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그래 이왕 시작한거 시합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라고 자위(自慰) 하면서 승낙을 해 버린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른체... 그냥 링 위에서 정해진 룰로 또래와 학교에서 싸우듯이 정해진 날짜에 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알고...
하지만 이런 나의 예상은 다음날 체육관에 도착한 순간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관장님은 다른 때와 다르게 사무실이 아닌 링 위에 계셨다. 그리고 그 밑에는 나와 함께 약 한 달 뒤 시합에 나가기로 한 2~3명의 선수가 몸을 풀고 있었다.
"용호 니는 와 이리 늦었노?"
"학교 마치고 집에 들렸다 온다고...."쭈삣~
"낼부터는 학교 마치면 체육관으로 바로 온나, 얼릉 옷 갈아 입거라"
하시면서 파랑색.. 말 그대로 파~아~랑색.. 다른 색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촌스런땀복을 던져 주신다..
그렇게.. 그렇게.. 그 파랑색 촌스런 땀복을 입고 매일같이 관장님께 뒷통수 맞아 가며 산을 오르내릴 줄 알았다면 난 애시당초 시합 나가란 말씀에 오만가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핑계를 대서라도 시합 따윈 나가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용호 니는 페더급 이다"
"페더급은 몇kg 입니까 관장님?"
"57kg 만 맞추마 된다"
헉 ㅡㅡ;; 57kg만?? 이라니...지금 내 평소체중이 65kg이나 나가는데...ㅠㅠ
"니 평소에 몇kg 나가노"
그래 내 몸무게 말씀 드리면 무리라 생각하시고 체급을 올려 주실꺼야 ^^v
"예 65kg 나가는데요"
"짜석 보기보다 많이 나가네, 머 한8kg만 빼바라"
그러고는 책상에 앉으셔서 볼일을 보신다.. ㅠ.ㅜ 정말 끔찍했다.
경기 전날, 그러니까... 계체 당일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세수를 하고 세면대 위 거울에 비춰진 내 얼굴이란... 가죽은 부패하고 뼈대만 남은 시체의 해골,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 통통하던 볼살은 오간데 없고 가죽만 남은 볼과 동굴마냥 패인 쾡 한 두눈....
이제와서 생각해보지만 그때 그리도 반대 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그 몰골이 되가는 것을 아무 말씀없이 지켜보겠는가! 하여튼 난 계체 당일 아침까지 몇백g이 오바 돼서 땀복에 사우나 안에서 줄넘기를 해 가며 내 인생의 첫 경기의 계체를 통과한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상상을 해보라. 사람들 무지하게 들락거리는 대중목욕탕에서 땀복에, 그것도 모자라 머리엔 겨울에 군고구마 아저씨들이나 쓰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죽을 똥 살 똥 줄넘기하고있는 가련한 인생을..........
드디어 경기 당일, 전날 계체일에도 보지 못했던 내 상대선수를 보고서 난 또 한번 내가 속았구나. 관장님 말씀을 더 이상 신용해서는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얼추 아무리 낮게 잡아도 우리 형보다(형님은 나보다 4살 위였음) 한 두 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 얼굴 ㅡㅡ;;; 그렇게 난 관장님께 보기 좋게 또 속은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젠 관장님이 하지 말라고 말리셔도 해야 될 판이다. 한 달 동안 그 얼마나 고생했던가. 억울해서라도 트로피 하나쯤은 집에 가져가야 했다. 결정적으로 친구들에게 그 얼마나 우쭐대었는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 놓고 나이 따위에 기죽어서 포기하기엔 이미 늦었다. 경기장 귀퉁이에서, 나와 내 대전상대를 번갈아 바라보며 용호 저시키 죽었다라는 식의 친구 녀석들의 눈빛이 오기를 발동시켰다. 어느새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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