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미야모토무사시(宮本武藏)의 인물적 특성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출생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분명하지는 않다. 무사시가 친교가 있었던 태승사(泰勝寺) 2세 하루야마(春山) 화상이 쓴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반슈(지금의 효고깽)의 영웅, 아까마쓰의 말엽, 신멘의 후예, 무사시겐신, 호 이천(二天). 천성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도병법의 원조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신멘무니로 짓테(十手; 에도시대 포졸이 사용한 무기, 50cm 정도의 철봉인데 손잡이 부분에 갈고랑이가 있다)의 달인이었다.

무사시는 이 가업을 이어받고 아침저녁으로 연찬하고, 공부 창안하여 짓데의 이치가 칼보다 나음을 알았으니 대단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짓데는 상용의 무기가 아니고, 이도는 항상 허리에 차는 병기이다. 드디어 이 이도에 짓데의 이치를 응용하면 그 이득에 차이가 없음을 알아 이도를 창조하니 참으로 무검(舞劍)의 정선(精選)이라 하겠다(이진수, 1999).

한편, 오까마현에 소재한 청년기의 무사시 상(像)에는 그의 출생지라는 점을 알리고, 그의 부모도 소개되었다. 이것은 무사시를 실존인물로 인정한 이 지역사람들이 기념동상과 더불어 각종 박물관 및 도장(道場)시설도 갖추고 관광사업까지 하고 있다.

청년기 무사시의 동상 비문에 나타난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劍聖, 宮本武藏は 天正十二年三月(一五八四年)この 地岡山縣 英田郡大原町宮本において 父·無二齋, 母·お政の次男として 生まれた. 武藏は 十三才の 時, 播州平福で 新當流有馬喜兵衛と 戰い 打ち 勝って 以後, 諸國を 巡って 劍の 道一筋に 練磨し, 二十九才で 九州舟島において 佐ː 木小次郎と 決鬪する 間, 六十餘度の 勝負も 負けたことがなかった.      
それ 以後は 天下を 周遊して, 五十才にして 兵法を 究め, 五輪書, 獨行書などを 書き 上げ, また 書· 繪· 彫刻· 工藝等にも 「ニ天」 と 稱し, 優れた 作品を 數多く 遺して 正保二年五月(一六四五年)熊本の 千葉城で 六十二才の 生涯に 幕を 閉じ 弓削の 里に 葬られた. 「武藏」 · 「ニ 天」 , この 劍聖と 藝術家はまぎれもない 同一人物であり, まさに 天才的資質に 惠まれた 万能の 人で 現代人が 武藏に 學ぶところは 多い.              
  こうした 史實を 通じて, 町民の 鄕土史への 理解を 深め, 武藏の 遺德を 後世に 傳えるとと もに, 大原町合倂四十周年を 記念してこの 「靑年期宮本武藏像」 を 制作しこの 地に 建立するものである.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는 덴쇼(연호) 12년 3월(일오84년) 땅오카야마현 아이다군 오하라초 미야모토에 두어 아버지·무이금기, 어머니·정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무사시는 13세때, 반슈 히라후쿠에서 신당류 아리마희무관과 싸워 이겨 이후, 제국을 둘러싸 검의 길 외곳에서 연마해, 29세로 큐슈배섬에 있어 사사키코지로와 결투하는 동안, 60여 승부에도 패한적이 없었다.
 그후는 천하를 돌아다녔으며, 오십세때 병법을 연구해 오륜서, 독행서 등을 쓰고, 또 서예, 회화, 조각, 공예 등에도「이천(二天」이라고 칭해, 뛰어난 작품을 수없이 많이 남겨 쇼호 2년 5월(1645년) 쿠마모토의 치바성에서 62세의 생애에 막을 닫고 유우게의 마을에 매장해졌다.

무사시와 이천은 검성과 예술가는 틀림없는 동일 인물이고, 확실히 천재적 자질을 타고난 만능의 사람으로 현대인이 무사시에게 배울 것이 많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읍민의 향토사의 이해가 깊어져 무사시의 유덕을 후세에게 전하하고자 오하라초 합병 40주년을 기념해 이 청년기 미야모토 무사시상을 제작해 이 땅에 건립한다

한편, 미야모토무사시가 쓴 《오륜서》에 무사시가 60세 때 쓴 것으로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 공(空)으로 크게 구분된 무사시의 병법(兵法)이며, 무사시가 니덴 이찌류(二天一流)라 이름한 뒤 수년에 걸쳐 단련하여 체득한 경험을 문자로 서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어로 출판된 오륜서 책 표지

《오륜서》의 서문에는 무사시의 생애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무사시는 어렸을 때부터 병법, 무예의 길에 전념하여 13세때 처음으로 결투했다고 한다. 그 상대인 신도류 아리마 기헤이라는 병법자를 이기고, 드디어 16세때 다지마국(효고현의 북부) 아귀야마라는 강력한 병법자와 대적하여 이겼으며, 21세때 교또에 상경하여 천하의 무예장들과 만나서 몇차례의 승부를 겨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13세에서 29세까지의 일을 서술하고 있다(宮本武藏, 1997).

그 뒤 30세를 넘어서 무사시 스스로가 걸어온 과거를 되새기며 무사시가 이제까지 이긴 것은 결코 병법을 깊이 연구해서가 아니며, 태어날 때부터 몸에 지닌 재능이 있어서 그것이 하늘의 이치(天理)에 합당했거나 아니면 상대의 병법이 불충분했음이 아닐까 라고 스스로 미숙한 점을 느끼게 되었고, 그 후에 더욱 깊은 도리를 터득하려고 조석으로 단련을 거듭한 결과, 스스로 병법의 진수를 터득한 것은 50세 무렵의 일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 후 그는 특별히 탐구할 길도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병법의 도리에 따라 모든 무예와 기능의 길로 임하고 있기 때문에 일체의 사물에 대해 스스로는 스승이 없었는데 이것은 모두 스스로 깨달아 얻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宮本武藏, 1997).
이 병법서가 5권으로 되어 있는 것은 무사시가 병법을 다섯가지 앎(地,水,火,風,空)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地의 卷〉에서는 밝히고 있는데, 먼저 땅의 권에서는 병법의 도의 개요를 무사시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풀이하고 있다.

검술만을 하고 있어서는 참다운 검의 도를 알 수 없다. 큰 곳에서부터 작은 곳을 알고, 얕은 곳에서 깊은 곳에 이른다(宮本武藏, 1997).

이것은 곧은 길의 지형을 굳혀 나간다는 뜻에서 최초의 1권을 땅(地)의 권으로 명명한 것이다.
제2의 물(水)의 권은 물을 본보기로 하여 마음을 물같이 하라는 것이다. 무사시의 표현에 의하면,

물은 고정되지않고, 사각의 그릇에도, 동그란 그릇에도, 그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한방울도 되고, 큰바다(大海)도 된다. 물에는 청록의 색깔이 있다.

라고 하여 물의 맑음을 빌려 무사시의 한 유파의 병법을 쓰려는 의도였다. 즉 검술의 도리를 몸으로 터득해서, "한 적(敵)을 이길 수 있게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이길수 있게 된다" 라는 것처럼 그의 경험철학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의 적(敵)에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길 수 있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 무사시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사시의 한 유파의 내용을 서술한 것이 물의 권이다.
제3의 불(火)의 권에서는 싸움이란 것을,

불은 크게도 작게도 될 수 있고, 변화가 심하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투에 관한 것을 서술한 것이다. 전투의 길은 한사람 대 한사람의 싸움도, 만명과 만명의 싸움도 같은 것으로 대국을 통찰하고 또한 세심히 잘 음미해봐야 한다

라고 불로 비유했다. 이것은 "큰 장소는 잘 보이기 쉽다. 작은 장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조그만한 일은 변화가 심하고, 일순간을 다투는 경우의 일이기 때문에, 평소 매일 잘 익혀서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싸우는 것이 병법의 급소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제4의 바람(風)의 권에서는 무사시의 한 유파의 병법이 아니라, 세상의 병법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바람(風)의 의미는 구풍(舊風)이라든지 신풍(新風)이라는 각각의 가풍 등에 쓰이는 양식같은 것으로, 세상의 병법에 관해 각 유파의 내용을 명확히 적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바람이다

라고 비유하고 있다. 또한 "남을 잘 모르면 자기를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은 그 인식이 부족하면 갖가지 일을 행하는데 외도(外道; 바르지 못한 마음)라는 정신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소에도 그 길에 전념해도 내용이 빗나갔다면 자신으로서는 바르다고 생각해도 객관적으로는 진실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진실의 도를 깨닫지 못하면 처음의 사소한 빗나감이 나중에 크게 빗나가게 된되고 이것은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다른 유파에서는 병법을 검술만의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이치에는 맞지만,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라는게 무사시의 입장이다. 그러나 무사시의 병법은 협의(狹義)의 병법(術)과 광의(廣義)의 병법(道)을 제시했다. 즉 세상의 숱한 병법을 알기 위해서, 바람(風)의 권에서는 다른 유파의 것을 서술하였다.
제5의 하늘(天)의 권은 "병법에는 깊은 뜻도 시작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도리를 터득해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고, 병법의 도에 자유자재로 스스로를 맡기고 새로운 역량을 얻을 수 있으며, 일에 임해서는 그 박자(리듬)를 알고 자연히 상대를 치며 자연스럽게 상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공(空)의 도이다. 이 자연과 진실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공의 권에 써 놓았다.


이상과 같이 《오륜서》를 5권으로 쓴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땅(地)의 장〉에서는 병법이란 무엇인가와 병법의 도, 그리고 오륜서가 5권으로 된 이유, 이천일류(二天一流)라 한 이유에 대해 설명되어져 있고,〈물(水)의 권(卷)〉에서는 사람을 자르기 위한 바른 태도근(太刀筋)을 익히기 위한 기술의 연습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무사시가 체험에서 얻은 여러방법, 즉 몸의 자세, 눈의 방법, 칼의 방법, 발을 사용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았으며,〈물(水)의 권〉이 자기자신의 입장을 서술한 것이라면 〈불(火)의 권(卷)〉에서는 상대와 대적할 때 승패의 원칙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또한 다른 유파의 논평에 대해서는〈바람(風)의 권(卷)〉에서 서술되었고,〈공(空)의 권(卷)〉에서는 이천일류의 도(道)를 공(空)으로 설명하고 있어 무사시는 공(空)을 사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즉 인간이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설명하여 이천일류를 수행하는 이법(理法)을 제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오륜서는 무사시가 이천일류를 칭하는 검술과 병법에 대해 해설한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승부를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전체 5권으로 구성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댓글 4

배가본드 2003.02.13
와우~ 배가본드에 나오는 무사시 정말 좋아하는데... 무사시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좀 뭐랄까...멋있네요. 일본인이라는 걸 떠나서.. 히히~
ㅋㅋ 2003.02.13
저게 무슨 영웅이냐? 살인마지 ㅡ 붕신들
야규세키슈사이 2003.09.07
정말 사나이중에 사나이다 그는 두려움을 몰랐고 산을 스승삼아 검술의 달인이 된사람이 다 나는 정말 무사시를 존경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번에 무사시에 대해 알고나서부터 검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들었다. 무사시 그는 진정한 사나이같다.........
db 2003.09.08
인물의 역활이나 중요도 강약도.. 그리고 배경도 조금씩 다르면 소설또한 실제의 무사시와 많이 다릅니다 만화보단 소설이 소설보단 실제의 이야기가 훨씬 마음에 와 닿고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