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탐험 1 - 장승

전통적으로 장승은 한국사회 내에서 기층민중과 가장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중의 하나로서 지극히 서민적인 투박한 모습으로 마을의 수문장 역할을 해왔다.
마마 등의 무서운 괴질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번영과 풍요를 기원할 수 있는 상징으로 민중들 삶 깊숙이 자리하며 늘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온 장승은 참으로 다양한 형상을 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인 특유의 표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공통적인 특징으로 한국장승의 몇가지 유형적인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즉, 토속적이며 단순함, 그리고 과감한 생략을 통한 신비주의적인 추상미 등의 요소들을 한국적인 표정으로 채우고 있다.

장승의 기원
대부분의 장승은 마을사람들 중 솜씨 좋은 무명의 민초에 의해 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또한 민간에서 유행하던 신앙의 형태로 존재했던 바, 그 정확한 유래를 찾을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선사시대 흙이나 조개껍질 등에 그려진 신상(神像), 혹은 선돌이나 경계표석, 살맥이돌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고, 청동기 시대의 짐대(솟대)나 삼국시대 목제 신상들을 그 원류로 보는 등의 의견들이 있긴 하지만 확실하게 인정되는 것은 없다.
장승의 이름

장승이라는 이름은 서울 부근에서 불려지던 것으로 도교의 장생불사(長生不死)에서 빌어온 이름이라 한다. 하지만 장승은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지역에 따라 벅수, 하루방, 천하대장군, 수살, 돌미륵, 신장, 할아버지, 할머니, 당산 등의 여러 이름들이 존재했다.

장승의 모습
흔히 장승은 귀신이나 장군의 모습으로 제작되었으나 경우에 따라서 노인이나 선비, 문무관, 미륵 또는 부처의 형상으로 조각되거나 그려졌다.
소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돌 등의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졌던 장승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표현은 아니었지만 보기에 따라 선하게도 무섭게도 보이는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
하지만 괴기스런 표현에도 불구하고 장승은 누구에게나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는 장승이 가지는 토속적인 성격과 함께 한국 민족이 가지는 순박한 성품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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