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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협객 백동수의 저자로부터 듣는 '협(俠)'


정조(조선22대 왕, 1776-1800)의 어명을 받들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저술한 18세기 조선의 협객 백동수(1743∼1816). 서얼, 무인 출신이었기에 이름 석자를 제외하고는 역사의 뒷편에 그 모습을 감추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그를 협(俠)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한 "조선의 협객 백동수"의 저자 김영호(24무예연구소장). 우연히 ‘한국의 전통무예’라는 책을 접한 후 직장을 그만두고 무술인이 됐다는 그를 만나 "협(俠)"의 진정한 의미를 들어보았다.

조선의 협객(俠客) 백동수의 저자 김영호 선생님의 협객 이야기

* 선생님께서 책을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
우리나라는 장군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 분들은 병법과 전략을 중시한 분들이지 몸을 움직인 무사, 즉 무예만을 한 사람이 아니지요. 저는 조선시대 무인, 무사 중에서 실질적인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해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백동수가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협의 정신과 선비정신을 구현했지요. 그리고 본국검을 어떻게 익혀 왔는가 등에 대한 이야기를 공식적인 문헌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협(俠)은 "무력을 기반으로 하는 의로운 행동"

* 협객(俠客) 즉 협(俠)이 무엇인지 선생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사마천의 협(俠)에 대한 규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협(俠)은 "무력을 기반으로 하는 의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협(俠)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협이 추구하는 것은 의(義)이며 협의 의는 공의(公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라는 것은 강자가 아닌 사회적인 약자에 대해 도움을 주는 인간으로써 해야 할 바를 하는 행동입니다. 일부 깡패들의 약자들에 대한 갈취를 주 수단으로 하면서 일부 약자들에 대한 연민은 위장된 모습입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의리도 바닥난 그들에겐 공의(公義)란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겐 협객이란 칭호는 사용할 수 없지요.

* 협(俠)이라는 것은 중국의 개념이 아닌가요 ?
동아시아에서는 협(俠)에 대한 개념을 포괄적으로 같이 사용했습니다. 백동수의 경우 옛 문헌에서는 기남자라고 했지요. 홍국영의 경우도 기남자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의 협(俠)에 대해 이야길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조선시대의 협(俠)은 17c후반 18,19c 초 중반까지 많이 등장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침체되었던 조선이 안정기에 들어와 상공업이 발달한 시기였고, 변화에 대한 열망도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권력자가 그 행동을 묵인해 주는 시기에 협(俠)이 활발히 활동합니다. 영조시대 대표적 깡패로 표철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폭력을 즐기고 폭력을 통해 이권을 취하는 그의 행동은 협(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문헌상에서 어느쪽이 협(俠)이라고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士)쪽에서 말했다면 사(士)에 가깝고 약자인 백성이 말했다면 협(俠)에 가깝습니다.


* 백동수는 어떤 협객(俠客)이었습니까 ?
백동수는 협객(俠客)보다 무인, 사(士)의 의미가 더 컸습니다. 20대 청년 백동수는 협(俠)이었으나 장년 백동수는 선비, 그리고 무인으로써의 의미가 컸습니다.

*현대에 필요로 하는 협(俠)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사회적 공의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는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유흥가를 축소한다거나 주택가에는 윤락가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범죄 발생을 예방하는 풍토를 조성해 가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을 협객(俠客)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제 자신을 협객(俠客)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본받을 만한 무인의 초상을 구하고 싶어 백동수 이야길 쓴 것입니다. 다만 힘든 삶 속에서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그의 정신과 기개를 본받고 싶었습니다. 또 협의 정신을 고취하는 것으로 단지 기술적인 면만 호기심을 갖는 청소년들에게 도덕적 무도관과 정신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김영호씨 약력>

한국의 전통무예란 책 한권에 자신의 삶의 진로를 바꾼 전통무예인(24반 무예)
1963년 경남 거창출생, 90년 여름 빗자루 도사로 알려진 임동규 선생 문하 광주에서 무예24반 수행 시작, 1991년 겨울 대구로 돌아와 주위 사람들에게 24반 무예를 알리기 시작.
1993년 무예도보통지 윤독회 시작, 민족무예라는 화보편찬.
1996년에서 2000년 거창과 고령에서 가야산 무예학교 운영.
현재 사단법인 24반 무예협회 대표


*조선의 협객(俠客) 조선의 기남자 백동수(1743 - 1816)

1743년 한성남부 명철방 청교동에서 수원백씨 사굉과 평산 신씨 사이에서 출생.
1759년 사도세자가 추진하고 임수웅이 책임편찬한 무예신보(武藝新譜)가 완성됨.
1770년 과거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은 사람 선달이 되다.
1772년 선전관에 추천됨.
1788년 장용영 초관(哨官)에 임명됨.
1790년 무예도보통지 완성편찬.
1791년 충청도 비인현감에 제수.
1794년 다시 장용영에서 근무.
1802년 박천군수에 임명.
1816년 10월3일 포천집에서 별세(향년7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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