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현대합기도가 성립되기까지 유술이 미친 영향(1)

1. 서론


현대합기도는 그 수련의 형태나 발전 과정에 따라서 한국식 합기도와 일본식 합기도(aikido)로 구분 된다. 그것은 같은 같은 한자문화권인 동양에서는 특히 국내에서 이러한 구분이 시작 된지는 10년이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양 무도인의 시선으로는 오래전부터 이분류가 시작되었다.

한국식 합기도는 한국 고대의 전통무도에서부터 시작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울대학의 나영일교수는 현대의 무예서적중 합기도계열의 무예서적이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이들은 그들의 무예가 예로부터 비전된 특별한 무예라는 식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고유무술의 기술적인 내용을 전하지 않고 무작정 실고 있는 것이 많다. 라고 하며 한국식 합기도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에 대해 문제를 재기 하고 있다.

처음에 한국에 합기술의 원류인 대동류합기유술을 전래 시킨 사람은 최용술과 장인목에 의해 서이다.
최용술은 어린시절 일본에 입양되어 대동류(합기)유술을 수업하고 해방후 귀국하면서 대동류합기유권술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전래시켰고 장인목도 일본의 북해도에서 살면서 대동류합기유술을 수업하고 해방후 귀국하면여 한국에 대동류합기유술을 전래 시켰던 것이다.(1995.박종길)

이렇게 시작된 것이 많은 사람이 많은 사람이 수련하면서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정착되기 시작했고 합기도의 기술에 자신의 새로운 기술과 역사성을 부여하여 새로운 이름의 합기도계통의 무술들이 탄생하였다.
일본의 합기도는 우에시바모리헤이에 의해서 창시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배운 여러 무술로부터 합기도를 개발하고 종합했다. 그의 합기도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기술들의 발생 시기는 7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우에시바의 경력을 간추려 보면 기토류, 신가께류, 다이토류, 유술등과 야규류 검술, 보장원 창술등이다.(1971.Westbrook외)

위에서 말했듯이 합기도는 공통적으로 대동류유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합기도가 유술적인 요소를 배재하고는 설명될수 없으며 유술에서 발전된 현대적 무도라는 점을 나타낸다.
이미 합기도는 인종과 국적을 토월하여 세계 약 50여개국의 나라 천2백만명 이상이 합기도를 애호하고 수련하고 있다.(1991.Westbrook)

그리고 국내 합기도 인구느 통계로 문화 체육부(1992년)에 920여개에 달하였다. (1994.나영일) (현재 합기도 도장은 비신고재 이므로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합기도의 인구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여 지며 이것은 합기도의 장점이 현대의 생활에서 인정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하나의 문화적현상이 생명력을 가지고 보다 발전하려면 역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분명한 정리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본연구는 양국의 합기도에 영향을 미친 유술에 대해 알아보고 합기도의 역사 정립에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2. 연구의 제한점


본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제한점을 두었다.

첫째 유술은 양국의 합기도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한국식과 일본식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
둘째 일본에는 약 260여개의 유술의 유파가 있지만 합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유파는 기도류, 대동류, 신음류, 가지마신류이기 때문에 연구는 위의 유술로 제한하였다.
셋째 철학적인 무도관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 다루었다.

3. 고류(古流) 유술의 형성


(1). 유술의 발생기원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하였다. 이 생존에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술은 필수적인 요소이다.고대유술은 지금의 모습처럼 한정 되어 있지 않았다. 싸움에서의 모든 생존을 위한 기술을 총 망라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유술을 기원을 일본의 스모우라는 씨름으로 보고 있다.우리나라늬 씨름의 기원을 고구려 벽화인 각저총 무용현실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다른나라에 어떤 경로로 전파 되엇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유술의 기원은 고대의 맨손 격투기에서 찿는다. 천황이 야견숙이(野見宿 )와 당마궐속(當麻蹶速)의 두사람을 조정에 불러 그시합을 보았는데 이것이 일본 사기에 실려 있다. 이 승부에서 숙이가 궐속을 발로 차 쓰러뜨리고 그 늑골을 밟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생사를 건 격투기의 원형이 여기에 보인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쟁력(爭力)과 각력(角力)으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한 격투기임을 알수 있다.(대곡무일외,1951)

그후에 일본의 스모우는 일본의 천황이 전국의 역사들을 모아 씨름을하게 하고 이를 관람하는 행사로 변화한다. 동시에 스모우는 의례화 되고 형식화 된다. 8세기경에는 스모우에 48수의 기법이 제정 된다. 이때 찌르고 때리고 발로 차는 3가지 법은 금지 된다.

그후로 일본 스모우는 일본천황이 역사들을 모아 씨름을 하게 하고 이를 관람하는 행사로 발전 한다. 동시에 의래화 되고 형식화 된다. 8세기 경에는 스모우에 48수의 기법이 제정된다. 이때 때리고 발로 차는 3가지 기법은 금지 된다.

그러나 12세기로 접어 들면서 무사계급의 대두로 쇄퇴되며 그대신 조계(組計)-(구미우찌 , 맞붙어 싸움, 격투) 즉 격투술이 발전되어 실전에서 무사들에 의해 체계화 되고 발전된 것이다. 12세기 일본 무사들은 활, 칼, 창, 마술, 구미우찌(組計)의 5가지의 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활이나 칼에 맞아 떨어져도 죽지 않으면 다시 싸울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 최후에는 머리를 베어야 끝이 났다. 이러한 상황은 힘이 약한 사람이라도 강한 사람을 제압할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단 무사가 되면 이러한 격투를 위한기술을 평생 연마하지 않으며 안되었던 것이다.(寺尾正充,1991)

격투기에 의해 던지기 기술이 발생되고 던져 쓰러트린 후에는 계속하여 굳혀 상대를 제압하는 가술이 발달하게 되었으니 이런 무사들간의 격투술은 구미우찌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 구미우찌의 연구가 더욱 발전하여 여기에 原柔術이 전하여 오는 고구소꾸고시노마와리(小具足腰之廻)가 탄생되는 것이다.

유술의 역사에 있어 가장 오래 된 유파는 데이호우산류야화라(寶山流和良)이다. 이유파가 발생한 연대는 상당히 오래 되어서 서기 1400년 전후로 추정 되고 있다. (山本義泰) 데이호우 산류의 창시자은 是山의 성주로 고꾸소꾸의 명수였다. 특히 요로우구미우찌에 정통하였다. 이유파는 기법을 집안에서도 단한사람에게만 전수하는 제도가 있어서 다른유파와 같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

일반적으로 유술의 원류느 捕手(도리테)에 있으며 이 도리데는 竹內流(다께우찌류)에서 더욱 발전 하였다. 도리데란 내가 먼저 걸어 꺽고, 굳치고, 쳐, 상대를 제압하는 기법의 形을 말한다. 다께우찌류의 창시자느 갑옷과 투구를 쓴채로 하는 구미우찌에 적합한 무술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여기에서 小具足(고꾸소꾸), 腰之會 (고시노마와리)를 체계화 시킨다. 고꾸소꾸란 1척 2촌의 단도를 허리에 꼿고 행하는 격투술을 말하며 고시노와 마리란 적을 포박하는 기술을 말한다.

다께우찌류는 원래 도리데, 고꾸소꾸고시노와마리와 마리, 권, 장, 거합, 대도, 승( ), 단검, 등을 포함하는 종합 무술로 야와라(和)와 도리데에 그 주체성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수족으로 때리고 차는 기법 그리고 명나라의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인용한 권법까지도 망라하게 된다. 다께우찌본가는 지금도 기법과 가계를 겸하여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방계의 계보만도 30여파가 넘는다.

17세기 이후의 각유파의 수는 무려 179류파로 확대 된다. 그유술들의 기법은 검, 유, 조계, 창, 거합, 단도, 승마, 수영, 봉, 승, 소대도등을 모두 포함한다. 소표류에 의하면 만물의 부드러운이나 약함, 강하고 굳셈, 느리고 빠름, 변화의 이치를 한몸의 동정에 따라 가르쳐야 하며 먼저 손발, 관절의 모양새부터 익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야와라(和)에 있어서 는 일이나 동작에 의해 적을 제압하지만 그것 이전에 마음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2). 야와라(和)의 발생

후쿠노(福野)라는 무사가 있어 스모에 능숙하고 무엇보다도 유술을 깊이 연구하여 유술의 많은 유파에 영향을 끼쳤다.중국에는 고래부터 유술이라는 것이 있어 이를 연가(軟家)라고 한다. 武備志(1624年)에서는 이것을 권법과 수박(手縛)이라고 부른다.

진원빈(陳元斌)이라는 사람은 명나라 사람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권법을 일본에 전해준다.
명나라에는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기술이 있었는데 진원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를 연구하여 일본에 전하였다. 후쿠노는 자신이 연구한 유술과 당시에 행해지던 유술을 연구하여 새로운 유술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진원무가 전하여준 유술 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독특한 유술을 고안하였다. 이것이 유술의 시초가 되어 이윽고 전국에 전파되어 수많은 유파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 술기의 연구는「유능제강」이라는 유술의 본의를 탄생시켰으며 상대와의 직접적인 부딪침이 없게 하고 항상 승리만을 고집하지 않고 허정(虛靜)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생성되게 되었다. 사물에 대한 왜곡된 마음을 버리고 사물에 대하여 무리한 힘을 가해 억지로 움직이게 하지 않고, 사물이 있으면 가볍게 다루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沈(沈着, 沈勇, 沈思, 沈重의 沈)을 느낀다고 한다.
후쿠노는 조식법(調息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였다. 그는 이 조식법 이야말로 권법의 신묘한 리기(理氣)라고 생각하였다.

후쿠노에게 영향을 받은 유파는 십수개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유술과 도리테의 원류가 된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낙법이나 공방법의 술기를 연마함은 기(氣)를 양성함과 동시에 정신수양에 그 목적을 두기 위함이다.
지금의 일본의 유술에서 찾을 수 있는 기의 운용법은 모두 福野七郎右衛門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良移心當流」라고 한다. 일본유술의 기교에 따라서 많은 유파가 완성되었지만 정신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치는 기(技)를 떠나 몸과 마음을 부드럽고 바르게 하고, 기(氣), 즉 심기(心機)를 잊고 마음의 움직임을 조절하며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사물에 하나로 이어지는 지극(至極)의 경지까지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응하여 인순(因循)으로 변화가 가능하게 되며 그 결과 자연의 무(無)로부터 나올 수 있다. 일본의 검술도 이치는 하나이다. 사람과의 다툼에서 이긴다는 생각으로부터 초월하여 스스로를 극복하는 길을 고안하여 자득(自得)하여야한다.

이를 수련하기 위한 방법은 극기(克己)와 복례(復禮)이다. 克巳란 기(氣)의 편재(偏奇)를 항상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정신의 차별, 신체의 허실을 깨닫고, 기(機)의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다. 復禮란 그 기(機)를 오래 동안 잊지 않고 의식하여 자연으로부터 변화를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유파도 지극의 경지는 무심무아(無心無我)의 상태이다. 그리고 원상(圓相)이라든가 원곡(圓曲), 대원(大圓), 극기(克己), 경지(鏡智), 신묘검(神妙劍) 또는 양심(揚心), 직심(直心), 등과 같은 것과 상통하게 된다. 그러나 방법은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댓글 6

김지호 2003.02.28
아쉽게도 그 내용을 전체적으로 설명드리기 힘듭니다만.. 병법가전서는 기본적으로 당대 최고의 지식층인 선승의 대표라고 할수있는 다꾸앙선사가 야규무네노리에게 전한 서찰들의 모음 정도를 편집한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병법에 있어서의 마음가짐 등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승려가 살생을 하는 방법인 병법에 대해 논한것이 이채로운 글입니다. 당시 퇴계이황선생의 학파가 일본으로 들어가 후지와라 세이카에 의해 성리학이 일본에 들어가게 돼는데 당시 성리학이라는 것은 일부 엘리트들만이 알고 있었던 학문이라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역시나 당대 최고의 선승인 다꾸앙선사는 이 성리학에 있어서도 상당 한 안목이 있었기에 검술을 설명함에 있어서 성학 십도와 이황선생의 敬의 마음가짐을 가 지고 병법에 있어서의 마음가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으흠... 내용이 매우 철학적이고 복잡한 관계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기는 힘드나 敬을 전체 적으로 설명하고 그 敬에 武를 섭렵하는 그러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류운 2003.02.28
원래 유가(儒家)에서 수기(修己)를 위한 실천 사항같은 개념인데... 일본인은 이렇게 무술적으로 적용을 시켰군요. ^^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호 2003.02.28
본문에 보면 ----------------------------------------------------------------------------------- 진원빈(陳元斌)이라는 사람은 명나라 사람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권법을 일본에 전해준 다. 명나라에는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기술이 있었는데 진원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를 연구하여 일본에 전하였다. 후쿠노는 자신이 연구한 유술과 당시에 행해지던 유술 을 연구하여 새로운 유술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진원무가 전하여준 유술 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독특한 유술을 고안하였다. 이것이 유술의 시초가 되어 이윽고 전국에 전파되어 수많은 유파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후쿠노에게 영향을 받은 유파는 십수개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유 술과 도리테의 원류가 된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낙법이나 공방법의 술기를 연마함은 기(氣)를 양성함과 동시에 정신수양에 그 목적을 두기 위함이다. 지금의 일본의 유술에서 찾을 수 있는 기의 운용법은 모두 福野七郎右衛門으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良移心當流」라고 한다. 일본유술의 기교에 따라서 많은 유 파가 완성되었지만 정신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라고 나와있는데 명나라의 진원빈(陳元斌)이라는 사람이 권법을 일본의 福野七郎右衛門에게 전해준것은 17 세기 초반으로 최초의 유술인 데이호우잔류가 만들어진 14세기에 3세기나 후에 전해진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가지고 ----------------------------------------------------------------------------------- 후쿠노에게 영향을 받은 유파는 십수개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유 술과 도리테의 원류가 된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낙법이나 공방법의 술기를 연마함은 기(氣)를 양성함과 동시에 정신수양에 그 목적을 두기 위함이다. 지금의 일본의 유술에서 찾을 수 있는 기의 운용법은 모두 福野七郎右衛門으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良移心當流」라고 한다. 일본유술의 기교에 따라서 많은 유 파가 완성되었지만 정신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이미 17세기 초 천진전일도류의 문서를 보면 조선의 동의보감의 내경편이 일본 무도에 영행을 미쳤음을 볼수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내경편에는 정(精).기(氣).신론(神論)에 근본을 두고 내장기(內臟器)의 생리적 기능변조(機能變調)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볼때 유술의 뿌리를 陳元斌, 福野七郎右衛門로 보는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일정 유파에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이나 위와같이 현재 일본에서 행해 지고 있는 유술과 도리테의 원류 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김지호 2003.02.28
퇴계 이황선생의 敬을 검술이론에 대입한 경우도 볼수 있습니다.
류운 2003.02.28
그 또한 흥미로운 내용(퇴계 선생의 敬 개념을 검술이론에 도입한 것)입니다. 괜찮으신다면 그에 대해 좀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전공이 유학이었던 관계로 관심이 가는군요. ^^
강준 2003.03.13
선생님의 글을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좋은글을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많은 자료로 남습니다.^^ *추신-야와라(和)의 한문표기가 잘못된것같습니다. 야와라(柔) 알고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