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가 챔피언이다
미국태권도협회(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가 주최하는 대회를 가면 항상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보통 승부를 겨루는 대회라면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좌절이 있는 법이고 긴장으로 굳은 선수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태권도협회의 대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참가한 모든 선수들의 목에 메달이 걸려 있을 뿐이다. 모든 선수들의 목에 말이다.
지난달 30일 한국 경희대학교 체육과학대 체육관에서 열린 ATA 코리아 주최 제1회 태권도 글로벌 엑스포에서도 이같은 모습은 예외없이 연출됐다. 미국태권도협회의 한국지부격인 ATA 코리아 소속 수련생 천 7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 이번 대회는 한국에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됐다.
총 24개의 링에서 대회 참가자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품새와 무기술 경연을 벌였다. 품새 종목에는 미국태권도협회 이행웅 회장이 만든 송암품새도 포함됐다. 이번 대회에서 겨루기는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유난히 승부에 집착하는 한국 태권도계의 정서를 고려해 주최측이 일부러 뺀 것이다. 미국태권도협회의 이순호 부회장은 "우리는 한 사람의 챔피언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참가 선수, 학부모, 그외 모든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대회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순호 부회장의 말대로 이번 대회는 참가자 모두가 승리자가 되고 그들을 응원하는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대회로 치러졌다.
물론 이들의 대회도 순위를 가리기는 하지만 상위 입상을 하지 못한 선수들도 각자 자기가 보여준 장점에 따른 상을 받는다. 예를 들면 예의바른 태도를 보여준 선수는 예의상,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패기상을 주는 식이다. 이에 대해 이순호 부회장은 "대회에 출전해서 최대한 노력을 했는데 진다면 어린이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모두 이기기를 바란다. 지게 되면 어떤 어린이들은 좌절하기도 한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모든 선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상을 준다. 이긴 사람은 이겨서 좋고 진 사람도 나름대로의 상을 받아 즐거울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회장에서 만난 9살짜리 꼬마 선수 권수환은 "무기술과 품새 경연에 참가해 우수상을 탔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태권도 수련의 목적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다보니 자연히 높은 시상대에서 승자에게 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상을 주는 시상식도 따로 없다. 24개의 링에서 계속해서 경기가 열리고 선수의 가족들은 링 주변에서 사진을 찍거나 응원을 한다. 경기를 마친 어린 선수들은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대회장의 모습은 마치 시장바닥 같기도 하고 축제가 펼쳐지는 광장 같기도 하다.
미국태권도협회의 대회가 이런 모습인 것은 미국태권도협회 이행웅 회장의 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이행웅 회장은 항상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태권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태권도 수련의 목적은 남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보니 미국태권도협회에는 노인 수련생도 많고 장애인 수련생도 많다. 이번 대회에도 노인 수련생이 참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한 할머니는 68세다. 한국 나이로는 70세인 셈인데 태권도를 배운지 14년 됐다고 한다. 14년 전이면 54세 나이에 처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긴데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할머니는 자신이 태권도를 하는 것을 남편이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갈고 닦은 실력을 겨루며 서로 격려하고 즐기는 미국태권도협회의 독특한 대회 방식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나는 왜 태권도를 수련하는가?, 나는 태권도를 수련해 무엇을 얻었는가?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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