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권법부 창설 연도, 태권도사에서 수정돼야 하는 이유!
역사 속의 태권도 역사 9편 - YMCA권법부 윤병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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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 창설자 윤병인(1920~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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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의 창설 연도는 태권도사에서 수정되어야 한다.
\n\n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는 조선연무관 창설자 전상섭과 함께 소공동에 위치한 강도관(유도) 한 쪽을 빌려 조선연무관 권법부에서 전임사범으로 함께 하던 윤병인(1920~1983)이 당시 YMCA 간사였던 배용기의 추천으로 1946년 9월1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중앙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창설하였다.(국기원 2017, 서성원 2007, 허인욱 2008, 최점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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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946년 9월 1일은 일요일이었다. 따라서 YMCA는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주일에 운동부를 개설했다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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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하지만, 현재 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의 창설일은 "1946년 9월 1일"이 정설이다. 이것을 정면으로 뒤집는 주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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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태권도 원류의 오대관형성과 사적의의에 관한 연구>에서 김영선 씨는 이런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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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체육운동 100년사를 집필했던 김재우(2009)에 의해 최초로 제기된 주장이다. 그는 다음의 서울신문(1947.08.24) 기사를 근거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체육부에서 권법부를 신설 1947년 9월 1일 오후5시부터 한다는 기사를 제시함으로써 기준의 1946년 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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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설로 내려오던 1946년 9월1일설을 완전히 뒤집는 보도자료였다. 지금까지 내려오던 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의 창설일자는 잘못된 것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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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밭침하듯 김영선씨는 이에 추가로 발견된 자유신문(1947, 08, 24), 조선중알일보(1947. 08. 26), 현대일보(1947. 08.24)총 3건의 신문기사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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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中靑) 당수부 신설] YMCA 체육부에서는 윤병인 강사를 맞아 권법부(唐手)를 신설하고 9월 1일부터 매일 오후 5시 반부터 개강키로 되어 부원을 모집한다는바 희망자는 중청(中靑) 체육부에 신청하라고 한다.
\n\n(자유신문, 194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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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 기사는 김재우가 주장한 1947년 9월1일(월)을 뒷바침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며 한곳의 언론도 아닌 3곳의 언론에서 일제히 날짜를 기록함으로써 신뢰성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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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국기원교본과 많은 태권도역사 사료들의 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YMCA권법부) 창설일을 전면 개정해야하고 태권도사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에게도 보수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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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인은 당시 YMCA권법부는 자신의 도장이 아니었 때문에 관장이란 호칭 대신 사범 호칭이 맞다고 그의 제자들이 진술할 만큼 정통무도인이었다.(허인욱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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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인(1920~1983)은 어린시절을 만주에서 보내면서 몽골인 사범에게 권법(拳法)주안파를 익혔다는 것이 정설이다.(국기원 2017, 허인욱 2008, 서성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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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윤병인의 사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는 무도실력이 뛰어나고 깊었으며 그의 스승인 도야마간켄의 깊고 넓은 무도철학의 영향을 받은 정통무도인라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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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도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그 이유를 추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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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
\n\n1. 윤병인이 배웠다는 중국권법 "주안파"란 어떤 무술일까?
\n\n2. 조선 최고의 무도인 윤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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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재영 사범 = 대망태권도장 관장 & 북경체대 교수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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