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2편> 프로무대를 향한 여정!

<제2편> 프로무대를 향한 여정!


사타케 마사아키

1986년부터 시작된 정도회관의 타 유파에 대한 도전은 점점 더 본격화 되었는데, 백련(白連), 사도관(士道館), 사토주쿠(佐藤塾) 등의 가라테 유파에서 개최한 시합을 차례대로 제패해 나갔다. 이렇듯 ‘정도회관’의 명성은 점차로 타 유파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마침내 <상승군단>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는 데, 그 계기가 된 시합은 1988년 4월에 개최되었던 <가라테 리얼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였다.

풀컨택트를 지향하는 여섯 유파로부터 16명의 선수들을 모아 진행했던 이 토너먼트의 결승에 진출한 사람은 사타케 마사아키(佐竹雅昭)와 야나기사와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정도회관 출신으로 당시 정도회관의 넘버 1, 넘버 2에 랭크 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유한 선수들이었다.

사타케와 야나기사와의 대결. 시합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사타케의 승리를 장담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타케는 재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후배 야나기사와의 무릎차기로 포인트를 빼앗겨 아쉽게도 판정으로 무릎을 꿇고 만다.

그리고, 사타케를 위해 준비해 뒀던 마에다(前田日明)에 대한 도전장은 결국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야나기사와가 대신해서 읽어야 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까지 발생했다. 그 패배 이후 사타케는 이미 내정되어 있던 취직까지 포기한 채, 오직 가라테 수련에만 매달렸고 5개월 후에 열린 <정도회관 전일본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야나기사와를 물리치며 보기 좋게 설욕을 한다.

타 유파가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던 정도회관 측은 점점 더 자신감을 얻었고, 마침내 1990년 극진회관에서 개최한 ‘웨이트제 경기(체급별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어 중량급에서카쿠다 노부아키(角田信朗)가 ‘베스트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92년까지 계속되었던 정도회관의 도전 행진은 ‘카쿠다 노부아키’가 체급별 경기에서 거둔 ‘베스트 4위’가 최고의 성적이었지만, 신생 유파로써 ‘정도회관’의 이름을 대내외에 떨치기에는 충분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극진회관은 정도회관에 <절연>을 선언함으로써, 정도회관 선수들이 극진회관에서 개최하는 시합에 참가하지 못했다가 그로부터 약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극진회관은 다시 타 유파 선수들에게 대회의 문호를 개방했다.

한편, 정도회관은 자신들이 주최가 되어 개최하는 시합에서는 1988년 이후부터 사각의 링 위에서 싸우도록 했으며, 재연장전의 경우 글러브를 착용하도록 했다.

이후 정도회관에서 개최하는 시합에 당시, 슈토복싱 선수였던 타이라 나오유키(平直行)와 카먼, 챔브아(ChangpuekKiatsongrit)를 KO로 눌러 이긴 적이 있던 전 극진 킥복서 였던 ‘피터 스미트’, 싸움꾼 ‘제럴드 골드’ 등등 타 유파 소속 선수들의 참전도 줄을 이었다.

정도회관에서는 아토가와(後川聰之), 킨(金), 다우에(田上), 워트 등등, 나중에 K-1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한편, 1991년 6월에는 가라테계 최초의 시험 무대이기도 했던 유파간 대항전 시합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곰을 죽였다는 전설 속의 사내 윌리 윌리암스가 참전, 메인 무대에서 사타케(佐竹雅昭) 선수와 대결을 벌였다.이 시합에서 사타케는 윌리를 다운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영광의 승리를 손에 넣는다. 동경 요요기 제 2체육관에서 벌어진 이 5대 5 매치는 훗날 ‘k-1’과 ‘k-1 저팬’의 모델이 되었다.

정도회관에서는 유파에 대항 풀컨택트 가라테 경기 참가와 더불어,90년대부터는 ‘프로’ 무대로의 진출 러시도 점점 활기를 띄고 있었다.

1990년 6월 30일, 전일본 킥복싱 연맹에서 개최하는 시합에서 사타케는 ‘돈 나카야 닐센(Don Nakaya Nilelsen)’과 대결을 펼쳤다. 이 시합은 정도회관은 물론, 사타케 개인으로서도 프로의 링에서 갖는 최초의 시합으로 기록되었다.


후배였던 야나기사와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모두들 사타케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마치 ‘박치기’ 공격을 연상케 하는 ‘버팅’까지 사용하는 사타케의 놀라운 투혼에 힘입은 때문일까,결국 승리의 여신은 그에게 ‘1라운드 케이오 승’이라는 믿기 어려운 선물을 안겨주었다.이로써 사타케는 일약 프로 격투기 무대로의 본격적인 진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타케의 격투기 무대 진출은 곧 그 동안 타격계 가라테 대회 안에 머물게 했던 정도회관의 향후의 발걸음을 <종합 격투기>의 무대로 옮겨놓았고, 마침내 1991년에는 마에다(前田日明)씨가 이끌고 있던 ‘링스(RINGS)’와 제휴, 같은 해 12월에는 사타케와 카쿠다 두 사람은 링스의 유명 대회에서 데뷔전을 갖는다. 이 시합에서 두 사람은 승부를 가리지는 못했지만, ‘정도회관’의 이름 만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충분하게 각인 시켜 주었다.


1988년~1991년까지의 기록들


●1988년

어니스트 후스트

△4월 2일, 료오고쿠 국기관에서 개최된 <’88가라테 리얼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서 야나기사와가 우승을 차지하고, 사타케(佐竹雅昭) 선수가 준우승을 차지.
△9월 16일, <제 7회 녹다운 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 개최. 사타케 2연패 달성. 이 대회부터 사각의 링 위에서 싸우게 했고, 재연장 때는 글로브를 낀 채 안면 공격도 허용하는 룰을 채택 한다.
△10월 29일, 사도관(士道館)이 주최한 <제 8회 스트롱 오픈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 중량급 시합에서 사타케(佐竹雅昭)가 우승을 차지.
△11월 20일, 네덜란드에서 ‘어니스트 후스트’, ‘피터 아츠’가 대결을 벌였고, 이 시합에서 후스트가 승리한다

●1989년
△4월 22일, 사토주쿠(佐藤塾) 주최 <제 4회 POINT&KO 전일본 공수도선수권대회>에서 야나기사와가 우승.
△7월 2일, 고라쿠엔 홀에서 개최된 <’89 격투기 제전> 프로그램 안에 포함된 ‘가라테 리얼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서 사타케 선수가 우승.
△10월 1일, <제 8회 녹다운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 공수도 선수권 대회>개최. 사타케 선수가 3연패의 위업을 달성.
△10월 29일, 사도관(士道館)에서 주최한 <제 9회 스트롱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 공수도 선수권 대회> 중량급에서 다마시로(玉城厚志)가 우승을 차지.
△10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어니스트 후스트와 브랑코 시카틱선수가 대전을 펼쳐 후스트가 4라운드 판정승으로 승리.

●1990년
△4월 22일, 사토주쿠(佐藤塾)에서 주최한 <제 5회POINT&KO 전일본 공수도 선수권 대회>에서 다마지로(玉城厚志) 선수가 우승
△6월 2일~3일,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에서 주최한 <제 7회 전일본 웨이트제 대회> 중량급에서 카쿠다 노부아키(角田信朗) 선수가 베스트 4위에 진출.
△6월 30일,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된 전일본 킥 연맹 주최 에서 사타케 선수가 ‘돈 나카야 닐센>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1라운드에서 KO로 승리.
△9월 30일, <제 9회 녹다운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 공수도 선수권대회>개최. 아토가와선수가 첫 우승을 거머쥠.

●1991년
△6월 4일, 요요기 제 2 체육관에서 벌어진 <USA오야마 가라테vs정도 가라테, 5대 5매치~LAST CHANCE> 개최. 메인 무대에서 사타케 선수가 윌리 윌리암스를 판정으로 제압하고 승리를 거머쥔다.
△6월 22일~23일,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에서 주최하는 <제 8회 전일본 웨이트제 대회> 경량급에서 田前純三 선수가 ‘베스트 8’에 진출
△9월 14일, RINGS 삿포로 대회 <신위(神威)>에 이시이 카즈요시 정도회관 관장과 사타케 마사아키가 인사차 참관. 이때부터 RINGS 와 업무제휴가 시작됨.
△10월 10일, 전일본 대회 제 10회 째를 기념하여, 대회 명칭을 <가라테 월드컵 ’91>로 명명함. 아토가와 선수가 90년에 이어 91년에도 우승함으로써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함
△11월 2일~4일,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에서 주최한 <제 5회 오픈 토너먼트 전세계 공수도 선수권 대회>에서, 정도회관 소속 선수인 쟝 리비엘(Jean Riviere)이 4위에 입상.
△12월 7일, RINGS의 소문난 대회 중 하나인 <염상(炎上)>에서 사타케 선수와 카쿠다선수가 데뷔전을 치룸. 사타케는 한스 나이먼 선수와 카쿠다는 헬만 렌팅 선수와 각각 데뷔전을 벌였지만, 두 사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댓글 4

로이 2003.02.22
일반인은 알기 힘든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토의 기사는 그 수준이 너무 들쭉날쭉한데 조영주 기자님의 글들은 모두 양질의 좋은 기사가 계속 나오는것 같습니다. 근데 보다보니 궁금한점이요. 극진회관이 정도회관과 절연을 선언했었다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뭐 저랑 상관은 없지만...^^) 또 지금 개방이 되었다는데...극진회관 시합에...타 유파 가라데뿐만 아니라 다른 무술도 참가할수 있나요?(극진시합룰만 지키면?) 또 하나 호기심인데요..극진세계대회는 우승상금이 얼마나 되나요?^^
das 2003.02.22
저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극진대회는 여러가지종류가있습니다. 웨이트제의 경우 체급을 세개로 나누어서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냥 무체급으로 하는대회가있습니다. 보통무체급대회에서 우승해야 진정한 챔피언으로 취급하는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픈이라고 대회제목앞머리에 붙는 대회를 따로합니다. 물론 여기도 극진의 중요선수가 다 참가합니다. 극진의룰을따른다면 어떤 유파도 구분은 않는걸로압니다. 과거 오픈토너먼트전에 전통공수도계열유파들 심지어는 무에타이나 영춘권 심지어는 ITF계열태권도나 WTF계열 태권도 선수들까지 참가한적이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생소한 룰에 갑자기적응한 다는것은 정말힘든일인지 차라리 비슷한 원심회나 정도회등의 풀컨택트계열가라데 선수가 어느정도의 좋은 성적을 낸적은있어도 이런 이런선수들은 대부분 예션 탈락이었죠 그리고 극진은 지금운영이야 어찌되고있든지간에 기본은 아마츄어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대회에서 우승해도 상금은 전혀없습니다. 선수들도 일부 유명선수를 제외하곤 모두 힘들게 사회생활하며 돈벌고 남는시간쪼개어 운동하고 그런선수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극진만큼 일반수련생도 대회출전기회를 잡기쉬운 단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지역대회는 무수히 많으며 도장간 교류시합도 거의 다달이 있으니까요 그만큼 회원국도 많고 회원도 많기에 가능하겠죠...앤디훅(스위스)선수도 원래극진회 소속이었으나 극진은 그당시 프로참전을금하고있었기에 어쩔수없이 이시이관장의 권유도 있고해서 정도로 옮긴거죠
극진맨 2003.02.22
맨날 테레비에서 k1이라고 하던데.. 사실 뭔지 잘 몰랐는데 이 기사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섹스킹 2023.06.30
우지안 ㅅㅂ년 개따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