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를 겸비한 태권도 사범 양성의 산실, 세계 태권도 사범 연수원

저명한 독일잡지에 실린 이규현 사범
매주 토요일 오전9시면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의 조용한 산골짜기는 "Good morning, sir?"라는 영어인사로 소란스러워진다. 산 좋고 물 맑은 이곳 양평에 바로 세계태권도 사범연수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문무를 겸비한 태권도인재의 양성"이란 목표아래 국기원 교육분과 위원장인 이규현 사범(9단)이 설립한 세계태권도 사범 연수원에 입학한 사범들의 중요 과제중의 하나가 영어로 태권도를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기에 세계태권도 사범 연수원에 입학한 사범들은 반드시 매주 일정분량의 영어회화를 숙지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넘는데 영어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수련생 지도에 정신 없는 일과 속에서 틈틈이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환갑이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손에서 회화책을 놓지 않는 사범님을 뵐 때마다 부끄러워서라도 공부를 하게 됩니다." 전북 김제에서 새벽2시에 출발하여 밤을 새다시피 고속도로를 달려왔다는 한 사범의 말이다.
일선 태권도 관장이나 사범으로 수련생들을 지도하며, 눈코 뜰새 없는 한 주일을 보내며, 주말마다 꼬박 빠지지 않고 이곳을 짧게는 일 년, 길게는 7년 동안이나 다니게 만드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곳의 원장인 이규현 사범의 열정적인 태권도 강의에 있다고 모든 원생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치고 모두 자리에 앉아 영어책을 펴자 "영어는 공부가 아니고 다른 세상을 알기 위한 도구이며, 기술에 불과하다"는 서두로 조용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의 영어 공부가 시작되었다.
"저도 부족하기에 함께 배워 가는 것입니다. 누구는 날 때부터 영어를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그리고 이루어 가는 것이 무도정신이듯, 영어도 한 단어, 한 문장 차분히 배우고 익히면 누구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태권도를 세계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 시키고 보급하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영어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는 이사범의 말이다.
지난 1996년 이곳 경기도 양평군 한 자락 땅을 사재를 털어 구입한 이규현 사범은 아담한 연수원을 짓고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바라지도 않은 채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일구어 낸 태권도의 이론과 실기를 다음세대에게 아낌없이 주려는 작은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련은 그 무섭다는 해병대 훈련처럼 혹독했다. "제가 월남전 당시 2년 동안 해병대 수색대로 근무했습니다. 수 없는 사선을 넘나들며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 같은 전장을 살아 나오게 해준 것은 소실적부터 몸에 익힌 <태권도 정신> 때문입니다."
3번 이상 결석하면 한학기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하며, 지각은 용서 없는 꾸지람으로 무거운 과제의 벌로이어진다. 매주 일정분량의 과제수행이 주어지고 결과를 발표해야 하며, 동기생들을 수련생으로 가상하며 지도방법을 배우는 모의 강의훈련, 한 달에 한번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평가시험 등, 웬만한 대학원 분량의 공부를 마쳐야 수료증이 주어진다.
1기생 모집 시 50여명 가까웠던 입학생들이 수료증을 받은 사범들은 절반도 못 미치는 20여명에 불과했다. 고된 연수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거나 탈락한 것이다. 사범들의 불만과 탈락이 속출 했지만 이사범의 의지는 강렬했다.
"지금 태권도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인간성을 잃어 가는 현대사회에 올바른 자아를 확립하고 남을 배려하는 예절 바르고 성숙한 인간을 길러 낼 수 있는 교육과정인 것입니다. 그러한 태권도를 지도하는 사범들은 반드시 문무를 겸비하고,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부끄럽지 않는 지식과 기술 그리고 올바른 인간성을 지닌 스승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정도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졸업 할 때 우리 연수원생들의 가슴에는 태권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자부심이 싹트고 스승으로서의 긍지가 배어날 것입니다." 수료식 때 마다 한결 같은 이사범의 제자들에 대한 격려의 말이다. 이러한 이사범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졸업생이 반드시 친구나 선후배를 소개하고 또한 관장들은 자비로 사범들을 입학시켜 해마다 20여명 씩 7년간 졸업생들을 배출해 왔다.오전 9시부터 12시 반까지 중간에 10분씩 2번의 휴식을 제외하고 스피디하게 이루어지는 강의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진행되었다. 영어수업을 마치자 준비체조로 몸을 풀고, 태권도의 기본동작과 용어 품새와 호신술, 발차기와 격파술 까지 적절한 유머와 명쾌한 이론, 강렬한 카리스마로 쉼 없이 몰아치는 이사범의 지도로 원생들은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힘찬 기합으로 예를 표하지만, 이내 후들거리는 다리와 가파 오는 숨을 주체 못하며 헉헉대기 일쑤이다. 태권도가 직업인 사범들도 견디기 힘들만큼 고된 수업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힘들면 조용히 구석에서 단정히 앉아 숨을 고르고 다시 수업의 열기로 빠져 든다.
"어제 집안에 행사가 있어 술을 좀 했더니 아이구 죽겠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쉬는 시간에 마주한 제천의 한 관장은 무엇이 세계태권도 사범연수원 수업의 매력이냐는 질문에 "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잃어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도 있구요. 또, 사범이지만 가장으로서 생활인으로서 느껴지는 딜레마도 있구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이곳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죽어라고 땀을 흘리며 배우다 보면 맘속에 기쁨도 느껴지고 무언가 희망으로 가득 차 다시 일주일을 보람차게 보내게 됩니다. 저희들끼리 이렇게 말하죠. 이건 중독이야, 중독! 실제로 전 제천에서 올라오지만 전날에 미리 여기 올라와 새벽에 차 안에서 잠깐 눈 붙이고 배우는 사범 중에는 전남 영광에서 올라오는 사범도 있습니다. 잃어 가는 나를 찾고 때론 삶의 희망을, 때론 교육자의 자부심을 채워 갑니다. 그게 최고의 매력이죠."
강의 계획표를 보니 참으로 다양한 내용의 수업들로 가득하다. 태권도 기본동작, 기본 및 고급발차기, 유급자 및 유단자 품새, 고단자 및 창작 품새, 태권무, 구형품새, 맞추어 겨루기(한 번, 두 번, 세 번, 앉아 겨루기) , 격파술, 호신술, 신체조정술, 약속겨루기, 태권도 호신무기술 태권봉, 경기겨루기, 실전겨루기, 겨루기 이론, 태권도 호흡법, 지도자 이론 및 철학, 시범론, 수련생 지도법, 도장운영법, 교육프로그램 제작법, 아동심리, 스트레칭, 요가 등 수십 종의 강의는 1년 과정으로 다소 빠듯할 듯 하다. 실제로 사범 연수생들은 1년 동안 수료과정을 마치고도 자진하여 계속 수업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고된 수업이 세계 태권도 사범 연수원의 전부는 아니다. 함께 점심을 나누며, 때로는 술잔을 기울이며, 사범들은 각자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한다.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기쁨은 함께 나눈다. 실제로 교육생이나 졸업생들 중 누가 결혼하면 주례는 이사범님께 청하고 다함께 축하해주며, 상을 당하면 모두 십시일반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런 상부상조의 모임이 후배간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 동기간의 정을 끈끈하게 하여, 세계태권도 사범연수원 출신의 사범들은 도장의 행사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오는 3월 8일, 제 8기생을 맞이하는 연수원은 올해부터 강의 방식을 다소 바꾸어, 국기원 교육분과 부위원장이기도한 제자 3인방, 이재학 부원장의 품새지도, 박종일 부원장의 겨루기지도, 한강래 부원장의 호신술 지도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사범이 소년기부터 지도한 제자들이 장년의 나이가 되어 스승의 강의를 돕게 된 것이다.
또한 이사범은 지난 4년 동안 유럽태권도 연맹의 초청으로 해마다 한번씩 유럽의 품새 강의를 지도하고 있다. 독일의 한 저명한 태권도 잡지는 지난해 이사범을 품새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그것은 이사범의 품새를 실전호신술과 연결 지어 강의하는 독특한 태권도 해석 강의 때문이었다. 앞으로 세계태권도 사범연수원은 독일 및 영국지부를 필두로 미국에도 지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태권도는 내적인 에너지를 호흡으로 갈무리하여 원과 선과 점으로 이어지는 공격과 방어를 수련하는 무도입니다. 정신과 기가 일치하고 기술이 부합될 때 수련자의 태권도는 깊이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요즘의 태권도가 초등학생들이나 수련하는 호신술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우리 태권도인의 책임도 큽니다. 사범들 스스로 자질을 향상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애쓴다면, 태권도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환하게 웃으며 일일이 제자들과 악수하며 배웅하는 이사범의 등뒤로 아름답게 지는 저녁놀이 희망찬 일출처럼 느껴지는 것은 세상에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의 힘에 기대어 세상을 위해 애쓰려는 한 무도인의 아름다운 삶을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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