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할리우드 맞설 검객 ‘무’보다 ‘협’에 무게
<영웅>의 세 주인공 ‘량차오웨이·장만위·리롄제’ 인터뷰
중국영화 5세대의 대표였던 장이모우 감독은 더이상 문화혁명기의 기억을 되살리며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던 옛날의 장이모우가 아니었다. <영웅>의 세계 첫 시사회를 위해 지난주말 찾은 베이징. 시내 버스 정류장 곳곳에는 <영웅>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고, 개별인터뷰에 이은 전체 공식기자회견은 인민대회당에서 열렸으며, 리셉션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3500만 달러짜리 미국·중국 합작 블록버스터 <영웅>(한국개봉 내년 1월24일 예정)은 <와호장룡>의 제작자 빌 콩이 제작을 맡고, 량챠오웨이·장만위·리롄제·장쯔이·첸타오밍·도니 옌 등 중국계의 세계적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영웅>은 아직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지 못하던 전국 7웅 시대, ‘영정’(후의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자객들의 수많은 전설 가운데 하나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장 감독은 자신의 첫번째 사극이자 무협영화인 <영웅>에서 진시황을 ‘폭군’이라기보다는, 영웅의 길을 깨닫는 인물로 그렸다. 그는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던 이들이 진정 영웅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엄청난 규모의 스케일과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진시황의 군대들이 움직이는 산처럼 등장하는 가운데 무명(리롄제)이라는 무사가 진시황을 노리던 3명의 전설적 자객들, 창공(도니 옌)·비설(장만위)·파검(량차오웨이)을 없앴다며 나타나 진시황(첸타오밍)을 직접 알현한다. <영웅>은 무명이 이 3명을 ‘제거’하는 이야기를, 무명의 관점에서, 진시황의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진실을 보여주는 세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보여준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배우들의 옷부터 배경까지 적색·청색·흰색의 원색적인 색채로 물들어 있다. “적색은 비설과 파검의 관계가 불안정하고 강렬하다는 점에서, 청색은 이들의 애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백색은 진실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각각 선택했다”는 것이 장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 전통미의 핵심은 의경(意境)”이라 말한다. 그의 말대로 <영웅>의 몇몇 장면은 경물(풍광)에 뜻(의)을 실은 경지에 이른 수준이다. 특히 첫부분 창공과 무명이 정신 세계 속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고요한 호수 위를 나는 듯 싸우는 파검과 무명의 ‘장중한’ 무술은 숨이 막힐 정도다.
<영웅>은 분명 <동방불패>나 <와호장룡>이 그러했듯, 무협영화의 무술을 새롭게 한단계 끌어올린 영화로 보였다. 유려한 남방적 선이 살아났던 <와호장룡>에선 볼 수 없었던 힘과 스케일도 장기다. 하지만 결국 진시황을 ‘영웅’으로 그린 것과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소의’라는 주제가 이 시대, 얼마나 유효한 것인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장 감독은 “이제까지 중국영화가 해외에선 예술영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대중의 지지는 크지 않았다. 진시황이 중국에 널리 알려진 친근한 소재라는 점을 감안했다”며 “역사적 인물로 그린 것일 뿐, 현재적 평가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국에서 이런 큰 자본과 스케일과 연기자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와호장룡>에 이어 아카데미상을 노린다는 이야기나, 중국내 언론의 한결같은 찬사와 기대감은 ‘할리우드에 맞설 수 있는 중국영화’라는 자부심에서 나온 것일 게다. 그렇게 <붉은 수수밭> <홍등> 시절의 화려한 색채와 형식주의를 들고 중국의 먼 과거로 돌아간 장이모우는 그 자신, ‘중국의 영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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