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태권도 사범, 미국 영주권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박호진 변호사의 미국 진출 바로알기 1 - 일보다 신분이 더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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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 아픈 법"
\n\n안녕하세요. 박호진 변호사 입니다. <무카스>를 통해 미국 내 태권도 사범 취업과 정착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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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칼럼에서는 선배 때문에 미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A 태권도 사범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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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범은 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우연한 기회로 아프리카 국가의 군대 태권도 교관으로 약 5년 간 근무를 하며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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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한국으로 돌아가 경기도에 도장을 차리게 되었다. 도장 운영은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었다. 도장 형편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늘 꿈꾸어오던 미국 태권도장 운영 기회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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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어릴 적 함께 태권도를 배웠던 선배가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도장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연락이 닿은 선배로부터 다음과 같은 제안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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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면 자리 잡을 때까지 도와주겠다. 월급으로 $3천500을 줄 것이고, 변호사에게 알아보니까 2년 정도면 영주권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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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선배의 제안을 믿고 한국에서 운영하던 도장을 정리한 후 미국행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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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난생처음 밟은 미국 땅은 날씨도 한국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선배 덕분에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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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것이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영어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리라 생각하면서 마음 편하게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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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선배 제안으로 선배 집에서 방 하나를 임대했다. 시카고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 도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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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 달이 지나고 받은 월급은 애초 약속보다 많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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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네가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하고 있으니 그 비용으로 $1,500을 제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월급에서 여러 가지 세금이 공제 된 다음에 받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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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자신의 집에 머무르라며 먼저 제안해 놓고 한 달에 $1,500씩이나 받는 사실을 알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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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배의 집에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냉장고를 열면 마땅히 먹을 것도 없어서 맨밥에 김치 한 가지로 끼니를 때우거나 달걀에 비벼 먹기 일쑤였다. 생활비와 세금을 공제하고 나니 결국 $1,500도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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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어린 딸을 다른 가족에게 맡겨 두고 왔기 때문에 한국으로 생활비도 좀 보내야 했지만, 미국에 온 후에 선배의 권유로 구입한 중고차 유지비만 해도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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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그 정도 돈으로는 자기 혼자 생활을 버텨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었다. A사범은 막막한 심정과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에 오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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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월급이 오를 것이다", "2년 내에 영주권을 받으면 어찌 됐든 형편이 나아질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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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도장에서 수업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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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후 선배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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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진행했던 영주권 절차에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는 영주권 문호가 좁아져서 2년 이내에 영주권을 받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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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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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부모를 대하는 스타일을 늘 못마땅해하던 선배는 “너와 학부모 사이에 입에 담지 못할 흉측한 소문이 나고 있으니 처신 조심해서 해라. 우리 도장은 한번 평판이 나빠지면 관원들 빠져나가는 거 순식간이니까”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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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A사범과 선배 사이에 불편함이 쌓였다. 또한,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주머니 사정과 한번 주저앉은 후에 다시 시작되지 않는 영주권 절차 때문에 앞날을 계획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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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불안함을 느끼다 못해 급기야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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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선배를 통해 알게 된 변호사와 연락해 영주권을 받을 방법을 직접 의논했다. 다행히 그 변호사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고, 연락한 바로 다음 날 변호사로부터 “경력이 좋으니 미국 도장으로부터 스폰서를 받지 않고 직접 자신이 스폰서가 되어 진행하는 1순위 영주권을 시도해 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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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화려한 사람들만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범주라고 이야기를 들어서 겁이 덜컥 났다. 또한 투자해야 하는 비용도 상당히 많아서 주눅도 들었지만, 성공만 하면 빨리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말에 없던 용기까지 내어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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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추천서 준비와 아프리카 국가 경력 증명서 발급 과정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결국 이민국 신청까지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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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선배 도장을 떠나 다른 도장을 찾아 나섰는데, 그 과정 또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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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비자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선배에게 마지막 부탁으로 월급 체크는 일정 기간 계속 발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른 주로 이동해 일할 도장을 찾았지만, 비자와 스폰서 얘기만 나오면 대부분 도장이 싸늘한 반응을 보이거나 그 부분을 약점 잡아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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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서는 몇 달 동안 도장 한쪽 귀퉁이에 간이침대를 두고 지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뉴욕에서 다른 선배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일하게 됐다. 비자 스폰서도 그 도장으로 옮기게 되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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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셀프 스폰서로 신청한 1순위 영주권 케이스가 신청한 지 5개월 만에 드디어 승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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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약 6개월 후 그토록 기다렸던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 또한, 한국에 있던 딸도 영주권을 받게 되어 드디어 미국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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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범은 영주권자가 된 후 뉴욕에서 자신의 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자신이 꿈꾸어왔던 대로 미국인들에게 태권도 정신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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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미국에서 보낸 9년의 세월 중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4년 반의 시간은 무척 힘든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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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A사범은 믿었던 선배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다고 전했다. A사범은 이제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운 젊은 사범을 부사범으로 채용하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늘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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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선배들이 나한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내가 도장을 운영해 보고 사범과 일을 해 보니 관장과 사범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서로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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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범은 미국으로 건너올 후배 사범들에게 이 당부를 잊지 말아 달라고 필자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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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면 도장 운영과 관련해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먼저 영주권을 취득해야 한다. 도장 운영 노하우가 생기고 영주권만 있으면 아직 미국의 마샬아츠 시장은 해볼 만 하다. 나태해지지 않고 한국에서처럼 열심히 한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무도인들끼리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꼭 가져 주시길 바란다. 그래야 진정한 태권도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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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A 사범은 미국 이민법이 인정하는 아프리카 태권도 코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스폰서가 되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대부분 태권도 사범들은 영주권 스폰서를 해 줄 곳을 찾아 더 긴 시간 동안 인고의 세월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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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영주권을 취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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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진출의 꿈을 가진 사람은 마치 개구리가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것처럼 태권도인으로서의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 먼저 영주권 취득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시기도 앞당기는 길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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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호진 변호사ㅣ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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