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1편>'K-1’, 알고 보면 100배 재미있다!


한국에서도 k-1의 열풍이 몰아칠 것인가?


K-1은, ‘가라데, 킥복싱, 쿵푸 등 입식 타격계 격투기 선수 중 전세계 최강을 가린다’는 취지로 정도회관의 ‘이시이 가즈요시’ 관장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적인 규모의 입식 타격기 대회이다.

1980년, 국제 공수도연맹 극진회관에서 탈퇴한 ‘이시이 가즈요시(石井和義)’는 그 해 6월 <신일본공수도연맹 정도관>을 설립하고 완전하게 독립선언을 한 이후, <서일본 학생 공수도선수권대회 개최>, <녹다운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 등, 각종 공수도 대회를 개최하면서 격투기 대회와 관련된 노하우를 축적, 마침내1993년 4월, K-1 대회를 개최한다.

1993년, 제 1회 대회 이후 성장을 거듭해 온 K-1대회는 현재 일본 뿐만 아니라, 프로격투기로써 전세계적으로 복싱 다음가는 흥행성과 시장을 갖추고 있다.

K-1은 기본적으로 무제한급 대회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가끔 K-2나 K-3등 경량급 시합이 열리기도 한다. 룰은 글러브를 끼고 주먹과 발, 무릎으로 가격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팔꿈치로 치는 것은 금지하고 있으며, 3분 3라운드 혹은 3분 5라운드로 경기가 진행된다.

또, K-1은 전세계에서 예선전이 진행되고, 세계예선과 본선을 거쳐 대회 마지막 여정으로 일본에서 K-1 그랑프리 대회를 개최, 하일라이트를 장식한다.

자, 그럼 지금부터 K-1이 개최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도회관의 역사와 함께 그 궤적을 추적해보기로 하자. K-1, 알고 보면 백배나 더 재미있다!!!

정도회관 발족


이시이 카즈요시

1980년 6월, ‘이시이 카즈요시’는 소속 도장이었던 국제공수도 연맹 극진회관 소속 아시하라 도장을 떠나, 스스로의 유파인 <신일본공수도연맹 정도관>을 만들고 독립한다.

그리고, 같은 해 <서일본 학생 선수권대회 개최>, 1982년에는 <제 1회 녹다운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만화와 TV를 활용하여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하는 등 당시로서는 과히 획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전 수단을 사용하여 공수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는 경기장 내부를 초만원 사태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격투기 프로듀서로서의 이시이 카즈요시의 탁월한 기획·홍보 능력은 훗날 그가 만든 세계적인 격투기 대회 에서 크게 그 빛을 발휘하기에 이른다.

<제 1회 녹다운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 개최 초기에는 극진회관 전일본선수권대회 준우승자였던 ‘나카무라 다케오(中村猛夫)’가 압도적인 파워를 내세워 연거푸 우승을 차지하며 2연패의 위업을 과시해 보였지만, 제 3회 대회에 이르러서는 혜성처럼 등장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가와즈치(川地雅樹)’ 선수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다.

가와즈치 선수는 제 3회 대회의 우승을 시작으로 제4회 대회와 제 5회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하면서 대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다.


한편, 가와즈치(川地)가 우승했던 제 3회 대회에는 ‘사타케 마사아키(佐竹雅昭;오른쪽 사진)’라는 제법 걸쭉(?)한 신인 선수가 처음으로 등장, 4위에 입상한다.

사타케 마사아키

제 4회 대회와 제 5회 대회까지는 사타케에게 있어서 마치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는 벽’과도 같았던 존재, 가와즈치.매번 우승의 문턱에서 가와즈치에 의해 좌절되었던 사타케의 꿈도 제 6회 대회에서 두텁디 두터운 ‘철벽-가와즈치’를 허물면서, 그토록 염원이었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었다.

마침내 사타케의 ‘꿈★은 이뤄졌던’ 것이다

제 6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당당하게 정도회관의 에이스가 된 사타케 마사아키는 그 이후 제 7회, 제 8회 대회를 연속 석권, 가와즈치와 마찬가지로 대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자신의 유파가 마련한 각종 대회에서 그 힘을 축적해 나가던 정도회관 소속 선수들은 마침내 1986년에 이르러 타 유파인 백련회관에서 개최하는 대회에도 참가하여, 마츠모토 에이지가 우승을 거머쥔다.

또 그 이듬해인 1987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야나기사와가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하면서 정도회관이 상승군단(항상 승리하는 집단이라는 의미)이라 불리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여기서 잠깐, 정도회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


◆1969년
1월, 이시이카즈요시, 극진회관 시코쿠 지부 아시하라 도장 입문

◆1975년
6월, 이시이 카즈요시, 극진회관 아시하라도장 오오하라 지부 설립, 관서지방 총책임자로 임명됨

◆1980년
△6월, 이시이 카즈요시, 극진회관 아시하라 지부 도장 퇴관,「신일본공수도연맹 정도관」설립
△8월, 서일본 학생 선수권대회 개최
△12월, 정도관 서일본 선수권 대회 개최, 우승자는 나카무라 이사오

◆1981년
11월, 오사카 시 북구에 정도회관 총본부 설립(아마, 이 무렵쯤 ‘정도관’을 ‘정도회관’으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10월 10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제 1회 녹다운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개최. 나카무사 이사오’가 제 1회 대회 우승자가 됨

◆1983년
8월 4일,「제 2회 녹다운 오픈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개최. 이 대회에서는 ‘나카무라 이사오’ 선수가 우승을 함으로써 대회 2연패를 달성한다.

◆1984년
10월 14일, <제 3회 녹다운 오픈토너먼트 전일본 공수도선수권대회> 개최. 가와즈치(川地雅樹)우승, 당시, 사타케 마사아키(佐竹雅昭)는 4위에 입상했다.

◆1985년
△4월, 미국 아이오와 주에 USA지부 설립
△9월, 삿포로 나카지마 체육센타에서 <제 1회 오픈토너먼트 홋카이도공수도선수권대회> 개최
△12월 8일, <제 4회 녹다운 오픈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선수권대회>를 개최. 가와즈치(川地雅樹가 2년 연속해서 우승을 차지함. 사타케 선수는 준우승에 그침.

◆1986년
△8월, 사가 시민체육관에서 <제 1회 전 오픈토너먼트 규우슈우 공수도선수권대회> 개최.
△11월,백련회관 주최<제 2회 백련회관 전일본공수권법 선수권대회> 중량급에서 마츠모토 에이지가 우승을 차지함.
△12월 14일, <제 5회 녹다운 오픈토너먼트 전일본 공수도선수권대회> 개최. 가와즈치(川地雅樹) 선수가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함. 사타케는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무름.

마쓰이 쇼케이

◆1987년
△9월 6일, <제6회 녹다운 오픈토너먼트 전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 개최. 사타케 마사아키 선수 마침내 첫 우승을 거머쥠.
△11월, <제 3회 백련회관 전일본 공수권법 선수권 대회> 중량급에서 야나기사와선수가 우승을 차지함.
△11월 6일~8일,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 주최 <제 4회 오픈토너먼트 전세계공수도 선수권대회>에서 ‘앤디·훅’이 준우승을 차지. 이때 우승자는 현 극진회관 2대 총재인 마쓰이 쇼케이(한국명, 문장규). 마이클 톰슨은 4위에 입상.


댓글 6

협객 2003.02.17
좋은 기사 더 많이 올려주세요
강병수 2003.06.01
어제 경기가 베르나르도vs반너였어요 베르나르도의 어퍼컷!!! 엉청나더군요 비록 노게임이 되었지만 멋있는 경기였어요 크로캅도 좋아 합니다 계속 재미있고 멋진 경기 부탁 드립니다
K-1 초보 2003.07.01
정도회관도 극진가라데인가요?
조영주 2003.08.18
.
낙무아이 2005.10.26
극진가라데에서 갈라져 나왔을 뿐.. 정도가라데라고 해야겠죠.
정도회관 2006.02.11
맞습니다. 극진 공수도가 아니라 정도 공수도(세이도 가라데)가 공식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