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무술의 시작과 끝
우리들에게 중국 무술이 전해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들이다. 또한 중국 내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어 지금의 경기 무술을 만들어 냈다. 경기화가 된 50년의 역사 그리 길진 않지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 졌으며 어떠한 무술이 되어 가는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중국 무술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먼저 시대를 올라가 명,청 시대를 논하여 할 것 같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중국 역사는 아직 미 개발지역과도 같다. 간단하게 논한다면 냉병기와 열병기로 나눌 수 있다. 화포가 나오기 전의 냉병기 시대와 화포로 인하여 기본적인 체조정도로서의 무술이 된 열병기 시대.
그렇다면 지금의 무술은 명청(열병기시대의 시발점)시대의 내용을 그대로 본을 받았다. 중국 무술사에 보면 명청 시대를 상당 부문 띄어 놓고 있다. 무술체제가 극대화되고 무술의 종류가 많아지고 또한 이론적인 부문이 체계화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왜곡으로 많은 시람들은 중국무술의 실체를 모르고 지나쳐 간다.
명대는 몽고족이 지배한 원나라를 중국 한족들이 지배한 시기이고 청대는 만주족들이 차지하였지만 만주족 자체 인구가 많지 않은 관계로 한족이나 다른 민족을 쓰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땅을 먹기 위한 전쟁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서로가 구테타를 일으키는 사회에서 무술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사회적 풍토를 보면 군대가 아닌 민간인이 무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이다. 그토록 나라의 법이 엄격했기에 아무나 무기를 가지고 훈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내가권이 명청시대 나왔을까?
이유는 하나이다. 당시 사회의 상태로 보았을 때 내가권은 무술이 아닌 유희(게임)이었다. 무술을 못하는 시대에서 민간인들에게 보급을 할 수 있는 것은 도가의 양생공을 무술의 동작과 맞추어 하나의 놀이 형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태극권을 보면 처음에는 혼자서 하는 투로 다음에는 둘이서 하는 추수 등으로 되어있다. 추수는 말 그대로 상대를 손으로 미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놀이 문화에서 후대로 넘어오고 사회가 자리잡히면서 다시금 무술의 형태로 넘어온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팔괘장이나 형의권에도 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모르고 지나쳐 왔으며 지금 현재모습의 무술이 멋이라든가 아니면 형이무술(표현 무술)의 그늘에 가려져 중국 무술의 실체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투로(표현무술)는 명청시대에 가장 많이 나오기 시작하게된 것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동작을 기술이라고 나오는 이러한 상태는 과연 진정한 무술의 뜻이 담겨져 있을까?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당시(명청시대)의 무술을 알 수 있다. 황비홍 등의 영화에서 보면 길에서 무술을 보여 주고 돈을 받는 최하급의 무술. 이들은 생존을 위하여 무술을 팔아야 한다. 또한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술이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경기무술을 시발점이 되었다.
상급 무술인 군사무술과 민간 무술을 지금에 와서는 저 밑에 가 있으며 위와 아래가 바뀐 사태가 벌어졌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사회가 어려운 시대일 때 중국 무술계에 영웅이 되어 버린 누구 하나의 생각으로 이렇게 되어 버렸다.
중국은 현재의 무술을 이어 갈 것인가? 아니면 개혁을 할 것인가?
지금 현재 중국 무술은 투로와 산수로 되어 있다. 무술의 형태가 언제부터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었을까?
90년대 이전에 대만에서는 투로와 산수가 같이 되어져 있는 무술 시합을 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무술 형태가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21세기에는 무엇보다도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올림픽이라는 것에서 그 자리를 잡아야하는 직면에 놓여 있다. 그토록 많은 무술이 있고 동양무술의 본고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무술의 형태는 무엇일까?
발차기(태권도), 넘기는 기술(유도), 꺾는 기술(합기도), 검(검도)등 이토록 무술의 차이를 기술의 형태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가, 언제, 어떻게 하면 빨리 하나의 시합의 형태로서 자리를 잡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격기성 중국 무술인 산수는 킥복싱과 흡사하며 또한 지난해 중국과 태국선수들이 함께 한 경기에서 중국은 무차별하게 지기까지도 했다. 당시의 시합 규칙은 중국 산수 규칙으로 하였으며 참가한 선수들의 경우도 중국은 국가대표들이 나오고 태국은 3류 급 선수들이 참가하여 중국 선수들이 여러모로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국 선수들에게 참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무술인을 이겼다고 자랑한다. 한국대표로 참가한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가관이다. "내가 왜 시합을 나왔는지 무슨 시합을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내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실망을 주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태가 자주 발생된다면 한국의 무술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아주 하급 무술로 자리 잡힐 것이다.
현재 중국 무술 협회의 임원중의 누구는 한때 중국 무술에서 전통은 없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논문을 발표까지 하면서 자신의 졸업논문은 민간무술에 포커스를 맞추어 논문을 쓰기까지 했다.
기회주의와 쾌락주의가 함께 내재되어있는 중국 무술에도 하루 빨리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되었으면 한다. - 그들의 근대 무술사에서 일본에게 태극권 협회까지 넘겨줘야 할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을 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야할 길을 모른다는 것이 많은 무술인에게 실망과 좌절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2002년 11월 이전에 <2008년 중국 무술>이라는 종목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통보가 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여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한국 내에서도 우슈라고 하면 아직 미흡한 것이 많고 발전을 못한 것은 사실이나 단순히 중국에서 어떠한 변화나 발전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체적으로 중국 무술의 전통을 이어가며 연구를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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