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영의 태권도 이야기] 쇼토칸 가라테의 탄생 배경은?
역사속의 태권도역사 "3편"
![[엄재영의 태권도 이야기] 쇼토칸 가라테의 탄생 배경은?](https://data1.mookas.com/journal/images/2020-07-11_15-06-24-69827-1594447584.jpg)
● 일본의 류큐왕국(현재 오키나와) 침략!
\n\n일본이 1895년 류큐왕국을 침략했다. 오키나와를 일본 제국의 47번 유구로 일본에 합병시켰다. 오키나와섬이 일본 행정 구역으로 편입됨으로서 가라테(空手道)는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근대화를 맞이한다(송남정, 2011, 양진방,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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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시대(明治時代1868∼1957) 오키나와 무사 집안 태생의 후나고시 기친(富名腰義珍)에 의해 처음으로 일본 본토에 가라테(空手道)가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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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일본은 통치수단으로 무사들을 제외하고 평민들이나 승들은 무기를 만들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일명 ”카타나가리(刀狩)“를 정책을 오끼나와에 전면 시행한다.
\n\n이때 발전한 것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맨손권법 당수(唐手)이고 이 당수가 발전되어 가라테가 되는 밑거름이 된다.(엄재영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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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에는 각 분파에서 각자 독특한 가라테(空手道)의 카타(型)를 익히고 배웠는데 마츠무라 쇼곤이 처음으로 몇 개의 카타(型)에 변화를 시도했다.(문화체육광관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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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형 개발과 학교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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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평안형 개발은 1905년 이토스 야스츠네(絲州安恒, 18301~1915)가 오키나와 현 제1중학교 및 오키나와 사범학교 체육과에 채용되면서 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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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왕국의 왕족무술 교관이었던 그는 당수(唐手)의 비급과 기술을 존속, 전파하고 싶어 했는데 고류(古流)의 형을 바탕으로 어려운 무술동작에서 학생체육으로 배우기 쉽도록 기존의 급소 공격, 관절꺾기 등과 같은 위험한 기술들을 제외시키면서(김태양, 2011; 이항택, 2008; 정현도, 2002) 평안(平安) 1~5단 형을 청소년들의 체육활동 일환으로 창안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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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학교 정식 체육과목으로 지정되어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울 수 있게 정책을 펼쳐 나갔기 때문에 평안형(平安型)을 오키나와에 정착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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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든 이토스 야스츠네가 창안해 낸 카타 평안형은 무술에서 체육적 성격으로 변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엄재영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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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형을 배우기 전.... 초보자가 배우는 태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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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平安) 형(型)의 구성은 가라테(空手道)에서 먼저 공격하는 선수는 없다! 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처음 동작이 꼭 막기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먼저 공격하지 않는 정도(正道)의 정신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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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동작이 좌, 우가 대칭되고 총 동작수가 모두 20~22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어 초보자들이 외우기가 쉽고 단계적인 실행으로 본인이 혼자서도 수련을 하여 수련의 깊이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盧初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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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평안(平安)을 배우기전에 가라테를 시작하는 초보자는 태극(太極)이라는 입문 형 태극 1~3형(型)을 먼저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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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원 태권도연구 제5권 제2호 최초 태권도교본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평안은 “이토스 야스츠네가 당시 청소년 학교 체육의 일환으로 공상군(公相君) 형을 기초로 창작한 초보자용 형이다. 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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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교본의 1959년 판본과 1962년 판본(서민학, 2007)에 실린 목차 내용을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개정된 부분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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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헌과 논문의 인용으로 볼 때 평안형(平安)을 배우기 전 태극(太極) 1~3형 을 기초 형(型)으로 배웠으며 어느 정도 숙련이 되면 카타(型) 평안(平安)1~5단을 습득한 것을 알 수 있다.
\n\n이 모두를 합치면 8개 태권도 유급자 태극1~8장과 똑같다. 기간도장 창시자들은 가라테의 기술 체계를 배운 것이 온전히 일본의 고유한 형이 아니라 오끼나와 형에서 왔음을 짐작해 한다.
\n\n1944년 당시 쉽게 도장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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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건, 막강한 권력을 갖은 당시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노부유끼는 일본 거주시절부터 아보회라는 권력계통의 모임의 회원이었던 이원국씨와 각별한 사이였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근하게 된 이원국씨가 “일한친선”을 내세워 가라테를 가르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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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부유끼는 싸움을 가르친다는 근거를 들어 반대했다. 그렇지만 조선에는 일-조친선협회도 있고, 한국 젊은이들도 일본을 위해 군대를 가는데 무술교육에 차별이 있어야 된다고 설득했다. 모든 사고와 책임을 진다는 서약아래 1944년 9월 서대문구 옥천동 영신학교 강당을 빌려 우리나라 최초로 당수도 청도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하게 되었다.(안근아, 이재봉, 안용규 2004,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 2008, 서성원2003, 강원식 남은숙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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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44년에는 수련생 배출하지 못했고 임의적인 가르침에 머물러 실질적인 개관으로 보기엔 힘들다는 새로운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 나왔다.(김영선 2019) 명칭을 당수도라고 했지만 쇼토칸가라테의 기술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실상 가라테의 기술을 가르쳤다. 1968년 집필된 이원국의 “태권도교범” 목차를 보면 모두 가라테의 카타임을 정확히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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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945, 1946년 시천교당 창립설이 있는데 이 개관설이 설득력이 있고 송무관 창시자 노병직과 지도관 이종우의 증언이 일치하며 역사사료로 적합한 사진에도 이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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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시천교당”은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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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천교당”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사천교은 어떤 단체고 무엇을 하는 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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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인 천도교 중앙대교당이다. 현대의 조선총독부와 더불어 서울의 3대 건축물로 유명한 건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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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교는 1906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서 이용구가 창립된 동학계 종교이다. 이용구는 일찍부터 동학에 가입,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의 주역인 천도교인 손병희(孫秉熙)와 함께 최시형(崔時亨)의 제자가 되어 천도교 발전에 이바지했으나 진보회, 일진회(一進會)를 조직, 친일적노선을 걷게 되자 천도교로부터 출교를 당했고 1906년 시천교를 창시한다.(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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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시천교는 친일파 쪽에 가까운 단체고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이원국씨에게는 시천교당을 빌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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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국씨는 일본에서 쇼토칸가라테를 배워와 청도관 관원들과 6.25 동란 때 붉은 완장을 차고 청도관으로 쓰고 다니던 시천교당 건물옥상에 북한 인민기를 걸어 자신은 물론 당시 청도관이었던 여러 제자들을 끌어드려 북한에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주장도 있고, 그 이후 1963년 사실을 은페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했다는 설은 일본에서 함께 수련했던 송무관 노병직씨의 주장도 있다.(무카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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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친일파적 행각은 최홍희(1997)의 자서전에서도 기술되어 있는데 이원국은(일제시절) 고등계형사(독립운동을 하는 인물들을 잡아들이는 종로경찰서의 부서)를 했기 때문에 해방직후 “반민특위(반민족특별위원회)에 잡혀 들어갔다가 풀려 나왔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그의 주장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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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의 이력과 해방이후의 활동 그리고 그의 학력 등을 종합해 볼때 이원국씨는 일반 노동자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청도관 개관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태권도계의 암울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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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도관은 태권도가 세계에 우뚝 설수 있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태권도계의 걸출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해 냈고 그 역사적 업적의 시초는 이원국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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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제자인 엄운규는 청도관을 오늘날까지 위상을 높이는데 일등공신으로 수많은 청도관 제자들이 현재 태권도계에서 많은 역할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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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차는........
\n\n1. 무덕관 개관의 비밀?
\n\n2. 무덕관과 일제 강점기 대동아공영권을 앞세운 철도부설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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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미디어 = 엄재영 사범 | 대망태권도장 관장 & 북경체대 교수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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