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페어플레이를 다시 한번
페어플레이를 다시한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1학년쯤 돼 보일까.
어린 아들은 서있고, 서둘러 먼저 길을 건넌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빨리 건너와." "빨간 불인데." "빨리 오지 못해.
이 ××야."*** 태권도계 판정 조작 파문 아이의 얼굴은 울상이 된다.
엄마의 호통소리에 불안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길을 건넌다.
이 아이는 지금 엄마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니, 잘못된 사회를 배우고 있다.
규칙은 필요에 따라 깰 수도 있는 것이라든가, 힘은 규칙에 우선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다.
국내 태권도계의 주요 인사가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시드니올림픽 때 태권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기 위해 심판 배정과 판정에 조작이 있었다"고 말한 내용을 최근 미국의 주요 신문들이 대서특필했다.
인터뷰 내용 중에는 강한 선수를 결승전에 오르기 전에 미리 잘라내는 가지치기라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사실이 와전됐으며, 태권도를 음해하려는 세력들의 공작"이라는 해명도 있고, 미국 신문들이 크게 보도했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국내에서 너무나 조용했다는 사실이다.
이 인터뷰는 지난 4월호에 게재됐다.
내용을 몰랐거나 사실 확인을 해본 후에 괜찮다고 판단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용을 알면서도 뭐, 다 그런 거지라는 생각에서 가만히 있었다면 그게 더 문제다.
창피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런 내용의 인터뷰가 보도됐는지 몰랐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알았더라도 그런 일이 태권도에만 있는 일인가하면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까 반성도 해본다.
어느새 불감증(不感症)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본다.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올림픽 정신 등은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정신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것들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내든 해외든 스포츠계는 지금 페어플레이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승자(勝者)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깨끗한 패배를 선택한 감독은 경질되고, 더러운 승리를 쟁취한 감독은 보너스를 받는다.
단장들과 감독들 입에서는 "역시 이기고 봐야돼"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말그대로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다.
한두 번 당하다보면 체험적으로 깨끗한 승리는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승자의 법칙 과감히 바꾸자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당연히 깨끗한 승리다.
실력이 좋은 선수.팀이 이겨야 하는 게 스포츠다.
실력 이외의 변수가 경기 결과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규칙이요, 심판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가 너무나 많다.
음주운전자.교통신호 위반자들이 무더기로, 그것도 수시로 사면(赦免)되는 모습을 보면서 교통신호를 지키려고 애썼던 사람들은 졸지에 건널목 신호를 지키려다 엄마에게 야단맞은 아이가 되고 만다.
가치의 혼란은 곧 체념으로 이어진다.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낸 온갖 말들은 국민을 분노케 만들고, 체념하게 만든다.
정치판이야말로 승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이기고 보자는 생각에서 온갖 탈법과 편법이 활개친다.
그러나 정치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포기하는 순간 희망은 사라진다.
페어플레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한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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