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대작 영웅을 기다린다.
영웅은 없으나 영웅은 기억된다.

자객이 영웅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억압받는사람들의 삶에 희망을 주려 했다면 그 자객은 영웅이 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중국역사의 영웅이자 역사의 괴물로 표현되는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중국인에게 하나의 중국이란 개념을 심어 넣어준 영웅이었다. 진시황이 새로운 중국, 하나의 중화란 새 질서를 수립해 갔다면 그 반면에는 억압받고 멸망당한 춘추전국 열국의 왕과 제후 민초와 유민들에게는 형가라는 자객이 마음속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易 水 歌 (역수가)
風蕭蕭兮易水寒풍소소혜역수한
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일거혜불복환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이 노래는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길을 떠나기 전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것인데 이 노래를 들은 주위에 환송하러 모여든 사람들 모두 울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역수가에 담겨있듯 진(秦)나라에 차례로 멸망 당해가는 춘추전국의 열국들의 입장에서는 형가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형가는 진(秦)왕을 암살하는데 실패하고 그의 이야기는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영웅적 전설이 된다.
의협형 자객의 의(義), 영웅형 정복군주의 의(義)
1월 중순에 자객을 주인공으로 한 무협 블록버스터 대작 영화가 개봉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영웅이다. 하나의 중국, 중화라는 하나의 세계를 이룩해 간 진나라의 왕이요, 시황제이자 영웅인 진시황이 등장하고, 진나라의 무력에 넘어져간 열국의 제후와 민초들의 염원과 한을 풀고자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영웅 자객과 이들을 막는 무사가 등장한다.
누구의 대의(大義)가 정당한 것이었을까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홍,청,녹,백색 네가지 의상의 색채변화를 통해 전개되는 이 영화는 무명(이연걸)이 진(秦)왕을 살해하기 위해 진왕의 궁전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진왕은 무명을 보자 그 의도를 알아차린다. 사실 무명은 진왕을 살해하러 궁에 침입한 세명의 자객들로부터 진왕을 보호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다. 자객들이 진왕을 살해하려던 순간 진왕에게 발각되고 영화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회상장면으로 간다. 진왕을 암살한다는 공통 목표를 갖고 있는 비설(장만옥)과 잔검(양조위)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잔검은 진왕을 민난뒤로 자신이 진왕을 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잔검과 비설은 갈등하게 되고 여월(장쯔이)의 출현으로 둘의 애정엔 더 큰 갈등이 생기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자객열전
이 영화는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있는 형가라는 학자와도 같고 현인과도 같았던 뛰어난 검객이자 의협에 대한 중국인들의 향수와 그들만의 향취를 적극 활용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의 식객이었다. 학문과 서예에 조예가 깊은 현인이자 무사였으며 그의 벗인 고점리는 뛰어난 음악가였다. 그 둘은 술을 사랑했다. 진나라는 차례로 춘추전국의 열국을 무너뜨리며 천하통일을 향해가고 연나라는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는 위기에 몰린다. 이에 연나라 태자 단은 진시황을 암살하기로 하고 형가가 진시황에게 접근하기 위해 진에서 망명한 장수 번어기의 목과 연나라의 요충지인 독항의 지도를 준비해 형가에게 준다. 형가는 진시황에게 접근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암살은 실패한다. 형가가 진시황 암살에 실패한 후 고점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채 진시황의 궁중악사가 된다. 궁중악사가 된 고점리는 기회를 틈타 악기인 축으로 진시황을 내려쳐 죽이려던 시도를 했으나 그마저 실패하고 만다. 고점리는 진시황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형가와 고점리는 시장에서 술에 취해 음악에 취해 세상을 노래하던 낭만적 인협(仁俠)이었다.
혼란의 춘추전국
주(周)나라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중국이 분열되어 전란에 휩싸인 후 춘추전국의 말엽은 서족은 강대한 진(秦)이 남방은 초(楚) 중원은 한(韓), 조(趙), 위(魏) 북방은 연(燕), 동방은 제(濟)가 합종연횡으로 서로 대립하였고 사상적으로는 도가, 묵가, 유가, 법가등 제자백가가 경쟁하였다. 그 가운데 점차 중국인들은 하나의 중국을 열망하였고, 한편으론 하나의 중국이 됐을 때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될 춘추전국의 질서에 대한 우려와 새로운 질서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영웅은 없다.
어쩌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영웅일 수 있다. 다만 그 시대에 주어진 역할과 짊어진 책임과 사명의 무게가 다를 뿐이고 입장이 상반된 것인지도 모른다. 형가는 진시황제의 옷소매를 잡고 진시황을 단도로 찌르려 할 때 옷자락이 짲어져 실패하고 단도를 던져 죽이려 할 때 왕실 약사의 약단지에 맞아 실패한 후 진시황의 장검에 맞아 쓰러진다. 피에 젖은 형가는 기둥에 기댄채 멸망하는 전국시대 열국의 망국의 슬픔과 민초의 아픔에 잠겼고 형가를 내리친 시황제는 법가의 법치로 하나가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중국의 아픔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웅장한 스케일, 초호화 제작진
이 영화는 웅장한 스케일과 서사적 이야기 구성만큼 호화로운 제작진이 배치되었다. 장이머우 감독(칸느,베를린,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와호장룡의 제작자 빌콩, 음악 탄둔(아카데미 작곡상) 미술 후오팅샤오(칸느 미술상), 의상 에미와다(아카데미 의상상) 왕자이웨이 감독의 콤비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동방불패 소오강호의 무술감독 청샤오둥,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 같은 세계적 스타들과 차세대 무술배우 견자단, 중국의 간판급 배우 진도명이 각자의 능력을 화려하게 선 보였다.
2003년을 시작하며 중국의 역사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무협활극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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