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ITF 이야기]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오해와 진실(상편)
ITF의 창설 그리고 분열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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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태권도연맹(창설자 김운용, WT)을 비롯한 여타 무도에 비하면 국내에서 국제태권도연맹(창설자 최홍희, ITF)의 입지와 위상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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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F가 훨씬 더 널리 알려지고 보편적이 되기 바라는 마음은 ITF를 수련하는 도장 사범과 수련생 모두 한 뜻일 거라고 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예전, 정확히 말하자면 ITF가 정식으로 국내에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2003년부터, 즉 17년 전에 비하면 많이 알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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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만 검색하면 ITF태권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ITF를 지도 및 수련한다는 도장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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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접하고, 쓰고 고칠 수 있는 나무위키 백과에도 ITF 항목이 제법 길게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한다는 그 장점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없는 잘못된 내용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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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나무위키 뿐만이 아니라, 늘상 대중들이 손쉽게 입에 올리는 '북한 태권도' 에 대한 오해도 여전히 깊이 뿌리박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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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정보가 많아졌다는 사실이 ITF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졌다는 증거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근거 없고 객관적이지 않은 정보가 퍼지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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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ITF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지금이라도 바로잡히기 바라는 마음에서, 국제태권도연맹의 창설부터 국내 유입까지의 내용을 짧게나마 2편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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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태권도연맹의 창설과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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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통칭 ITF)은 1966년 3월 22일 故최홍희 장군에 의해 서울의 구 조선호텔 로즈룸에서 9개국(월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서독, 미국, 터키, 이탈리아, 아랍공화국, 한국)이 모여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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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후 1972년 故최홍희 장군이 캐나다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국제태권도연맹도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그 후 캐나다를 기점으로 국제보급이 이루어졌고 1980년 초 북의 요청에 의해 회원국 중 하나의 자격으로 보급이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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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 있어 덧붙이자면, 태권도는 무도이며, 따라서 그 보급에 있어 특정 종교나 사상이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또한 한국의 무술을 계승할 한국인인 주변에 없었고 한국에는 보급을 할 수 없으니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염원 하에 한민족인 북에 보급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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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한민국 군 창설 멤버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이러한 선택은 훗날 양면의 결과를 낳게 된다. 당시 북의 보급 때문에 故최홍희 장군의 주변 사범님들이 많이 떠나 세계태권도연맹(1973년 창설)으로 이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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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태권도연맹의 분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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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태권도연맹의 창설자이자 총재였던 故최홍희 장군이 2002년 6월15일 서거하면서 국제태권도연맹은 분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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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추모행사를 한다며 회원국을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추모행사는 새 총재 선출을 위한 행사로 급작스럽게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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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행사 플랜카드도 장웅 총재 선출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왜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몇몇 나라 대표들은 이미 최홍희 총재가 서거 약 석 달 전부터 비자 신청을 하도록 미리 언질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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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해외 교육을 많이 다닌 태권도계 대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현지 WT지부 회장이 찾아와 본인 역시 본디 현지ITF 회장이었으나 북에서의 총재 선출과정 등을 납득할 수 없어 옮기게 되었다고 전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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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홍희 장군이 치료를 위해 북에 들어가셨을 때 함께 동행 했던 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북측에서 먼저 화장을 시작하고 상황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여러의혹을 제기 하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홍희 장군은 생전에 이미 공히 명시한 유언 중 하나로 수의로는 도복을 입도록 하고, 비문에는 태권도 창시자라고 기록해달라고 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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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그럼에도 북은 최홍희 장군의 생전의 뜻과 가족 동의 없이 화장을 했다. 비문에는 최홍희 선생으로 기록하고 혁명 열사능에 안장시켰다. (참고로 북한 단체는 24개틀의 2단 틀 중 고당 틀을 이름을 바꿔 주체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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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막한 사태 이후 미망인께서는 몇 해 동안은 추모행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북에 가셨으나 현재는 남편의 뜻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가는 북측의 행태에 실망. 더는 그 추모 행사에 참석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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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따라서 ITF는 최홍희 총재 사후 크게 3개의 계열로 분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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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위와 같은 절차에 의한, 북한 계열의 ITF, 이미 총회에서 차기 총재로 결정되었던 최홍희 장군의 외아들인 최중화 총재, 그리고 이러한 분열에 넌더리가 났던지 한국 사람을 배제하고 우리끼리 하자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베트남계 캐나다인인 트란콴 주도 하의 계열로 나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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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계열의 ITF 단체는 이후 각자 활동을 해왔고, 현 국내는 지금에 와서는 옛 원로 선배들이나 일부 개인들이 최홍희 장군의 뜻을 외치며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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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참고로 필자는 최중화 총재 단체의 한국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가족들에게 들은 내용과 창설 원로 선배님들께 직접 전해들은 사실을 토대로 기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연맹에 소속된 이로서의 발언이니, 객관적인 근거로서 하나의 정보로 알아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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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승희 사범 ㅣ pride65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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