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do
최신뉴스

... 2. 내게는 태권도 그리고 꿈이 있다


1992년 11월 미국 알칸소주 리틀락시는 알칸소주의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이 미국의 제 42대 대통령으로 당선, 축제의 분위기였다.

클린턴은 주청사 앞에서 열린 축하 잔치에 참가한 후 밤늦게 리틀락시 도심에 있는
엑소시어 호텔 VIP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클린턴의 중요한 후원자들이자 지지자들이었다.
클린턴은 만찬장에 들어서자마자 키 큰 백인들 사이에 끼여 서 있는 한 동양인을 발견하고는 얼른 달려가 동양식으로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이내 미국식으로 그를 와락 껴안았다. 키 160cm가 될까 말까 한 이 작은 체구의 동양인에게. 좌중의 시선이 모아지고 모두들 그를 알아보았다.

"오, 그랜드 마스터 리"
리틀락 사람들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타지 사람들이나 그 광경을 시청하고 있는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은 크게 의아스러웠다.

미국의 대통령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사람..
이행웅..
20년전 미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태권도 하나만은 최고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던 사람.
태권도가 프랜차이즈 경영이라는 기업화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인물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하는 태권도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수련을 하고 있는 사범
그가 바로 그랜드 마스터 이행웅이다.

그가 찾아낸 행복 하나


또 싸움질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
이행웅 자신도 피할 수 없는 가난 그리고 여의도 빈민촌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가족들. 그 모든 것을 여의도 촌놈이라며 시비를 걸어온 애들과의 싸움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오늘 네 형이 죽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이제는 네가 장남이야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중국 봉천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던 이행웅은 한국전쟁으로 큰형을 잃으면서 졸지에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 되어야 했다. 본국이라고 돌아온 한국은 세계2차대전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져 있었고, 이행웅의 가족은 나라에서 지어준 전쟁민주택 한 자락에서 생존과 싸워야 했다. 이행웅은 꿈을 꾸기보다는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했다.

이행웅은 공부에 흥미가 없는 소년이었다 그저 달리기와 축구등 운동 외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 싸움질을 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당수도라는 무술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더 잘 싸워서 스스로 몸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당수도라는 무술은 그로 하여금 운동 시간을 기다리게 할 정도로 유일하게 이행웅 자신을 몰두하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 당수도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간 동네 선배는 학생의 신분으로 구입하기에는 비싼 담배 한 개비를 수업료로 제시했다. 그 담배 한 개비를 구하려면 이행웅은 점심 한끼를 굶어야 하는 비용이었다. 그러나 그는 밤마다 몰래 담배 한 개비의 비싼 수업료를 내고 당수도의 기본을 익혔다. 성장기의 그에게는 당수도가 간절히 원하는 공부였던 것이다.

자신이 찾아서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신이 나는 일 그게 그 힘든 시기에 이행웅 자신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었다. 그게 바로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을 그때는 잘 알 수 없었다. 점점 이행웅은 당수도라는 무술에 빠져 들고 열심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17살 때였다.

다시 태권도로


우연히 알게 된 태권도의 기본인 당수도의 매력은 이행웅 자신을 부채질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당수도 도장이었던 청도관을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현재 국기원의 부원장인 엄운규를 비롯하여 여러 스승들에게 당수도를 전수 받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태권도.. 열심히 연마한 태권도가 고교 졸업당시 3단, 곧이어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그곳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군을 마쳤다. 하지만 사회에 돌아왔을 때 그는 가난한 나라에 할 일 없는 젊은일 뿐이었다.


이행웅은 태권도를 잊고 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면서 방탕한 생활만을 하는 건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태권도 사범으로 있던 군대시절의 상사였다. 이행웅에게 미군부대 근처에 태권도 도장을 내고 태권도 사범의 일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해준 사람이었다. 이행웅은 그때 잊고 있었던 태권도를 깨달았다. 얼마나 태권도를 좋아 했는가도 기억해 냈다. 자신이 어떻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기억해 냈다.

이행웅이 태권도를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이 순간이었다.그리고 이행웅은 도장을 열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행웅은 빈손이었다. 경기도 오산 근처에 판자집을 지어 도장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여동생의 약혼 반지마저 팔아야 했다 돈 만원을 구하려고 자신의 여동생 손에서 반지를 빼어 들고는 이행웅은 다짐할 수 밖에 없었다.

내게는 보다 나은 미래뿐이다.
그게 이행웅 자신의 운명의 전기였다. 이제 이행웅은 태권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저 전진뿐이었다.

내게는 태권도 그리고 꿈이 있다


경기도 오산의 판자집 도장이 한창 자리를 잡아갈 때쯤 태권도 수련에 열심이었던 미국인 딕 리드와의 만남은 이행웅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보험 세일즈맨 출신이었던 딕 리드가 제안한 것은 자신과 함께 미국에서 도장을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딕 리드는 원래 미국 중서부 가라데 연맹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행웅은 흔쾌히 승낙하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회가 있는 나라에서 자신의 태권도를 선보이겠다는 도전은 강인했다. 그것이 한국 태권도 사범으로써는 최초의 미국 진출이었다.

이행웅은 딕 리드의 초청으로 오마하로 가는 길에 잠시 시애틀의 차이나타운을 가게 되었다. 그곳의 중국 쿵푸 도장에서 중국인 도장 주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행웅은 태권도로 무엇을 하겠느냐는 그 사람의 질문에 미국 전체에 내 도장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때 그 도장 주인은 한국 촌놈이 미국을 몰라서 철없는 말을 한다는 듯 한심한 눈빛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무명시절의 이소룡이었다. 이행웅은 힘겨운 순간마다 그 한심한 눈빛을 기억해 냈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의 모습을 이소룡이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행웅이 말한 것을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후로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정착해 이행웅은 당시 태권도의 불모지에 한국문화와 한국무술 태권도를 전파하게 되었다.그가 태권도라는 꿈을 안고 미국에서 내딛은 첫 발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로 안다



1960년대 초, 이행웅이 도미했을 때 미국의 도장은 가라데 일색이었다. 이미 이소룡이나 이준구 등 쟁쟁한 인물들이 도장을 점령한 상태였고, 가라데 전성시대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고 미국식 계약 시스템을 알려 주던 동업자 딕 리드가 있었지만 처음 회원 11명에 1주일에 1달러 하는 싸구려 아파트에서 10센트 짜리 햄버거 2개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이행웅을 힘들게 한 것은 바로 텃새였다.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여러 가지 싸움이 그에게는 커다란 어려움이었다.

어느 날, 네브래스카주 권투 챔피언이 그를 찾아왔다. 체격이 좋고 운동으로 단련된 몸을 가진 그는 집요하게 이행웅에게 시비를 걸어왔고 도전에 응하기를 바랬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이행웅에게는 태권도를 배우는 제자들 앞에서의 싸움이었고, 태권도와 그 자신 그리고 한국 무술의 명예까지 달린 문제였다.

그 권투 챔피언은 태권도가 발차기가 발달된 무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어서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이행웅도 좀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회원들이 모두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5분간의 신경전을 치러야 했다. 이행웅은 물러날 수 없었다. 한 발자국 챔피언에게 이행웅은 다가갔다. 챔피언은 사정 거리 안에 이행웅이 들어서자 주먹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주먹이 날아오기 전, 옆차기 일격을 가했다 옆차기는 정통으로 맞아 들어갔고 챔피언은 그대로쓰러졌다. 이행웅의 깨끗한 승리였다.

이 사건은 그가 겪은 가장 큰 위기였지만 가장 큰 행운이기도 했다. 패배를 인정한 그 챔피언은 많은 학생들을 소개해 주었고 그 소문은 널리 퍼져 나갔다. 그만큼 회원들의 태권도에 대한 믿음은 커져 갔고 그는 자신의 터를 스스로 다져 가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