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8편> ‘K-1’, 마침내 돔 구장으로...!


1997년, K-1은 외형적으로나 규모의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나고야, 오사카에 이은 도쿄 돔 진출, 그것은 격투기계에 있어서는 일대 사건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침내, 일본의 ‘3대 돔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또, 그 해 2월 26일에는 브라질 격투기계의 영웅이자 극진회관 현역 최고선수인 ‘프란시스코 휘리오’의 K-1 참전 소식도 발표되었다.

극진회관과 정도회관은 그때까지만 해도 절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극진회관의 2대 총재인 마쓰이(한국명, 문장규)관장의 ‘문호개방선언’--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쓰이 관장의 문호개방 선언의 이면에는 ‘후지TV’의 중개 역할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에 의해 극적으로 휘리오의 K-1 무대 참전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현역 극진회관 소속 선수가 K-1 무대를 밟는 것은 휘리오 선수가 최초였다. 휘리오의 K-1 참전은 개인은 물론 극진회관 전체에 있어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인 셈이었다.

이로써, 지금껏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던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 소속 선수가 프로 무대인 ‘K-1’에 참전하게 되는 역사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한편, 3월 16일 열렸던 ‘K-1 KINGS97’에 출전한 브랑코 시카틱은 2년 만의 복귀전 무대에서 무사시를 KO로 제압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 보였다. 메인 시합에서는 피터 아츠와 앤디 훅이 대결을 벌였는데, 피터 아츠가 1라운드에서 앤디훅을 KO로 눌러 이기면서 전년도의 부진을 말끔하게 씻어 냈다.

4월에 들어서면서 ‘큐우슈우’ 지방에서는 최초로 ‘K-1 BRAVES97’이 개최되었다. 이 시합에서 어니스트 후스트는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경기를 가졌고, 한 번의 다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베르나르도를 끝까지 밀어붙여 역전 KO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했다.

한편, 세프오는 제롬 르 반나를 맞이하여 ‘부메랑 훅’이라 불리우는 기술로 실신 KO를 거뒀다. 또한, 스테판 레코는 이 시합을 통해 처음으로 K-1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7월 20일. 나고야 돔에서 ‘K-1 DREAM97’이 개최되었다. 지난 2월 26일, 후지 TV 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된 ‘K-1 DREAM97’ 무대에서의 앤디훅과 프란시스코 휘리오의 대결이 실현된 것이다.

사실, 앤디와 휘리오의 인연은 K-1무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앤디와 휘리오의 악연(?)은 1991년에 개최되었던 ‘제 5회 극진가라테 전세계선수권대회’에서 비롯된다.

바로 그 대회에서 앤디 훅은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프란시스코 휘리오’에게 그의 가라테 인생에 있어서 최초이자 유일한 ‘한판 패’를 당하면서 심한 좌절감과 수치심에 휩싸인 채 방황하다가 홀연히 극진을 떠났었다.

그리고, 마침내 6년 만에 앤디와 휘리오는 극진의 세계대회가 아닌,K-1 무대에서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했던가? 뭐, 앤디와 휘리오는 원수지간도 아니면, 만난 장소가 외나무 다리도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들 두 사람은 K-1의 무대를 빌어 마침내 재격돌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공이 울리고, 2분 여쯤이 경과할 무렵이었다. 훅이 자신의 또 하나의 필살기 중 하나인 ‘내려찍기’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훅의 찍기 공격을 간파한 휘리오는 긴 리치를 이용한 왼발 앞차기로 훅의 찍기 공격을 여유 있게 무력화시키면서 사정권 밖으로 물러서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훅의 공격이 이어졌다. 훅은 로프 쪽으로 멀어지는 휘리오를 쫓아 왼손, 오른손 번갈아가면서 원, 투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었다. 훅의 오른손 훅이 허공을 가르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휘리오가 날린 오른손 훅이, 앤디 훅의 턱을 향해 잔혹하게 파고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어버렸다. 이미 앤디 훅의 시계는 멎어버린 것이다.

정신이 떠난 훅의 몸뚱아리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링 바닥에 닿는가 싶더니, 그대로 큰 대자를 그리며 쓰러진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훅이 링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시간은 불과 2분 37초였다. 하지만, 훅에게 있어서 그 시간은 마치, 2시간 37분 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휘리오에게 통한의 KO패를 당한 훅은 휘리오를 향한 복수의 무대를 두 번 다시 갖지 못한 채 2000년 8월,‘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세상’으로 쓸쓸한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가라테 정상의 대결’은 이렇게 두 번 다시 실현되지 못할 ‘전설 속의 일전’으로 남은 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조용히 잊혀져 갈 것이다.

9월에는 오사카 돔에서 ‘K-1 GRAND PRIX97 개막전’이 개최되었다. 이 시합에서의 주역도 역시 ‘프란시스코 휘리오’였다. 휘리오와 격돌을 벌인 선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거인 선수 ‘반다 마브’였다.

경기 초반 반다 마브의 갑작스런 러시공격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던 기색을 보였던 휘리오는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아 옆차기로 위기를 모면한다. 경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반다 마브의 어퍼컷을 안면에 적중 당한 휘리오는 일순 휘청하기도 했지만, 옆차기로 상대의 움직임을 저지한 상태에서 왼발 중단 뒤돌려차기로 마브를 가볍게 제압하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다.

11월 9일, 도쿄 돔에서 열린 ‘K-1 GRAND PRIX97결승전’에서 프란시스코 휘리오는 2회전 상대 샘 그레코를 오른손 훅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진출한다. 휘리오는 준결승에서 어니스트 후스트와 맞붙어, 치열한 신경전 끝에 판정으로 패하면서 준결승까지의 ‘일격; 행진을 사실상 마감하게 된다.


한편, 이 대회에서 다른 블록에 속해 있던 앤디 훅은 2회전에서 사타케를 꺽고, 준결승전에서는 피터 아츠와의 리벤지 매치까지 멋지게 성공시키며, 결승에 진출한다. 어니스트 후스트와 앤디훅의 결승. 둘의 전적은 1승 1패, 호각세였다. 그 누구도 둘의 시합 결과를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승에서 맞붙은 두 사람의 눈에서는 불꽃이 번쩍였다. 일진일퇴, 서로 치고 받으며 대접전을 벌여나갔다. 그야말로 ‘의지력’의 대결이었다.

시합의 결과는 어니스트 후스트의 승리로 돌아갔다. 앤디 훅에 비해 후스트가 갖고 있던 우승에의 집념이 더 강했다고나 할까? 후스트는 심판 판정 2 : 0으로 그토록 염원하던 첫 우승의 영광을 거머쥔 것이다.


1997년을 돌아보며

▲1월 5일, 태국 챠춘사우에서 김태영이 ‘곤 바타비 소 스마리’와 맞붙어 판정패를 당함.
▲2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르 쇽크 드 몬드’에서 제롬 르 반나가 모리스 스미스를 판정으로 제압하고, ISKA세계 무에타이 수퍼헤피급 챔피언 방어전에 성공.
▲2월 26일, 후지 TV 신사옥 구체전시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1 DREAM97’ 무대에서 앤디훅과 프란시스코 휘리오의 대결소식을 정식으로 발표함.
▲3월 16일, 요코하마 아리나에서 ‘K-1 KINGS97’가 개최됨. 이 시합을 통해 K-1 원년 챔피언이었던 ‘브랑코 시카틱’이 2년 만에 무사시와 복귀전을 치뤄 4라운드에 TKO승을 거뒀다. 또한, 이 시합장에 극진회관 2대 관장인 마쓰이 쇼케이 씨가 링 위로 올라와서 이시이 관장과 악수를 나눴다.
▲4월, 정도회관에 ‘K-1코스’가 개설됨. 이때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글로브 테크닉’을 지도하게 되었다.
▲4월 12일, 이시이카즈요시 관장이 제작 총지휘를 맡았던 격투기 다큐멘터리 영화 ‘최강에의 길~WELCOME TO THE K-ZONE~’이 일본 전역에 개봉.
▲4월 20일, 극진회관이 주최하는 ‘97전세계 웨이트제 공수도선수권 대회’ 중량급에서 프란시스코 휘리오가 우승을 차지함. 극진회관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우승자 탄생.
▲4월 29일, 마린멧세 후쿠오카에서 ‘K-1 BRAVES97’이 개최됨. 메인 시합에서 앤디 훅이 샘 그레코와 경기를 치뤄 무승부를 기록했다. 또, 같은 시합에서 스테판 레코가 K-1 무대 첫 데뷔전을 가졌다.
▲5월 11일, 네덜란드에서 헤비급 선수들의 무대인, 원나잇 토너먼트 ‘THE BEST OF THE BEST’가 개최되었다
▲6월 2일, 新高輪호텔의 기자회견장에서 정도회관, MA일본킥복싱연맹, 월드슈트복싱협회, 전일본킥복싱연맹, 일본킥복싱협회 등 5개 단체가 연합해 만든‘K-1 JAPAN LEAGUE’의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6월 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앤디 훅이 프로모토 자격으로 개최한 ‘K-1 FIGHT NIGHT~THE DECISION~’가 개최됨. 이 대회의 메인 시합에서 앤디 훅이 마이크 베르나르도를 맞아 한차례의 다운을 빼앗으며 판정승을 거둠.
▲6월 23일, 정도회관 동경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ITF태권도 제 8회 세계대회 우승자였던 ‘피어 게네트’ 선수가 ‘K-1 GRAND PRIX97’ 참전을 공식 발표함.
▲7월 4일,호주 사우스웰즈에서 열린 ‘FIGHT NIGHT’ 에서 아담 워트가 마커스 리드를 2라운드에서 KO로 제압하고,ISKA세계 무에타이 라이트 쿠르저급 왕좌 방어에 성공.
▲7월 20일 나고야 돔에서 ‘K-1 DREAM97’이 개최됨. 이 대회에서 K-1 무대에 첫 출장한 프란시스코 휘리오가 앤디 훅을 1라운드에서 KO로 제압하고 승리를 쟁취함.
▲7월 27일, 미국 버밍험에서 열린 ‘THE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14’에서 모리스 스미스 선수가 마크 콜먼 선수를 판정으로 제압하고 UFC헤비급 챔피언으로 등극.
▲9월 7일, 오사카 돔에서 ‘K-1 GRAND PRIX97 개막전’이 개최됨. 어니스트 후스트, 프란시스코 휘리오 등 8명의 선수가 결승 대회 진출. 첫 출장한 ITF 태권도 우승자 피어 게네트는1라운드에서 앤디훅에게 KO패함.
▲10월 5일, 오사카부립체육관에서 ‘제 16회 전일본공수도선수권대회’개최. 이번 대회부터 타 유파의 참전을 일체 불허했다.
▲10월 12일, 료오고쿠 국기관에서 열린 ‘97격투기 제전 SPECIAL’에서 아베(阿部修治)선수와 사다우 게손리트가 맞붙어 아베 선수가 2R에서 다운을 빼앗으며 판정으로 눌러 이김.
▲10월 17일, 미국 미시시피에서 열린 ‘THE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15’에서 모리스 스미스 선수가 탱크 아봇 선수를 TKO로 눌러 이기고 UFC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했다.
▲11월 1일, 동경체육관에서 열린 극진회관 주최‘제 29회 오픈토너먼트 전일본 공수도 선수권대회’에 정도회관에서고야스(子安慎悟) 선수가 출장했지만, 3회전에서 패퇴함. 이 대회에서 극진회관의 ‘카즈미 하지메’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11월 9일, 도쿄 돔에서 ‘K-1 GRAND PRIX97 결승전’이 개최되었다. 결승에서 어니스트 후스트가 앤디 훅을 판정으로 제압하고, 첫 우승을 차지하며 그랑프리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12월 21일, 요코하마 아리나에서 열린 ‘ULTIMET FIGHTING CHAMPIONSHIP IN JAPAN’에서 모리스 스미스가 랜디 쿠투아 선수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판정으로 패하면서 UFC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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