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군'태권도성지 선포'논쟁
최근 충북 진천군(군수 김경회)이 세계태권도문화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화랑무예 태권도성지 선포식을 하자,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진천군은 지난달 1일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서 외국인 선수단을 포함해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랑무예 태권도성지를 선포하고, 진천이 태권도의 본향(本鄕)이자 진정한 성지임을 알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와 관련, 태권도계는 진천군의 입장을 이해하고 옹호하려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으로 양분돼 서로 어긋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진천군은 99년 태권도공원 유치 과정에서 김유신 장군과 화랑정신을 모토로 태권도 발원지를 주장해 논쟁을 빚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심화되기는 처음이다.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순천 사범은 진천군의 태권도 성지 선포를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정 사범은 "충청대학과 진천군은 꾸준히 태권도 성지 유치를 위해 노력해 오더니 급기야 스스로 태권도 성지를 선포했다"며 "진천군은 화랑무예를 근거로 태권도 역사를 왜곡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태권도계의 한 중진 인사는 "진천군의 태권도 성지 선포는 역사 날조"라며 정 사범과 생각을 같이 했다.
김영선씨(연세대 태권도 최고과정 대표 강사)는 진천군의 태권도 성지 선포를 사실성과 상징성으로 구분해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 고증에 의한 사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태권도 성지 선포는 말도 안되지만, 화랑도가 무인집단이었다는 점과 민족 내재적 측면의 상징성에서 보면 일부는 받아 들일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상징성도 제한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상징성을 사실인양 부풀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진천군의 태권도 성지 선포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이번 계기를 통해 태권도의 역사 인식을 재고(再考)해 볼 필요가 있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류병관 교수(용인대 태권도학과)는 진천군의 태권도 성지 선포 논란은 현실적인 역사 인식에 바탕을 둔 태권도 역사가 없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류 교수는 "진천군이 (어떤 필요성에 의해) 태권도 성지를 선포한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태권도의 정체성(正體性) 확립을 위해선 "태권도의 문화적 계보를 찾아 역사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교수(경문대 생활체육과)는 진천군의 태권도 성지 선포를 잘했다 잘못했다 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면서 "태권도 성지 선포가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했다는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진천군이) 태권도 역사를 창조하는 하나의 노력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태권도 성지 선포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진천군 측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진천군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엔 강하게 반발했다. 김경회 진천군수는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날조하는 것은 나 자신부터 용납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우리는 잠자고 있던 자원(현재의 태권도와 관련이 있는)을 발굴, 사실에 근접해 가면서 태권도 정신문화를 가꿔가고 있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그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形象化)해 외국인들에게 우리 것은 이렇다라고 보여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태권도 성지 선포도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운철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태권도 관련 서적과 교본을 보면 화랑에서 태권도정신을 찾고 있다"며 "진천군은 화랑의 대표격인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화랑정신=태권도정신에 기반을 둬 태권도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뜬구름을 잡듯이 허무맹랑하게 태권도성지의 선포식을 한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태권도 역사와 정신문화 창출을 등한시하는 태권도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노상일 진천군태권도협회 부회장은 "김유신 장군보다 화랑정신과 태권도정신에 더 적합한 인물이 있느냐"며 "태권도 역사를 만들어 놓지도 못하면서 질책이나 해서야 되겠느냐"고 분개했다. 한편 지난 99년 김유신과 화랑정신이 현대 태권도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진천군의 움직임에 학술적 기반을 부여한 오노균 교수(충청대학 스포츠외교과)는 지난달 30일 "학자적 양심을 걸고 (나의 연구에) 책임을 진다"며 태권도 역사의 재정립을 위해 화랑무예와 관련된 새로운 태권도사 서술 체계를 세워야 하고, 내가 주장한 견해들이 검토돼 재평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천군의 태권도성지 선포를 둘러싸고 태권도 제도권과 교수, 그리고 해외 한인 사범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 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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