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화려한 술기와 기(氣)"의 무술, 합기도. 한국 무술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합기도. 그 합기도의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한 인물이 있다. 지난 8월 7일 고국방문차 17년만에 귀국한 신무합기도의 지한재(67) 총재. 그가 바로 합기도 역사의 산 증인이며 오랜 합기도 역사의 숨겨진 진실이다.
현재 합기도는 나름대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태권도와 같이 하나의 단체로 통합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되어옴으로써 그 정통성과 원류를 규정짓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최용술 선생이 합기도를 국내에 보급하고 대중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는 상황이며 합기도인들 사이에서는 지한재선생이 합기도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며 한국적인 합기도를 창시하였다는 정도가 알려진 전부이다. 이밖에도 명재남, 서인혁, 김윤상 정도가 잘 알려진 합기도의 원로들로 본지(무토 www.mooto.com-한정두 관장의 합기도 ①)에서도 기사로 다루어진 바 있다.
지한재 총재는 최용술 선생으로부터 야와라를, 안동의 명의 이명련의 아들이 이도사로부터 선도를, 그리고 삼일신고를 통해 정신도법을 수련하며 정신과 육체와 령(靈)이 하나가 되는 신무합기도를 창설, 현재 신무합기도 도주로써 전세계를 무대로 합기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지한재 도주는 합기도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합기도의 창시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합기도인들 모두가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으나 그러한 합기도의 도주, 지한재 도주가 오랫동안 합기도의 역사 속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런 그가 홀연 나타나 합기도의 통합과 정통합기도의 전수를 간절히 바라며 귀국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는 25일경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인 지총재는 현재 미국의 팬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당분간은 신무합기도의 전파를 위해 세계 각국을 돌며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래 내용은 지난 8월 8일 홍제동에 있는 지한재 도주의 동생 지형재씨(세종대 호텔스쿨 프로강사)의 자택에서 갖은 지한재 도주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Q : 합기도의 역사와 최용술선생과의 관계는?
A : 최용술 선생으로부터 일본의 야와라를 배웠다. 야와라는 일본무술의 어머니다. 야와라에서 쥬지즈, 아이키도, 쥬도, 나기나다가 나왔다. 가라데 까지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일본무술을 최용술선생은 다케다쇼우에게 배웠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인들은 최용술 선생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일본인들과 접할 때 자존심이 상한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합기도라고 만들었던 것을 62년 일본무역개시 이후 (일본 아이기도 책을 처음 보고 그 명칭이 유사하여 아이기도와의 차별화 하기위해)명칭을 변경하여 기도로 명명하고 이를 국민운동본부와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위원들에게 기도를 국기로 제정하자고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고 태권도가 국기로 제정되었다.
나는 우리나라 선도의 정신도법과 태기를 동시에 전수를 받았다. 그것이 오늘날 합기도이며, 그 정신도법을 쓰기위해 정신무술로써 신무라는 말을 썼으며 정신과 육체를 합치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기를 매일 수련하여 도를 이룬다는 뜻에서 신무합기도를 만들었다.
내가 이름을 지은 것은 합기도요, 기도요, 신무합기도이다. 최용술 선생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나라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그분을 합기도의 도주로 인정하기에는 적합치 않다. 여하튼 나는 합기도, 기도, 신무합기도라는 명칭을 만들어 냈으며 현재 신무합기도 도주로서 활동하고있다.
내가 처음 합기도를 배울 때는 대구에서 배웠고 (도장생활은)안동서 시작했다. 안동연무관 이었으며 서울 올라와서는 (그명칭이) 대한합기유원술에서 대한합기도로.....
우여곡절 끝에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지냈으며 그 후 기도를 만들어 대구에 계신 최용술 선생님께 보내 드렸더니 그분 밑에 계시는 분이 나를 서울협회 지부장으로 하고 내 후배들을 사범위원장과 심판위원장으로 내정하였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 뜻한 바 있어 나는 계속 합기도로 나가고 그 사람들은 계속 기도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오늘날까지 오고 있다.
이제는 기도, 합기도, 신무합기도가 모두 뭉쳐야 한다. 그러나 뭉치려고 보니 너무 단체가 많다. 내 후손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가 되어주기만 하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 한국 사범들에게 합기도를 전수 해주고 싶다.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합기도기술을 배우러 가는, 역수입 하는 일은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합기도 인들은 일치 단결하여 우리모두가 하나가 되어 우리나라의 것(합기도)을 전 세계에 보급하자는 것이다.
Q : 18년간의 청와대 경호실 생활을 접고 독일과 미국생활을 하신 배경과 그 삶은?
A : 57년에 서울 올라와 처음 도장을 개설했을 때 삼선개헌 무렵 그 당시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합기도를 가르쳤으며 육군사관학교 합기도부에서 교관으로도 있었다. 5.16혁명 이후 국가재건최고위 의장 경호실로 편입, 그후 계속 청와대 경호실에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사후 합기도협회 회장도 하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독일에 잠시 있다가 미국에 갔다. 17년간 미국생활을 했다.
Q : 합기도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A : 영어를 열심히 배워 우리의 전통무술인 합기도를 전세계에 보급하는데 힘이 되었으면 한다.
예언서에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이 된다고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이미 중심국이 되어있다. 태극기를 달아놓고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철학과 우리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영어를 잘 배워 전 세계에 진출하여 우리의 철학과 기술을 보급해야한다.
지한재 도주는 박정희 대통령 사후 정치적인 이유로 옥고를 치렀으며 출소 후 정치적, 개인적인 사유로 국내에 거주하지 못하고 독일을 거쳐 미국에서의 생활을 하고있다. 칠순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금 자신이 태어난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남은 여생을 합기도의 발전을 위해 살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얼마 전 ITF의 최홍희 총재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나 한 듯 조국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남과 북에 서신을 띄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 지한재 총재도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삶을 합기도의 통합과 합기도 기술의 전수를 위해 심혈(心血)을 다하고자 한다. 과거 그의 삶이 어떠하였고, 그의 행동이 어떠했는가는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그를 평가할 것이다. 다만 현재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합기도를 위해 몸 바치려는 그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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