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정도회관 출신 선수들, ‘RINGS’ 무대에서 맹활약


정도회관 출신 카쿠다 선수
1992년은 정도회관 소속 선수들의 RINGS무대를 중심으로 한 활약이 돋보였던 한 해였다. RINGS 무대에는 사타케를 필두로 하여 카쿠다, 아담, 워트 등의 선수들이 주로 맹활약을 펼쳤고, RINGS 이외의 대회를 포함하더라도 월 1회 정도의 페이스로 대회에 출전하는 등 활약상이 두드러졌다.타 유파 개최 시합에 나섰던 정도회관 출신 선수들 중 카쿠다(오른쪽 사진)의 활약상은 다소 부진했던 반면 사타케 선수는 불패의 신화를 거듭하면서 순조로운 행진을 계속해 나갔다.
10월 달로 접어들면서 RINGS의 ‘메가배틀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순탄하게 승리 행진을 이어나간다면, 팬은 물론 사타케 본인도 늘상 바라고 있던 마에다(前田日明) 선수와의 대전이 내정되어 있었다.
사타케의 1회전 상대는 나가이(長井満也)였다. 그는 이 시합에서 손바닥 공격 단 한 방으로 나가이를 KO시켜버렸다. 당연히 심판이 자신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가이의 링 사이드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권으로 얼굴을 쳤다’는 것이 나가이 측 링사이드의 주장(RINGS 룰을 살펴보면, 손바닥으로 안면을 공격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정권 공격은 금지)이었다.
나가이 측의 거센 반발로 판정 번복이 몇 번이나 계속되다가 결국 사타케의 KO승으로 결말이 났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은 시합이 되고 말았다.
1회전 판정시비에 이어 2회전에서는 뜻하지 않은 오른쪽 흉골(가슴뼈) 부위의 부상으로 인해 사타케는 결국 그토록 염원이었던 마에다 선수와의 대전을 눈앞에 둔 채 눈물을 머금고 대회장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피터아츠
사타케는 그 대회 이후 RINGS의 무대에 두 번 다시 올라가지 못했고, 결국 마에다 선수와의 대결은 가슴 속에만 간직한 채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그 해(1992년) 최초로 일본 땅을 밟았던 피터 아츠(사진 왼쪽)는 역시 RINGS 무대에 첫 출장하면서 킥복싱 룰로 개최된 이 대회에서 아담 워트 선수를 멋진 팔꿈치 치기로 쓰러트려 KO승을 거두면서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한편, 정도회관에서는 자체 유파 시합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을 끌어들여 경기 룰에 다양한 변화를 준 실험적인 무대 ‘격투기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제 1회 대회에서는 사타케(佐竹雅昭) 선수와 모리스 스미스 선수가 가라테 룰과 킥복싱 룰이 혼합된 룰(라운드가 바뀔 때마다 가라테 룰과 킥복싱 룰을 번갈아 가며 적용함) 안에서 시합을 치뤘다.
이 경기에서 두 사람은 무승부를 기록했다.비록 무승부이긴 했지만,사타케는 3라운드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짧지 않은 격투기 인생 중에서 처음으로 다운을 빼앗기는 수치를 맛보며 시종 열세를 띤 경기를 펼쳐야만 했다.
제 2회 대회는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에서 개최하는 ‘극진 세계대회’ 준우승자였던 ‘앤디 훅(아래 사진)’이 정도회관 도복으로 갈아입고 첫 출장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대회이기도 하다.

앤디훅
가라테 룰이 적용된 이 시합에서 야나기사와 선수와 맞선 앤디는 평소 자신의 주특기로 알려져 있던 ‘내려찍기’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상단 회축(상단 뒤돌려 차기:일명 ‘훅 토네이도’라고도 불리운다)’을 차례대로 선보이며 상대를 몰아 부치는 바람에 야나기사와 선수는 물론 보는 이들 조차 간담이 서늘함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앤디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은 야나기사와는 경기 내내 출혈을 보이며, 공격다운 공격도 시도하지 못한 채 계속 밀리는 양상을 보였고, 어떻게 해서든 판정으로 밀고 가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좌)김태영 (우)만손 깁슨
한편, 이 대회에서 김태영(재일교포, 효고현 출신)이 일본 정도회관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 킥복서 출신 만손 깁슨(킥복싱 세계 미들급 챔피언)에게 다운을 빼앗고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10월에 열렸던「가라테 월드컵 ’92」는 나중에 생각해보면 참으로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토너먼트 결승에서는 앤디 훅이 김태영을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침내 영광의 우승을 차지한다. 극진에 몸담고 있을 때는 그토록 염원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전세계 대회’의 우승의 영광을 도복을 갈아입고 난 이후에 이룩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 해 10월 4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격투기 올림픽Ⅲ~가라테 월드컵’92」개최되었고, 이 대회에서 사타케 선수가 피터 아츠 선수와 격돌하여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앤디 훅이었고, 준우승은 재일교포 출신 정도회관 선수 김태영이 차지했다.
또, 이 대회의 개회식 때 정도회관 대표 ‘이시이 카즈요시’는 다음해(1993년) 5월 3일(나중에 4월 30일로 변경됨)1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세계최강결정 토너먼트’(훗날, ‘K-1 GRAND PRIX’93’으로 명명됨)를 개최할 것을 발표했다.
이시이의 그 말은 곧 이듬해인 1993년에 마침내 ‘K-1’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나 다름 없었다.
1992년을 되돌아보며
◆1992년
△1월 12일, 동경 무도관에서 열린 ‘제 1회 토와배 쟁탈 가라테 저팬 오픈’ 대회에서 사타케가 우승
△1월 25일, RINGS 동경베이イNK홀 대회「回天(카이텐)」에서 카쿠다vs로브 가먼(카쿠다 레프리 스톱 패), 사타케vs제랄드 골드(사타케 반칙승)
△3월, 동경 신주쿠에 정도회관 동경본부도장 설립
△3월 5일, RINGS 오자키대회「息吹(이부키)」에서 아담 워트가 RINGS 무대에 데뷔(데뷔전 무승부 기록),카쿠다vs이올드(카쿠다 레프리 스톱 승), 사타케vs브레드 오스트롱(사타케 KO 승)
△3월 26일, 동경 체육관에서「격투기 올림픽Ⅰ」개최. 메인 시합에서 모리스 스미스 선수와 사타케 선수가 대전을 벌여 무승부를 기록
△4월 3일, RINGS히로시마 대회「雷(카미나리)」 대회에서 사타케vs헬만 렌팅(사타케 KO승)
△4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피터 아츠가 모리스 스미스를 판정으로 눌러 이기면서 모리스의 8년간에 걸친 무패 신화에 종지부를 찍음
△5월 14일, RINGS가 자랑하는 대회「光臨」에서 피터 아츠가 처음으로 도일하여 일본내 데뷔 전을 치룸. 스페셜 킥복싱 룰도 진행된 이 시합에서 피터 아츠가 2 라운드 KO 승을 거둠. 그 대회에서 사타케와 콥스 주니어 선수가 붙어 사타케 선수가 KO 승을 거둔다
△6월 25일, RINGS 미야지로 대회「獅子吼」에서 카쿠다vs나가이(카쿠다 판정패), 사타케vs윌리 피터스(무승부)
△7월 16일, RINGS 오사카 대회「颯」에서 카쿠다vs武南幸宏(카쿠다KO승), 사타케vs피터 우라(글러브 경기: 사타케 KO승)
△7월 30일, 요요기 제 2 체육관에서「격투기 올림픽Ⅱ」개최. 앤디 훅이 정도회관 선수로 첫 출장하여 야나기사와 선수와 경기를 가짐(앤디 훅 판정승). 메인 시합에서는 사타케 선수가 모하메드 선수와 경기를 가져 1라운드에서 KO승을 거둔다.
△8월 21일, RINGS 요코하마 마리나 대회「礎(초)」에서, 사타케 선수와 로브 카먼 선수가 격돌(글러브 경기, 무승부)
△10월 4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격투기 올림픽Ⅲ~가라테 월드컵’92」개최.앤디 훅이 우승(준우승, 김태영金泰泳).이 대회에서 사타케 선수가 피터 아츠 선수와 격돌, 무승부를 기록. 이 대회의 개회식 때1993년 5월 3일(나중에 4월 30일로 변경됨)에 1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세계최강결정 토너먼트’(훗날, ‘K-1 GRAND PRIX’93’으로 명명됨)를 개최할 것을 발표.
△10월 29일, RINGS 나고야대회「메가 배틀 토너먼’92(1회전)」에서 카쿠다vs딕프라이(카쿠다 KO패), 사타케vs나가이(사타케KO승), 하지만 사타케는 오른쪽 가슴뼈를 다쳐 2회전 이후 시합에 결장한다. 이 시합이 RINGS 무대에서 사타케의 마지막 시합이되었다.
△11월 13일, RINGS 오사카 대회「메가 배틀 토너먼트’92(2회전)」 원매치에서 카쿠다vs
헬만 렌팅(카쿠다 시합포기)
△11월, 미국에서 아네스트 호스트는 릭 루퍼스와 경기에서 루퍼스에게 판정패
△12월 11일, 동경 무도 체육관에서 열린「격투기 심포지움~종합격투기 개최 전야제 PART1」에서 아담 워트와 로브 카먼이 대결. 카먼이 2라운드 KO승
△12월 19일, RINGS의「메가 배틀 토너먼트’92(준결승」 원매치에서 카쿠다vs야마모토
(카쿠다 TKO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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