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칼럼] 비키니도 도복이다!
정리하자면 확실히 도복은 예복이 맞다. 하지만 도복 그 자체는 천 쪼가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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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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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비치 태권도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해변에서 옷차림을 시원(?)하게 하고 태권도를 시연하며 겨루는 경기가 시범적으로 선보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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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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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도 있었지만 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옷차림에 대한 것이었다. 태권도라면 응당 도복을 갖춰 입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해변에서 하는 그런 방식의 경기는 옳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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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민감한 문제인 ‘성性 상품화’라는 비판도 나왔으니 말 다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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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출전하는 선수들이 억지로 한 게 아니라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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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는 경기 겨루기 선수들의 도복이 쫄쫄이 같은 것으로 변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이 때도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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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도복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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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은 태권도를 수련하거나 경기에 출전할 때 입는 것이다. 이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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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수련을 하거나 지도할 때 도복을 즐겨 입는다. 그리고 수련생들에게 가급적 도복을 입고 수련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물론 여름에는 도장의 단체 티셔츠 착용을 허용하고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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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도복을 입는 것이 태권도를 할 때 갖춰야 하는 예복(禮服)인 것은 맞다. 그러나 도복이라는 것에 너무 과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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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을 꼭 입어야 하는 이유를 대라면 사실 명확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정신이 어떻고 하며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그 정신이라는 것이 사실 정의하기 어렵지 않은가. 태권도 정신과 천 쪼가리로 만들어진 도복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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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 보자. 정신은 어떤 영역에 속해 있는가? 정신이라는 것은 물질의 영역이 아닌 우리 마음의 영역이 아닌가. 즉 마음만 올바로 잡혀 있다면 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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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태권도인 분들도 대부분 그러시겠지만 나 또한 하루 종일 도복을 입고 있다. 그러나 출퇴근을 할 때, 집에서 쉴 때 등 많은 시간 도복을 입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복을 입지 않는 시간에는 태권도인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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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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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권도인임을 결정하는 요소는 나의 마음이지 몸에 걸친 어떤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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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을 입는 이유가 정신을 바로 잡기 위한 어떠한 것이라면 정신이란 ‘나 자신’의 마음의 문제이지 겉에 걸친 것과는 상관없다. 도복이 정말로 태권도인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면 누구나 태권도복만 입으면 태권도인이 된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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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흰 도복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품새용 도복을 비롯하여 다양한 색과 디자인, 기능성 도복들이 나오고 있다. 천 쪼가리로 이루어진 도복 자체가 중요하다면 이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도복인가? 어떤 것이 가장 상징성이 있으며 ‘태권도의 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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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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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정체성, 정신 이러한 것들은 비(非) 물질의 영역이다. 어떤 옷차림이나 디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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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있던, 타이즈 쫄쫄이를 입던 간에 수행자 본인이 태권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태권도 기술을 구사하며 태권도를 한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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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2년 전 첫 격투 시합에 출전했을 때 도복을 입고 출전했다. 꼭 한 번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트렁크를 입고 출전했다. 당시 도복이 격투 시합에서는 너무 걸리적거려서 승률을 높이기 위해 편한 옷차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내가 태권도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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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격투 문화가 발전한 일본을 예로 들면 가라데인이 격투 시합에 출전할 때 당연히 트렁크를 입고 경기에 임한다. 물론 등장을 할 때는 도복을 입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지만 말이다. 그런데 경기할 때 트렁크를 입는다 해서 이 선수가 가라데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문화의 전통성이 우리나라보다 더욱 보수적이라는 일본이 이러는 것을 보면 여러 생각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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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나라도 이런 의식이 잘 정착한 듯 하지만 예전만해도 격투 시합에 태권도복을 입고 출전하면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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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도복을 입고 싸움질이나 하다니. 양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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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에 위와 같은 의식은 상당히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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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확실히 도복은 예복이 맞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지켜야 하는 문화와 형식이 있듯이 태권도를 수행하는 공간에서는 도복을 입는 것이 정당하다. 도복을 입어야 왠지 더 분위기가 나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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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복 그 자체는 천 쪼가리에 불과하다. 여기에 너무 과하게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도복과 정신을 연결시키자면 바로 잡혀 있는 올곧은 정신이 곧 무형(無形)의 도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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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도 우리는 마음의 도복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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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희 사범 ㅣ jsrcl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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