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통지] 태권도와 가라테 역사의 상관관계 - 1
▶ 가라테 역사의 시작! 오키나와 문화와 이해
![[무예통지] 태권도와 가라테 역사의 상관관계 - 1](https://data1.mookas.com/journal/images/2024-07-15_11-14-46-64535-1721009686.jpg)

▶ 한국, 중국, 일본, 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다?
\n\n\n\n
가라테 역사의 시작은 오키나와에서 출발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키나와를 둘러싼 다양한 학설은 지금도 뜨거운 감자로 동양 3국(한국, 중국, 일본)의 무술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n\n\n\n
무술사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크게 상고주의(尙古主義), 신비주의, 국수주의 그리고 이 모두에 상업주의까지 가세하여 현대사적 무술 관점이 계속 진화함을 알 수 있다.
\n\n\n\n
\n\n
오키나와 개관을 보면 인구 약 140~150만(나하시권역 : 130만 거주)되는 작은 섬이다. 오키나와 최대 도시인 나하(なは)를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 읽으면 '나와'가 되는데, 이 역시 오키나와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n\n\n\n
류큐(流球)라는 표기는 중국에서, 오키나와를 부르는 이름은 류큐(流球)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오키나와는 토착 명칭이라는 이해가 일반적이지만, 한편 류큐국(流球國), 류큐왕 또한 공식 명칭이었다.
\n\n\n\n
오키나와의 역사는 작은 부족이나 호족세력으로 출발하여 통일된 것은 쥬우잔의 쇼씨(쇼하시, 尙巴志:재위-1421-1439)가 통일하여 제1대 쇼씨 왕국 건립했다.
\n\n\n\n
명나라와 조공관계 수립: 1370년 이후부터 조공관계 수립되었고, 대명의 조공체제 확립으로 독립 왕국인 동시에 중국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n\n
\n우리나라와의 관계는 고려왕건의 교류설, 삼별초의 이주설, 등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는데, 이 당시 류쿠왕국과 조선의 중계무역이 활발했고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했다고 만국진량종(1458)에 기록되어 있다.
\n\n
\n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한국과 중국과 일본과 삼각형을 이루는 정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3국과의 관계와 문화 그리고 일본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는 과정까지 이번 영상에서 볼 수 있다.
\n\n\n\n
27부에 계속..........
\n\n\n\n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n\n\n\n
[무카스미디어 = 엄재영 태권도 칼럼리스트 ㅣ kaikans@hanmail.net]
\n<ⓒ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