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고단자의 품격
국기원은 해마다 분기별로 고단자(6∼9단) 심사를 실시한다. 품새와 겨루기, 격파, 논문 등을 종합해 승단 여부를 결정하는데, 합격률은 70% 안팎이다. 그러나 8∼9단은 불합격 비율이 미비한 실정이다. 2002년 5월 현재, 국내외 고단자의 현황을 보면 6단은 4,515명, 7단은 1,771면, 8단은 765명, 9단은 263명으로 나타났다. 9단의 경우 외국인은 51명이었다.
9단이 되면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9단의 별칭을 입신(入神)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최고수라는 은유가 내포돼 있다. 이는 9단의 품계를 압축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도(道)와 예(禮)의 영역에 속하는 바둑도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최고수를 입신이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태권도가 바둑의 유단자(고단자) 별칭을 모방했다고 보고 있다.
어쨌거나 품계의 별칭은 1천5백년 전 중국 양나라의 황제 무제가 만들었다. 바둑을 즐겼던 무제는 기사의 품격을 9계급으로 나눠 △초단은 수졸(守卒)=겨우 지킬 줄 안다 △2단은 약우(若愚)=어리석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3단은 투력(鬪力)=싸우는 힘을 갖췄다 △4단은 소교(小巧)=기교를 부릴 줄 안다 △5단은 용지(用智)=지혜를 쓸 줄 안다 △6단은 통유(通幽)=그윽한 경지에 이른다 △7단은 구체(具體)=골격을 두루 갖춘다 △8단은 좌조(坐照)=앉아서도 훤히 내다본다 △9단은 입신(入神)=신의 경지에 이른다 등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무제가 만들었다는 바둑의 품계 별칭은 태권도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태권도의 경우도 바둑처럼 도(道)와 예(禮)의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도 측면에서 보면, 초단에서 9단에 이르는 품계의 특성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고단자들이 품계의 특성에 맞게 품격을 갖추고 이를 실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태권도 고단자, 특히 8∼9단의 일부 인사들은 품계별 특성을 은유적으로 압축한 내용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제자들을 이용하고, 출세를 위해 권모술수와 모략을 일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어찌 무도인(武道人)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 교수는 "무도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라며 "생활 속에서 무도를 수행하면 된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음달 초, 국기원에서 고단자 승단심사 대회가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응심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합격, 불합격 여부를 떠나 고단자의 고매한 품격과 정도(正道)를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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