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꿈, 무에타이(1)
1990년 여름

비디오 제작을 위해 포즈를 취한 김용호관장
친구 두 녀석과 동네 오락실에서 넉클죠와 쌍용(당시 엄청난 인기 속에서 가난한 학생의 주머니를 매번 강탈해간 전설의 오락게임)을 한판씩 즐기고 몇 개월 전 등록한 복싱 체육관을 가기 위해 오락실을 나섰다.오늘은 어느 때 보다도체육관 가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볍다. 나의 온 시선은 그 녀석의 멋진 몸매에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녀석의 발걸음만 종종 뒤따라 간다, 발목까지 늘씬하게 올라간 쭉 빠진 몸매, 온통 파랑에 반짝 이로 수놓아진 프로 스펙스 마크.
하하하! 드디어 그렇게 갖고 싶어 소원했던 복싱화를 어머니를 졸라 마침내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 복싱화를 손에 넣기 위해 수없이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고 어머니의 항복과 함께 그 녀석이 이제 나의 복싱파트너가 되었다.
지금 그날을 돌이켜 보면 어머니를 졸라 손에 쥔 복싱화를 신고 도장거울 앞에 서 온갖 포즈와 자기도취에 빠져보았던 그 순수했던 나의 첫 복싱 입문 시절이 그리워진다. 하여튼 원대한 꿈이 있어 시작한 복싱이 아니라 동네에서 싸움한번 잘해보자고 시작한 복싱 수련이 어는 새 수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복싱화를 신은 나는 본격적으로 복싱연습에 매진했다. 정말 프로 복싱 링에서 강한 상대를 빠른 스텝과 한방의 강력한 펀치로 KO을 얻어내는 내 자신을 꿈꾸며 도장 샌드백과 수 없이 되풀이되는 시합을 했다. "복싱은 나의 인생이다"라고 생각하며 복싱에 전념하고 있을 때 내 무도 인생의 전환기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아마 복싱화를 신고 온갖 갖은 폼을 잡고 복싱 챔피언의 꿈을 키워 간지 단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덥고 따분해서 먼산만 바로 보던 중3의 여름방학이 계속 되고 있을 때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막 돌아온 형이 안방에서 TV프로에 열중하고 있던 나의 손을 잡아 끌고 작은 방으로 대려가더니 대뜸
"형이랑 격투기 배우러 다니자" 형이 난데없이 복싱을 배우고 있던 나에게 격투기를 배우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기 먼데?"
"응, 그냥 킥복싱 같은 건데 손은 복싱하고 비슷하고 발 무릎 팔굽까지 다 쓰고 거기에 던지기도 가르켜 준다카더라"
헉! 그렇담 정말 실전 아닌가~ 내가 그렇게 원하던 싸움 잘하게 해주는 운동이 아닌가?
복싱도 하고 발기술에 던지기 까지 가르쳐 준다는 형의 말에 나는 귀가 솔귓 했다. 형 말대로 라면 내가 배우고 있는 복싱보다도 훨씬 실전적이고 강한 운동으로 들려 보였다. 하지만 새로 산 복싱화와 함께 이미 맘으로 훌륭한 복싱 챔피언의 꿈을 키워가던 나에게 형의 제안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수개월간 복싱도장에 정이 들어 버렸고 미련도 남아서 쉽게 마음의 결단을 하지 못했다. 또한 복싱 도장의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어 질 거라 생각하니 쉽게 마음의 결단을 내릴 수 가없었다. 그런 나에게 형은 집요하고 끈질기게 졸라 되더니 결국 나의 항복을 받아 냈다.
형이 나에게 물었다.
"니 지금 회비 얼마고?"
"4만원"
"형이 알아본 격투기 체육관은 3만5천원 인데... 어머니한테 4만원 받음 매달 5천원씩
띵굴수 있다 아이가..^^;"
"그라고 지금 엄마한테 체육관 다닌다고 버스비 받제?"
"응?..으..응"
"형아 하고 격투기 댕기믄 차비는 형이 대준다"
헉! 그럼 매달 회비에서 5천원.. 그리고 차비에서 또...” 이건 나에게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
결국 형의 제안에 내 머리 속에 잠자는 시간 빼놓고 맴돌던 수개월째 연습해 터득한 원 투 동작과 훅 동작도 그리고 어머니를 졸라서 얻었던 그 폼 나던 복싱화와 복싱 챔피언의 꿈도 그 단돈 5천원과 함께 사려져 버렸다. 나는 그렇게 남겨 챙긴 돈으로 부산 남포동 거리를 친구들과 함께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렇게 형과 함께 타협을 해서 챙긴 5천원 때문에 시작한 무에타이가 바로 지금 내 삶과 인생이 되 버릴 줄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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