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철학의 이해
태권도 철학의 이해
"유도의 철학이 1882년 강도관 창립이후 40년이 지나 완성된 것임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태권도철학의 정립을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은 감이 아니다. 대한태권도협회의 창립이 1961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이진수, 1999)
1920년대에 가노嘉納는 그의 유도철학의 완성을 보았는데, 핵심은 정력선용精力善 用과 자타공영自他共榮이다. 이것은 유도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경지이 다. 즉 나와 남을 초월하여 하나에로 돌아간다는 높은 경지를 가르친 것이다.(이학래, 1990)
태권도를 비롯한 유도, 검도 등의 무도는 수신修身을 전제한 실천적 행위이다. 몸으로 기술을 익히며 정신을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그 목적을 향해 정신적 수양 의 핵심이 무도정신이라 하겠다.
이진수는 무도의 차원 본 태권도라는 장에서 "1987년에는 국기원에서 편찬한 「국기 태권도교본」이 나왔다. 그러나 여기에도 태권도의 도에 관한 설명이 빠져 있다. 다만 태권도 정신의 근원적 사상으로 화랑도 정신, 지행합일의 실천적 사상, 홍익인간의 이 념, 조선의 유학사상 등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국기원편, 1987) 그러나 이 같은 사상 이 왜 태권도정신이 되어야 하는지는 전혀 논리적인 설명이 없어 교본을 읽는 이들을 어리둥절케 만들고 만다. 화랑도들이 그 옛날에 태권도를 수련했다는 것을 증명할 근 거가 어디에 있으며, 조선조의 유학자인 퇴계나 율곡 선생이 태권도에 관해 한 마디라 도 언급한 적이 있었는가?"고 힐난하며 더 나아가 "그러면서도 교본에는 태권도 정신 이란 태권도 수련을 통해 함양될 수 있는 올바른 인간행동의 바탕이며 주된 수련목표 의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념적인 면의 지도 영역으로 태권도 이념이 엄연히 들어 있으나(국기원편, 1987) 교본의 어느 구석에도 태권도 이념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고 자세히 밝히고 있다.(일본 무도 연구, 이진수 1999)
위의 두 사례는 우리에게 태권도 철학의 부재를 일깨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태권도 철학은 불가능한 것일까? 다음 인용은 우리에게 내성을 요구한다.
도하 노자와 21세기 강좌로 회자되고 있는 김용옥은 "태권도 철학이 불가능한 두 이 유에서 첫째, 태권도와 철학이라는 두 말의 결합자체가 매우 불경스럽다는 것이다. 두째, 태권도철학이라는 말을 어색하고 불경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 속에는 , 철 학이란 반드시 플라톤이 말하는 대로 인간의 정신적 영역 즉 희랍인들이 누우스nous 라고 부른 영혼의 세계, 데카르트가 봉 상스good sense라고 부른 이성의 세계, 헤겔이 가이스트geist라고 부른 정신의 세계the world of spirit 등을 지칭하는 인간의 활동영 역에 머물러야할텐데, 어떻게 태권도라는 하찮은 "몸짓"에서 고매한 철학의, 즉 정신적 논리를 찾아낼 수 있냐는 의구심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1990)
철학은 존재론과 인식론에서만 성립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동양철학은 인간과 자연 을 중심하여 행위의 당위와 그것을 향한 수양론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수신을 통한 인간의 도道 즉 이理에 해당하는 인간의 본성本性(인의예지)으로 귀의하는 것을 최고 의 선善으로 여기고 있다. 무도에서 수신적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 귀의하자는 경지境地 라고 볼 수 있고, 그 높은 경지에 이름이 달도達道 내지 득도得道의 정신영역이 아닐까. 태권도 철학의 정립은 우선 태권도적 기술체계의 본질에서 형이상,하적 해의를 도 출해야 할 것이다.
근자에 출범한 국기원 연구소가 순수한 민초의 초심에서 점진적, 그러나 가시적 성과 로 태권도 본산의 긍지를 되살릴 수 있는 페러다임이 되는 학문적 정진을 기대 해 본다.
이경명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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