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가라테는 중국 남권의 영향을 받았다?
무예통지강독 23부 ▶ 중국무술의 고수 황비홍은 실존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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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남소림은 북쪽에 있던 소림사가 남쪽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남소림을 세우고 반청복명운동(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복원한다는 운동)을 버리는데, 청나라 군대의 소탕으로 남소림을 결국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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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5명의 무술고수가 탈출해서 남 소림의 무술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전설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미 중국학계의 정설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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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권의 창시자인 홍희관(1745~1825)은 실제의 인물로 남권의 대표적 유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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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권의 소걸아, 방세옥, 황비홍이 모두 이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황비홍(1847~1924)은 실존 인물로 불과 200여 년 전에 근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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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남권의 특징은 자세가 낮고 보폭이 넓어서 안정적이고, 절도 있게 힘을 주며 강하게 끊어서 하는 동작이 많다. 특히 두팔을 동시에 움직이며 수련하는 동작이 많은데 이를 교법(橋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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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로 보면 산틀막기, 쳇다리 지르기, 금강막기 등을 상상하면 된다. 또 허리춤으로 주먹을 당기는 동작들도 많이 나오는데, 태권도와 가라테는 남권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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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렇게 중국 맨손무술의 발달은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나오는 “택기권지선자삼십이세 『择其拳之善者三十二勢』”라 하여 당시 유행했던 권법의 다양한 동작들 중에서 좋은 기술만 선택하여 만든 것이 기효신서의 장권32세이다. 다양한 유파가 있었지만 기술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의 사자성어도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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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2세 장권이 기초가 되어 근대에 장권과 남권으로 흘러와 영향을 미쳤다고 양진방교수는 주장했다.
\n\n더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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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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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미디어 = 엄재영 태권도 칼럼리스트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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