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이상적인 대련 형태란(2)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1회 기사가 나간 이후 독자 여러분의 반응에서 아직도 대련 = 겨루기라는 개념으로 이 글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이 글에서 필요한 개념 정리를 하고 넘어가려 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대련(對練)은 상대를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기 또는 실전이 아니며, 글 뜻 그대로 상대와 마주 하는 연습이라는 개념으로 쓰고 있다.


기술 형태 숙달을 위한 대련


무술이 어떻게 싸움과 구별되는 무술다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을까? 그 수련체계나 전투 스타일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을 해왔건 간에 한 무술의 시초는 상대를 제압하고 살상하기 위한 것이므로 당연히 상대를 염두에 두고 훈련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무술이든 초기에는 상대방과 실제로 공방을 주고받는 그야말로 실전형태의 대련, 혹은 실전 경험을 해야 했던 기간이 짧게든 길게든 존재했을 것이다.실전 경험을 통해 습득한 기술, 그리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구상한자신만의 기술들은 모이고 모여 한 사람, 나아가 한 유파의 스타일을 이루게 되고 그 기술들을 숙달하기 위한 연습의 필요성 또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실전 형태의 연습은 반드시부상의 위험 부담이 따랐을 것이므로 결국은 보다 안전한 형태로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즉, 실전 상황에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을 상대에게 큰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연습할 수 있는 수련 체계를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 무술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자, 그럼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통 어떤 무술을 익힐 때 기술을 습득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형태는 무엇인가? 바로 낱 기술을 하나씩 익히는 방법이다. 태권도라면 정권지르기, 앞차기, 돌려차기, 옆차기 등의 기술을 하나씩 배우고 익히게 된다. 이 때 단순히 차는 요령이나 형태를 익히는 것은 혼자서 맨몸으로 혹은 도구를 사용해서 연습이 가능하지만, 실제 용법이나 특정 상황을 고려하게 되면 상대가 필요해진다. 따라서 그 상황을 연출하고 기술을 받아 주는 상대를 두고 직접 연습을 하게 게 된다. 예를 들면 상대가 얼굴 지르기를 할 때 올려막고 몸통지르기라는 식이다.


이런 연습 형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본(本)의 형태이다. 본은 본 받다라고 할 때의 본과 같은 말이다. 즉, 어떤 기준이나 모범,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형태를 의미한다.검도 대회에서 고단자들이 시연하는 대도의 본, 소도의 본 등 진검을 들고 두 명의 검사가 펼치는 연무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유파는 검도, 거합, 유도 등 일본 무도 또는 그 영향을 받는 유파가 많고, 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합기도의 수, 아이키도의 교, 대동류의 조항 등 기술을 형태별로 분류하고 반복 연습하는 연습 형태는 모두 같은 맥락에 있다.

이런 형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주로 낱 기술 혹은 한 호흡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여기서 호흡이란 일종의 박자 감각을 일컫는 말이다. 자세한 설명은 차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한 번에 이어지는 동작, 자연스러운 연계기 정도로 이해하기 바란다)을 단위로 하며, 상대가 일정한 형태로 공격, 또는 자세를 취할 때 어떤 기술을 쓴다는 식으로 그 기술의 기본적인 형태와 용법을 익히는 데 쓰인다. 또한 타격계보다도 대부분 실제로 상대가 있어야 기술 연습이 가능한 유술계, 현대 무술보다는 고류에 가까운유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낱 기술의 적응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타격계나 현대 무술에서도 비슷한 형태 또는 변형된 형태의 대련 방식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가라테에서도 1본/2본/3본 쿠미테(겨루기)를 수련하며, 요즘은 잘 하지 않지만 태권도에서도 같은 형태의 대련 방식인 약속겨루기가 존재한다.

본(本) 형식의 가장 큰 장점은 기술을 점차 정순하게 익힐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기술의 형태란 그 기술을 쓰기 위한 정확한 자세와 감각, 적절한 종류의 힘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움직임을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본을 반복 숙달함에 따라 쓸 모 없는 힘과 동작을 자연스럽게 없앨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합기 고수나 유도 고단자는 보다 작은 동작과 적은 힘으로도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려 꺾거나 메칠 수 있다. 가라테나 태권도 고수가 보여 주는 위력적인 단타나, 중국무술의 발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련 방식은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 번째는 올바른 기술을 쓸 수 있게끔 잘 받아 주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기술의 올바른 감각과 정순한 힘을 익히기 위해서는 역시 일정한 감각과 힘의 자극이 필요한데, 상대가 그런 자극을 줄 수 없다면 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변형된 형태에 대한 응용은 가능하다. 가장 쉬운 예로 유도에서 업어치기를 연습할 때 상대가 좀 더 버텨 본다든지, 자세를 낮춘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술이 들어가야 진짜 기술이다. 하지만, 아예 상대가 알아서 먼저 넘어가 준다든지 도망만 간다든지 하면 업어치기 실력은 전혀 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형식상의 문제다. 어떤 상황을 만들어 준 상태에서 연습을 시작하고, 한 호흡 안에서 기술을 마무리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 기술을 쓸 수 있는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법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 하나의 기술을 이어 갈 수 있는 흐름을 익히는 것도 어렵다. 이와 같은 긴 호흡의 움직임과 전술적 요소를 익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을 보조해 줄 수 있는 별도의 수련 체계가 필요하다.

본 위주로 수련하는 고류 무술들이 현대에 들어와서, 또는 신생 무술이 그 실효성을 의심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물론 그 무술의 수준 자체가 그만한 정수를 이루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비전(秘傳)되거나 혹은 실전(失傳)된 탓에 이런 부분들이 전수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술과 공력을 보여 주는 유파의 존재는 이런 대련 방식이 결코 비효율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댓글 1

^^ 2003.02.22
너무 길어서 좀 읽기 어려웠지만... -_- 맘 먹고 읽어보니 괜찮은데요. 다음 내용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