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포로로 기록된 새로운 사실 지도관"전상섭 1편"
역사속의 태권도근현대사 18편 - 지도관 전상섭 1편

\n\n
북한 포로로 기록된 새로운 사실 지도관"전상섭!
\n\n\n\n
조선연무관 권법부는 1946년 3월 3일 전상섭이 창설했다(국기원, 허인욱 2008, 국기원 2017, 최점연 2008, 서성원 2007)라는 설과 당시 1946년 3월 3일은 일요일이어서 3월2일 개설했다고 주장하는 설! 두가지의 설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 주장을 통제로 뒤집는 신문기사가 발견되었다.
\n\n\n\n
\n\n
이는 지금까지 관련자들의 구술과 심증, 추정으로만 일관된 조선연무관 권법부의 창설을 김영선씨는 사실적 1차 사료를 근거로 위의 두가지 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어서 주목이 된다. 어째건 조금 더 연구되고 고증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n\n\n\n
① 전상섭은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라 납북 되었다?
\n\n창설자는 전상섭(1921~)인데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 되었다. 그에 대한 자료나 수련 경력 등이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그의 동생 전일섭은 전상섭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님은 보통체격에 운동 신경이 뛰어났고, 성격은 원만한 편이며 6,25 때 납북되어 행방불명 되었기 때문에 생사를 모른다!"라고 전했다.(최점현 2008)
\n\n\n\n
하지만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전상섭은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라 국군 포로로 납북되었다는 것.
\n\n\n\n
1952년 2월 4일자 석간 자유신문에 보면 “국군포로명부”라고 쓰여 있고, 그 명단 속에 전상섭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n\n
\n왜 포로가 되었는지 언제 납북 되었는지는 알수 없다. 1952년 2월 4일(자유신문1952.02.04) 전상섭의 이름이 정확하게 명단에 담겨짐으로써 지금까지 행방불명되었다는 설을 일축할 수 있는 새로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n\n\n\n
전상섭이 본인 스스로 납북했는지 아니면 국군 포로로 압송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수 없다. 북으로 압송된 뒤 그의 소식이 끊어져 어떻게 지냈는지 생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수가 없다.
\n\n\n\n
(다음 편에서 계속)
\n\n1. 전상섭은 어떤 무술들을 섭렵했을까?
\n\n2. 척식대학은 어떤 대학일까?
\n\n\n\n
[글. 엄재영 사범 | 대망태권도 관장, 북경체대 교수 ㅣ kaikans@hanmail.net]
\n<ⓒ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