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태권도와 고단자의 품격


국기원은 해마다 분기별로 고단자(6∼9단) 심사를 실시한다. 품새와 겨루기, 격파, 논문 등을 종합해 승단 여부를 결정하는데, 합격률은 70% 안팎이다. 그러나 8∼9단은 불합격 비율이 미비한 실정이다. 2002년 5월 현재, 국내외 고단자의 현황을 보면 6단은 4,515명, 7단은 1,771면, 8단은 765명, 9단은 263명으로 나타났다. 9단의 경우 외국인은 51명이었다.

9단이 되면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9단의 별칭을 입신(入神)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최고수라는 은유가 내포돼 있다. 이는 9단의 품계를 압축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도(道)와 예(禮)의 영역에 속하는 바둑도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최고수를 입신이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태권도가 바둑의 유단자(고단자) 별칭을 모방했다고 보고 있다.

어쨌거나 품계의 별칭은 1천5백년 전 중국 양나라의 황제 무제가 만들었다. 바둑을 즐겼던 무제는 기사의 품격을 9계급으로 나눠 △초단은 수졸(守卒)=겨우 지킬 줄 안다 △2단은 약우(若愚)=어리석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3단은 투력(鬪力)=싸우는 힘을 갖췄다 △4단은 소교(小巧)=기교를 부릴 줄 안다 △5단은 용지(用智)=지혜를 쓸 줄 안다 △6단은 통유(通幽)=그윽한 경지에 이른다 △7단은 구체(具體)=골격을 두루 갖춘다 △8단은 좌조(坐照)=앉아서도 훤히 내다본다 △9단은 입신(入神)=신의 경지에 이른다 등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무제가 만들었다는 바둑의 품계 별칭은 태권도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태권도의 경우도 바둑처럼 도(道)와 예(禮)의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도 측면에서 보면, 초단에서 9단에 이르는 품계의 특성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고단자들이 품계의 특성에 맞게 품격을 갖추고 이를 실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태권도 고단자, 특히 8∼9단의 일부 인사들은 품계별 특성을 은유적으로 압축한 내용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제자들을 이용하고, 출세를 위해 권모술수와 모략을 일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어찌 무도인(武道人)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 교수는 "무도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라며 "생활 속에서 무도를 수행하면 된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음달 초, 국기원에서 고단자 승단심사 대회가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응심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합격, 불합격 여부를 떠나 고단자의 고매한 품격과 정도(正道)를 보여줬으면 한다.

댓글 10

흠.. 2003.03.19
좀 자존심이 상하는군요 왜 하필 바둑의 품계를 태권도가 베꼈을까요
ㅇㅇㅇㅇ 2003.03.26
단개념은 일본에서 유래되었음 원래 중국이나 기타 무예들은 특별한 단계개념을 안두었음 뭐 수제자 이런거나 있었음 그런데 일본에서 근세에 단 제도를 만들었고 우리나라 중국 기타나라 무술단체들이 따라했음 단 제도는 체계적인 제도라서 일본꺼라도 반발할필요는 없음 근데 그 급수 나눔이 글에서와 같이 바둑에서 유래 했음
^.^; 2003.04.07
좋은것이라면 도입하는것도 좋을듯 하군요... 단개념이나 급개념이 다른나라등에서 유래되었다고 무조건 싫어하는것보다 좋은 체계라 면 찬성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단개념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고단자라면.. 2003.09.15
정말 고단자라면.. 무술 실력뿐만 아니라..인격까지 두루 갖춘 사람이어야 되는데.. 전과자(감방)갔다 온놈들 까지 고단자라고 자리 잡고 있어니.. 국기원은 뭐하는지..신원조회도 안하고 무조건 고단자 자격증을 주는지.. 신원조회해서 문제가 있으면 고단자의 자격을 박탈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하기샤...
태권도 2003.09.15
그럴때 새로운 출발이 기약되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태권도 다시 뛰는 겁니다. 결코 포기한적이 없는 태권도 잖습니까. 틀린건 고치고 용서할 건 용서하고 그런거 아닌가요.
major 2003.09.17
무도의 단(段)과 급(級)의 체계는 일본의 유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바둑 의 급단 체계를 모방한 것이지요. 그 후 일본에 상륙한 가라데가 유도의 급단 체계를 그 대로 채용하였고 해방 후 귀국한 공수가들이 태권도화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 내려왔지 요. 그런데 9단이 그렇게 많다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한 20년 전에 대한민국에 태권도 유 도 검도 합기도를 다 합쳐 9단이 열 명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새 많아도 너무 많아졌군요. 대한민국 태권도가 무더기로 9단을 받을 만큼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 된 건 지 아니면 9단이 되기위한 요건이 하향 평준화 된 건지...
림원섭 2003.11.14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 환인, 환웅천황께서 창시한 우리 배달민족 삼신사상 불교, 유교, 모든 종교의 시조였던 그 삼신(三神) 철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 배달민족의 “경전” 즉 불교 경전보다 5000년이 앞선 이 엄청난 우리 역사 책 위대한 책 자랑스러워 당당한 “천부경, 참전계경, 삼일신고”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씽씽하게 살아있다. 노상 대 강도 외세 원, 당, 명, 청이 약3십 만권 왜놈들이 51가지 책 종류들 약2십 만권을 깡그리 태웠어도 그 기록은 타질 아니했다. 그 기록들은 탈 수가 없었다. 이 경전을 태울 수가 없었다.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한 하늘이라.”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리라.“ “이 세상은 나는 것이 없음으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모습이 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지중해 문화인 성경책(이스라엘 경전)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큰 눈 뜨고 못 보고 못 읽었다 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사대의 시조 신라 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겹사돈 대 살인 집단이었던 화랑도의 수장 김유신 이 놈들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우리 민족은 더럽게 되기 시작이 됐다. 이 시절 대 어용 불교인 원효와 이 자의 아들 설총을 나는 이 것을 꼼꼼히 못 보고 못 읽었다 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원나라가 침략하자 양반, 유생, 관군이 다 도망을 갔으나 노비군 만은 끝까지 남아 충추성을 사수했었다 그런데 몽고군이 물러간 뒤 양반 관리들은 관가의 기물을 훔쳐 다는 핑계로 그 노비군의 지도자들을 모두 목 잘아 죽였다. 이런 원나라 식민지 약127년 퍽 으나 많은 미인들 수출과 몽고군대 40년 주둔 이런 것들을 만약 못 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아 - 계백 장군이여 - 장군의 혼은 지금 어디 있소? 칼. 창 녹여 괭이, 삽, 호미, 쟁기를 만들었던 평화의 나라 백제를 망하게 했고 아 - 을지문덕 장군이여 - 장군의 지혜는 어디 갔소! 저 - 널은 땅 고구려가 병신 같이 망했고, 발해까지 망했다. 아 - 강감찬 장군이여 - 장군의 용맹은 어디로 갔소! 이런 장군을 두었던 고려도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망하게 한 근본적인 종교는 어떤 종교였는가! 불교였나, 유교였나? 오늘을 망하게 하고 있는 종교는 지중해 문화 기독교인가? 신라 겹사돈 두 김씨 놈과 당나라 소정방이와 짝짝 꿍 지 민족 엄청난 학살, 살상, 살인 행각을 했던 화랑도 그리고 당나라 군대가 17년 동안 있었던 것을 만약 내가 이런 것을 못 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원으로 당으로 명으로 청으로 식민지 인수인계 때국 놈 식민지 리조 약 500년 동안 의인들을 깡그리 죽인 비열한 대 살인자 리성계 조선 5째 아들 리방언 민족의 대 살인 역적 놈 고려의 충신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명나라에 년 7십만 양씩 상납을 상속한 자 그 세월이 리조 5백년이라 세종대왕의 아버지 리방언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고려의 충신들을 그리고 백성들을 죽었다. 343여회의 민란이 일어났던 리씨 왕조 시절 피로 시작하고 피로 끝난 리성계 족속들 만약 내가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못 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공자, 맹자, 노자, 묵자, 관자, 순자, 장자, 모택동, 등소평까지 태극을 만든, 송나라 지방관리 주돈이(1017-1073), 음양, 오행, 주자(1130-1200)학에게 년 7십 만 양씩 공식 상납 비공식은 또 얼마였는가? 이 놈의 유교여 - 저주하노라 - 온 나라가 썩을 데로 부패되었던 때 동학의 녹두장군 절세의 애국자 외세를 철저히 반대하며 평등주의를 힘껏 부르짖었던 전봉준 어른 그 해 1895년 5월11일 날 전봉준 장군은 때를 만나니 하늘과 땅이 힘을 모아주고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바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따랏나이 내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나라 사랑하는 마음 그 누가 알아주랴, 라는 시한 수를 남기고 41세(1854-1895)의 젊은 나이로 당당히 기꺼이 떠났다. 나는 이런 것들을 꼼꼼히 못 보고 못 읽었다 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청이 왜놈들한테 망하니 그 재산이 쪽바리들에게 인수인계 된 것 조선 땅 1백 년 전에 미. 일이 비열하게 야합으로 각가지 엄청난 수모의 식민지 약36년 성 노예와 왜놈 군대 51년 주둔 한 것 등등... 최익현, 림병찬 의병장님들, 안중근 의사와 3.1절과 신채호 선생님, 김구 선생님과 여러 많고 많은 항일투사님들 의사, 열사님들의 존함을 모두 쓸 수가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특히 이름 없이 돌아가신 민족의 영웅들의 자존심이 참으로 그립다. 만약 이런 것들을 자세히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36년 피 고통의 왜놈에서 양키 미국 식민지로 인수인계 상전이 바뀐 지 58년째라 93년이냐, 백년이냐? 그 것도 부족하여 - 외세의 서양문화 천민자본주의와 망한 공산주의 이 무식한 남의 것 때문에 이 것들 때문에 이 지중해 문화들을 가지고 서로 원수라고 철천지원수로 38도선이 생겼다. 저- 위 온성에서 서귀포까지 그 동안 이북은 소련, 중국 눈치 보며 남 것 망한 공산당 한다고 몸부림쳤고 이남은 천하 디 천한 미 자본주의 남 것 빙신 같이 섬기며 약350-4백만 명의 양민 학살 군인 포함 6백만이 비참히 죽어야 했던 6.25 전후 이 주의(사상) 두 개는 모두 서양 것 이 때 불교, 유교, 지중해 문화 천주교, 기독교의 귀, 눈들은 무엇을 했고 입들은 오직 처먹기만 했더냐? 팔, 다리는 허위적, 허위적 - 혀는 골방에서 산골짜기에서 기도만 했는가? 그리고 38도선 군사분계선 꽉! 미 양키 군인인 미군 일개 중령이 만들어 잘랐어. 그래가지고 철천지원수를 만들었고 서로 증오하는 세월 그 세월이 58년째라 만약 이런 것들을 밤잠 주리며 설치며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 대한민국 백성 4500만 생명인 국군통수권도 없는 대한민국 신탁통치, 현대판 노비문서 한미행정협정(SOFA), IMF 거 이 매년 약 10조 원이 훨씬 넘는 미국제 구형(흔, 헌) 무기 수입 지 민족 죽이자고, 또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의 미 침략이 있을 땐 대한민국, 일본, 이북까지 깡그리 망한다. 이북에는 나올 것이 없다. 있다면 엄청난 파괴와 우리 동포인 인명피해 뿐 그래서 지금은 MD 살상무기 팔려고 있을 수도 없는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전쟁은 물 건너갔다. 고만 웃기지 말라. 58년 째 가지고 있는 7천만 생명 줄 국군 통수권 내놔라 미 양키야 - 이젠 속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고만 공갈 협박하지마라 만약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원나라 시절에도 아주 지고 가서 살며 노예로 살았고 때국 놈들 시절에는 소마차로 착실히 갔다 바쳤었고 왜놈 시절은 기차 길, 항구 만들어 착실히 실어가도록 갔다 주 고, 요즈음 미 양키들은 컴퓨터를 만들어 그 냥 손가락 하나로 날려가네 이렇게 천년이 넘도록 어느 나라에 얼마씩 매년 퍼주고 있는 지를 만약 이 것 등을 진지하게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 친일, 친미 사대매국노 행위를 민족 해방이 거꾸로 읽어보니 방해라 이 전후 8.15, 4.3, 6.25, 3.15, 4.19, 5.16, 부마, 5.18, 6.15, 이 친일, 친미 사대 매국노들은 지 백성 죽이는 것 그러면서 또 그러면서 지 바다에서 옆으로만 가는 꽃 개 쌈질로 한쪽은 디 지고 또 한 쪽은 훈장주고, 출세하고, 진급하고, 보상받고 옆에서 부러워하며 박수치고 이 병신육갑 떠는 것들 오늘까지 이남 지진아 정치인들의 사대 매국노들의 행각 만약 이런 것들을 충혈 된 두 눈으로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정치계, 법조계, 종교계, 언론계 많은 자신들과 자식들 군대에 보내지 아니하면서 자신들이 스스로 더러운 빨갱이들이면서 그 것을 모르고 사는 껍데기들 쭉쟁이들 빨갱이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지랄들이고 이남 수구, 보수 반민족 사대 행각과 탈세하는 여러 언론들 이 놈들은 손가락으로 글씨 쓰는 것이 아니고 발가락으로 글씨를 써 이런 더러운 심청구멍들을 만약 자세히 못 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오늘에 종교 5700개, 하나님도 5700개 다 - 인간들이 만든 것 그러니까 하나님도 인간들이 만들어 죽기 살기로 섬기는 것 서로 지 형제자매를 엄청 매도하고 사대매국으로 서로 여러 악질 적인 방법으로 지 민족 죽이는 종교들 지중해 문화 기독교, 천주교 이 들의 종교를 앞세우고 엄청난 식민지 살인의 이 지구 역사 그러니까 다시 말해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세아 등등의 식민지 역사 미 양키 놈들의 군대 1945년09월08일 침략으로 들어와 58년 째 대한민국에 와 각종 범죄 하루에 평균 5건의 범죄 도둑, 강도, 폭행, 자연파괴, 강간, 살인 등등 만약 이런 것들을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위대하다는 눈으로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 212년 동안 약230회 이상 남 나라 침략 전쟁 2-1개 월 전 미국의 아프칸이스탄과 이라크 침략전쟁에 엄청난 양민들의 희생을 만약 이런 것을 자세히 못보고 못 읽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점괘인 국기 태극기도 우리 것이 아니요 스콧트랜드 민요곡인 올드 랭 사인인 우리 국가 애국가도 우리 것이 아니요 품새, 틀 동작들은 왜놈들 것이요. 철학은 때 국 놈들 것 생각은 천민자본주의 식 미 양키 것 국기 태권도도 우리 것이 다 아니야 그러나 겨루기만은 우리 것 모든 학문까지도 다 남 것을 표절 했드라고 이 것이 약 1400년의 외세 예속 때문이라고 오직 우리 것은 우리 한글뿐이었다 것 왕왕 댔던 유럽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가 쓴 재생 론 대 개혁의 르네상스(Renaissance14-16세기)를 만약 못보고 못 읽었다면 그래 선가 구체적으로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한 생명은 이 인류와도 바꿀 수가 없는 것 이 지구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가 없는 것 한 인간 생명을 손바닥 위에 정중히 올려놓고 감히 본다면 어떤 우수하다는 학문들도 어떤 위대하다는 종교들도 오늘에 어떤 엄청난 기술(technique)들도 이 세상 모든 것은 상식에 불과 한 것 이런 것인데 말이다. 이런 것인데 말이다. 오늘은 남 나라까지 가서 남 생명들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살인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학살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도 남 땅에서 객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더더욱 미국 212년 역사에서 약 230회 이상 남 나라들을 침략하여 대 살상을 서슴없이 저질은 미 양키들을 대신해서 말이다. 14살짜리 효선이 미선이를 미 장갑차로 깔아뭉개 죽여 놓고 미군 지들 끼리끼리 남 땅에서 남 백성을 죽여 놓고 남 땅에서 양키 판사들이 무죄로 판결하고 지들 나라로 보내 버린 야만인 놈들이다. 이런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선과 악 이런 옳고 그른 분별을 만약 못보고 못 읽었다면 이런 불의와 정의의 구분을 못했다면 그런 태권도 보급 개척자 정신이었다면 그런 무도인의 의식이었다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고 그리고 나는 나의 심장에 뾰쪽한 칼(비수)로 꽉 꼽았을 것이고 또 말이다. 나는 내 머리통을 당당히 꽉 잘라 뚜껑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다. 9220년(2001년)07월04일. 9222년(2003년)10월09일. 9222년(2003년)10월31일. 창립회장 림 원섭 씀. 무윤학 - 전 무도 윤리 학회 - 全 武道 倫理 學會 AMEA - All Martial arts Ethics Academy amea@chello.se www.amea.nu http://cafe.daum.net/wmhgf
림원섭 2003.11.26
내가 베트남에서 생겼던 일 아래 생긴 일로 난 깊은 잠에서 깨우치기 시작을 했던가!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낙하산을 타던 난 태극기를 이마에 양 어깨에 기세등등하게 붙이 고 1966년 봄에 큰 배를 타고 근 1주일이 넘게 달려 월남에 갔다. 바다 물고기도 날개가 달려 날라 다니는 것을 보면서 배 멀미가 고약한 것도 경험을 하면서 월남 태권도 교관으 로 갔다. 내가 처음 부임한 곳은 제2사단 지역 ‘꽝나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추라이’ 우리 해병대 지역과 매우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약 3십리 가까운 거리에 월맹(베트콩)군 사단 이 있다는 곳이다. 미 고문관 숙소에서 미 양키들의 식사를 하며 살기란 정말로 힘이 들 때다. 그래서 월남 에 아주 작은 고추가 매우 맵다. 난 매운지도 모르고 식사를 하면서 뚝뚝 비어 먹으니 식 당에서 일하던 월남인들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는 것이다. 그 후 설사를 만나 혼 줄 이 나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 3번의 죽을 고비를 경험했다. 손금이 길었던지 구사일생으로 산 사람이다. 한 번은 운전을 하고 가던 중 총알이 유리창을 뚫고 날아와 내 얼굴 매우 가까이 스치고 지나간 일이다. 씽하는 바람소리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는 기름을 반질반질하게 칠하며 공사 중인 나무다리를 건너러 다가 난간 약1cm에 서 내 찝차가 섰던 것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약5-60m 낭 떨어진 곳 이며 밑에는 물이다. 이 다리를 세워 놓으면 섣달 열흘도 못가서 폭파가 되는 다리다. 세 번째는 내 숙소는 미 고문단 팀의 숙소인데 거 이 1주에 한번 혹은 두 번씩 베트콩 박 격포가 떨어지는 곳이다. 어느 오밤중에 쨍 - 쨍하며 찢어지는 소리가 또 요란하여 깨어 서 옷을 들고 속옷 바람으로 잽싸게 방카로 갔다. 벌벌 떨고 있는 자들이 나만 있는 것 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코앞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군목(목사)이 직통으로 이마에 총알 을 맞아 직사했다. 이 고문단 숙소에 베트콩이 들어 와 있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사에 살벌할 때다. 근 1시간 반이 지난 다음에 조용해져서 나가보니 여기 저기 시체들이 있고 또 내 방에 가 보니 나와 반대편에서 자던 미군이 즉사해 있었다. 물론 내 방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 었다. 어떻게 내가 살게 되였는지 납득이 가지 아니할 정도다. 산 이유가 있다. 그 때 베 트콩들이 쏘는 박격포들은 수류탄처럼 터지면 파편들이 위로 솟는 것이 아니고 어느 곳 에 닫던 지간에 밑으로 퍼지는 폭탄이다. 그런데 그 베트콩 박격 폭탄은 본인이 자는 방 벽 쪽 위에서 터지는 바람에 우산처럼 퍼 지는 그 파편들은 내 몸만 남겨두고 퍼져 나가 나와 반대편에서 자던 그 미군 병사는 즉 사하고 나만은 기적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 후 이 때 놀라서 비상종(Bell)만 울리면 놀라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서 귀국을 하 려고 신청을 하니 큰 도시 다낭으로 옮겨준 그 때가 1968년이다. 이 때가 1968년 구정 때 도시 게리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그 바로 전이다. 시체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1군단 도장을 가려면 미 양키들의 헬리콥터 장을 바로 옆 으로 지나서 가야 하기 때문에 그 때의 상항이란 그 널은 비행장에 새 까 막게 탄 시체들 이 가득했었다. 머리도 없는 시체, 발 다리가 만 있는 시체, 몸통만 있는 시체 등등 참 아 눈뜨고 볼 수가 없는 가지각색들의 시체들이었다. 이 때 나의 느낌은 왜, 왜, 같은 동족끼리 서로 죽여야 하고 왜, 남들인 우리나라 군대 와 미군들이 와서 죽어주면서 싸워줘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기억이 나 기를 내 어린 시절 6.25 때 동네 마을에서 죽은 시체를 본 기억이 나고 내 부친 생각도 났다. 여기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이 되였다. 왜‘라는 단어는 계속 꼬리를 물었다. 그 도시 이름은 제1군단 지역인 다낭(Danang) 이라는 도시인데 베트남이 남북으로 잘린 군사분계선이 있는 바로 밑에 옛 왕궁 터가 있는 ‘후예’라는 도시에 제1사단이 있고 그 밑에 다낭이라는 도시에 1군단이 있고 그 바로 밑에 제2사단이 있고 그 옆 ‘추라이 ‘에 우리 해병대가 주둔해 있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이 다낭 지역에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 ’곰탕집‘도 있는 월남에서 2번째 큰 도시다. 그 후 어느 날 군 찝(Jeep) 차를 몰고 다니던 본인은 빨강 신호등에 의해서 정지를 했 다. 그 순간 뒤에서 꽝! 하여 내려서 보니 오토바이가 내 차를 들이 받아버렸다. 그러니 군 용 차량보다 약한 그 오토바이가 상할 수 밖 없다. 뒤에서 와서 받은 충돌은 니가 잘못 을 했으니 난 간다고 하니 날 붙들고 놔 주질 아니한다. 충분히 뿌리 칠 수가 있지만 갑 자기 모인 관중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설명을 친절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납득이 간 그 오토바이 운전수는 말이 매우 재미가 있다. 당신이(나보고) 우리나 라(월남)에 오질 아니했으면 이런 사고가 나지 아니했지 아느냐 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 똥찬 말이다. 그렇게 표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느그 나라 정부에 서 초청을 해서 왔다. 하니 그 자는 우리 국민은 원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망가 진 오토바이 수리비를 내라는 것이다. 이런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경찰들이 왔다. 그래서 응원자를 만 난 기분으로 신이 나서 그 상항을 설명을 했다. 그 오토바이 운전수도 신나게 설명을 했다. 다 듣고 난 그 경찰 은 뜻 밖에도 내 편이 아니고 자기 백성의 편이였다. 그 경찰도 말을 하기를 니가 여기 에 오지 아니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아니했지 않느냐 그러니 수리비를 내고 가라 그리 고 너는 부자가 아니냐? 하는 식이다. 이 다낭 주민들에게 삥 둘려 싸인 난 겁도 나고 해서 그 자리에서 다행히 있는 돈을 주 고 곧바로 1군단 도장으로 가서 날 도와주고 있는 즉 내 소속 상관격인 소령이 있는 사무 실에 가서 그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니 그 밑 하사, 중사, 중위, 대위, 소령까지 모두 내 편이 아니고 자기 국민의 편이었다. 내가 교통위반자라는 것이다. 이 때 난 매우 억울했다. 그러나 난 사색을 하기 시작을 했다. 왜, 이들은 자기들을 직접 가르치는 태권도 사범 편 이 아니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이들은 끈질기게 설득하는 나의 편이 아니고 철저히 자 기 백성의 편이였다. 고로 여기에서부터 이 우둔한 머리는 깨우치게 되였던가! 그래서 이 베트남은 옛 진시왕도 지배를 못했던가! 그랬던가! 나는 군 생활을 할 때 미 고문단 하사관에게 우리 대한민국 장교가 먼저 경례 를 하는 것도 보았고 또 월남에 가서는 키가 큰 미군 장교들이 키가 작은 월남 하사관들 에게 꼼짝 못하는 것도 보게 되였다. 9222년(2003년)11월16일 씀. www.amea.nu http://cafe.daum.net/wmhgf amea@chello.se
림원섭 2003.11.28
도장에 오는 자들은 누구 내 도장에 내 학교(유, 초. 중. 고. 대)에 내 직장에 내 가게에 내 식당에 내 병원에 내 이발소에 오시는 손님들 사범님을 선생님을 교수님을 그 주인님들을 존재하게 하는 자들 그들은 그 존재에 감사할까 그들은 손님 대접을 해주고 있는가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데 먹고살게 해주는데 존재하게 해주는데 그 손님들이 감사하다고 할 때까지 그 손님들이 최고라고 해줄 때까지 알량한 지식이었나 당당한 지성이었나 혹시 교만방자 했나 품질이 좋았나 귀하는 오늘도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가르쳤는가 귀하는 오늘도 질이 얼마나 좋고 나쁜 것을 팔았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들에게 확실하게 완벽하게 정직하게 분별을 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거울은 얼마나 보았는가 묻노니 나부터 양심에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가 창립회장 림원섭 전all 무도 윤리 학회(AMEA) amea@chello.se www.amea.nu http://cafe.daum.net/wmhgf
양미리 2004.05.27
단급제도와 관련된 강의를 들은데로 기억을 더듬어 올립니다. 제가 대학시절 무도론수업시간에 배운것으로는 무술에서의 단급체게는 강도관유도창시자인 가노지고로에 의한 것. 이유는 일본 교과서에 유도와 검도를 수신(현재의 체육)과목에 넣으면서. 그전에 무덕회에서 제정형을 만들었고, 제정형을 토대로 급과 단을 구분한 경우가 대표적인 유도와 검도. 단급제도이전에는 칭호제가 있었음. 사범-연사-교사-범사 그러던 것이 단으로 구분된 것임. 결국 무술에서의 단급제도는 100년도 안된 것. 한국의 태권도는 이 단급제도에서 급을 더 세분화시키는데 일등공신. 원래는 교육과정의 일환인데, 나중에는 도장 장사, 단이나 급장사로 전락한 경우. 이렇게만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