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처럼 먹이 덮치는 사마귀 "이덕강"선생
이소룡과 마이크 타이슨이 세월의 격차를 넘어 ‘맞짱’을 떴다면?
절권도의 우슈고수 이소룡과 공포의 핵주먹 타이슨이 맞붙었다면누가 더 셌을까. 최근 열린 ‘이종 격투기’ 대회 이후 이같은‘무술고수 vs 현대 파이터’간 가상대결을 상상해 보는 무술 마니아들이 많아졌다. 이런 ‘원초적(?)’ 궁금증을 안고 숨은 고수를 찾았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사거리의 한 중국 우슈도장. 도장에 들어서자 언뜻 눈에 들어온 도장 내부가 신비스럽다. 바닥이 온통 진흙으로 깔려있는데다 고풍스러운 병장기며 벽면을 장식한 무술초식이 그려진 액자들. 이때 도장 문앞 의자에 꼿꼿이 앉아있던 노사(老師) 이덕강(73)씨가 초면인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그런데 명함을 내밀자마자 선생은 대뜸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선생. 우슈는 너무 깊어서 한두 마디 말로는 풀어낼 수가없습니다. 또 보는 눈이 없다면 (무술을) 봐도 전혀 이치를 이해할 수 없지요.” 선생이 하루 이틀 취재로는 기사를 쓸 수 없으니 헛고생 말고 돌아가라며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인터뷰 시도는 꽤 있었지만 기사화된 일이 단 한번도 없었던 이유일까.
국내 무술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원로이자 당랑권법의 초절정 고수. 한국화교우슈총연합회 회장 이덕강 선생은 화교 출신으로 지난 46년 부친을 좇아 한국에 건너온 뒤 젊은 시절 내내고수를 찾아 무술을 익혔다.
반면에 그는 한국 무술계에 남긴 행적에 비해 크게 알려진 바가없는 기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무술계보를 먼저 물었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煙臺)에서 태어나 15세때까지 그곳에서 무술을 익혔죠. 권법과 병장기는 다른 두분 사부로부터각각 전수받았고요. 유파는 장권문파(長拳門派)예요.” 그는 공교롭게도 당랑권(螳螂拳) 시조인 명조말기 왕랑(王郞)과 동향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타계한 팔괘장의 노수전 선생, 당랑권 대사부 임풍장, 강경방 선생 등과 깊은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무술계의 거성(巨星)들이었다.
그런데 퍼뜩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너덧명 수련생의 움직임이 느릿하기 이를 데 없다. 주먹 한 번 내지르는데 2초나 걸리는 식이고, 보폭을 옮기는 것도 발을 질질 끌듯 여유만만하다. 당랑권법은 빠름이 특징이다. 사마귀가 앞발로 매미를 낚아채듯, 떨어지는 매화 다섯 잎을 동시에 받아내는 신속한 권(拳)과 구수(鉤手·손가락을 펴 갈고리처럼 감아쥐는 수법), 또 연타가 생명. 원숭이 보법을 채택한지라 발걸음은 보폭이 작고, 가볍고 민첩하다. 확연한 차이가 이상했던 것이다.
“저래서야 힘을 쓸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노사부가 일어섰다. 두손으로 장(掌)을 만들어 옆구리 양옆에서 가슴까지 올렸다가 호흡과 함께 양 다리 옆으로 죽 뻗는다. 투로(套路·권법)에 앞서 기(氣)를 고르는 과정인 안장(按掌). 고희가 넘은 노인네의그것이 아닌 듯 힘이 넘친다. 짧은 순간 그의 두 눈이 빛났다.고수의 눈은 평소 온화하지만 대적 순간만큼은 섬광을 쏘아낸다고한다. 이 때문에 하수들은 고수와 맞섬에 있어 먼저 눈빛에 기가 질려 변변히 손을 얽어보지도 못한 채 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선생의 눈빛은 호랑이의 그것이었다.
“보여도 알 수가 없고 봐도 믿기 힘든 게 우뼟니다. 타고난 장사도 수련해 얻은 힘을 당해낼 수는 없는 겁니다.” 선생은 껄껄껄 웃음을 터뜨린 후 이렇게 말했다. 무술의 첫째는 힘이란다.그냥 힘도 아니고 무술에서 사용 가능한 힘이다. 최소 5년은 연마해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동적 연기(練氣)가아닌 정적 양기(養氣)를 기본 수련법으로 삼고 있다는 얘길까.
“쌍도 수련을 아직도 하십니까?” “두손의 균형을 잡아 줄 수있어 좋아합니다.” 즉답을 피했다. 그는 당랑권 외에 쌍도(雙刀)로 명성을 떨쳤다. 시연을 간절히 청했다. “늙은 몸 움직이는게 뭐 볼게 있다고요. 또 지난 50여년 동안 투로를 남들앞에 내보인 것은 수십년전 임풍장 선생 앞에서 딱 한 번 있었을 뿐인데…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아니다. 또 한명의 원로고수가 선생이 움직이는 걸 봤다.그에 따르면 선생이 몸을 낮추고 쌍도를 운용하자 검화가 폈고검신이 보이질 않았다. 돌아가는 쌍도가 선생의 전신을 감쌌는데화살조차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했다.
극구 반복해 청하니 10여년 연공을 했다는 제자를 부른다. 그것도 정지 동작 한 자세. 엽리장도(葉裡藏刀). 떨어지는 낙엽속에 칼을 감춘다는 초식이었다. 더이상의 결례가 어려웠다.
이종 격투기 얘기를 꺼냈다.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래, 누가이겼나요?” 노사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찼다. 기회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술 고수와 현대식 파이터가 싸운다면 누가 이기겠냐고 잘라 물었다.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우슈(武術)의요지는 3가지라. 첫째가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둘째가 신병(身病) 치료에 있고, 그 다음이 호신하는 것입니다.”
싸움질하기 위해 무술을 배우지 않는다는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그래도 짓궂게 계속 물었다. 유도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보자면 대강 이렇다. 먼저 일화 하나. 40여년전 홍콩에서 백학권문과태극권파 간에 알력이 생겼다. 끝내 최강을 자부하는 30대의 백학권 고수와 50대 태극권사가 서로 결투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지않기로 하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태극권사의 대승. 현재 베이징에서 후학을 양성한다는 당시의 백학권 고수는 후에 자신의 오만함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무예란 선조들의 수백년 지혜가 녹아있는 것. 이 때문에 제대로된 무술을 훌륭한 스승님에게 열심히 배운 고수라면 나이가 들수록 무예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힘을 운용하고 상대방의동작을 예측하는 기예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선생 자신도 30∼40대 때보다 현재의 무예가 훨씬 높아졌다고 했다.
한데, 이덕강 선생은 “무술의 옛날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아쉬워요. 무술이란 원래 그대로의 형식대로 수련해야 하는데 말이죠. 반면에 현대식 투기들은 힘도 세지고 스피드도 빨라지고 있죠”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더욱더 선생이 손을얽는 장면을 꼭 한번 보고 싶어졌다. 아니, 투로나 기본자세라도 봤으면 싶었다. 그러나 역시 힘든 요구였다. 해답은 뭘까? “이소룡 기량이 월등하다는 얘길까, 아니면 타이슨 주먹이 세다는걸까….” 알듯말듯한 심정으로 도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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