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최총재가 북한에 태권도를 전파한 목적은?


이제 고인(故人)된 최홍희 총재가 평양방문시범단을 구성하려고 계획한 것은 1979년이다.

전 세계를 혼자 순회면서 태권도를 보급하고 가르쳐 온 그가 "태권도의 세계화"에 한계를 느낀 것은 우리 민족 사범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북한에 친형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과 34년만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는 1980년 북경을 경유, 북한에서 보내 준 특별기 편으로 평양을 갔으니 북한에서도 그를 위해 어느 정도 준비 했는지 짐작이 간다.

김일성주석과의 만남에서 그는 태권도를 북한에 보급할 것을 제의한다. 김일성주석은 ITF시범 관람 중, 중근틀, 삼일틀, 광개틀, 등의 민족정신을 발견하고 더욱 ITF와 최홍희 총재를 신임하게 되면서 태권도전당을 짖는 동시에 북한 전역에 생활체육의 일환으로 "건강 태권도" 자리잡기를 지시한다.

최총재는 34년 만에 북한에 생존해 계신 형님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군의 창설자이며 6.25동란 당시 김일성주석 가슴에 총뿌리를 겨눈 자신을 환대하는 것과, 북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민족의 반역자 최홍희 장군 가족들을 34년 동안 살려 둔 사실이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북한정부의 환대를 받고, 최홍희 총재는 이듬해(1981년) 15명의 한국인, 외국인을 포함한 ITF시범단을 구성하여 북한에 최초의 ITF태권도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ITF시범단 : 앞줄 좌로부터 폴도네리, 림원섭, 이석희, 최홍희총재, 이기하, 박정태, 최중화, 김석준, 뒷줄 좌로부터 부루싸, 디미트리, 한삼수, 마이클코맥, 칼 니코라티, 찰스 세레프)


평양 방문 시범단구성과 갈등

1980년대 해외에 활약하던 ITF 한국 사범들과 외국인들로 시범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최홍희 총재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한국의 시대상황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80년대 봄을 예고하는, 정치적으로 5공화국의 주체가 되는 군부가 권력을 잡고 있었으며 북한과 일촉즉발의 첨예한 길을 가고 있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포들 역시 자연히 북한이란 나라를 적대시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여전히 안기부 주재원들의 눈치와 감시를 받은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한국 사범들과 평양行을 계획한 최홍희 총재의 어려움과 갈등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총재의 제자 이기도 한 박종수 관장은 당시 평양 시범단에 참가하지 않은 경위로 인해 최총재와 오랫동안 결별하기도 했다.


(김일성주석 동상 앞에선 ITF시범단. 앞줄 가운데 최총재)


최총재가 북한에 태권도를 전파한 목적은?

최총재는 1972년 박정희 정권과 마찰로 캐나다로 망명 한 후 ITF재건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 한 사람이다. 1973년 해외 공관원 출신인 김운용 총재는 WTF를 창설한 후 안기부와 손을 잡고 해외로 나간 ITF 초창기 사범들과 최총재 휘하에 있던 사범들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태권도 사범들을 핍박하고 마치 안기부 직원의 일부처럼 이용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최총재 수하의 한국제자들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ITF와 최총재 곁을 떠난 것이다. 최총재에게 있어 북한은 ITF재건을 위한 마지막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주석과 환담 중에 김일성 주석이 단련된 최총재의 정권을 만져 보는 장면)

망명 후 한국정부의 핍박으로 8년 동안 이렇다 할 해외 보급에 큰 실적 없었던 최총재에게 북한을 통해 태권도를 동구권을 비롯하여 세계화를 계획 했던 것이다. ITF가 북한에 태권도 보급을 기회로 구 소련권과 동구권에 전부를 산하국으로 두게 되었으면 많은 회원들을 갖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ITF의 민족정신을 높이 인정했으며 최홍희 총재 또한 망명객 신분이지만 한국군을 창설하고 초대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낸 한국관료 출신으로서, 북한으로 귀의는 환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태권도를 통한 해외진출 역시 북한으로서는 호재였을 것이다.

최총재가 친북 인사로 분류 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응로 화백과 윤이상 선생이 북으로 귀의해서친북 인사로 낙인 되었듯이 우리 시대의 이데올르기가 만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에서도 풀지 못한 친북 인사들의 분류를 두고 항간에는 시대착오 적인 말로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최홍희 총재를 지척(咫尺)에서 보고 느낀 것은, 그는 태권도를 위해서 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 이란 것이다. 평생을 태권도를 위해 살면서 떠난 그의 업적은 재 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ITF태권도가 추구하는 "사상과 종교, 인종"을 떠나서 최총재를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일까?



댓글 18

정근표 2002.08.14
A Taekwondo history with class 1954년 4월 11일에 있었던 “명칭 제정위원회”의 활동은 한국의 문화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서 이날은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가 발생한 날이다. 이는 그 후 반세기 이내에 한국의 고유한 문화 양식으로는 최초로 완벽한 세계화를 이룰 대상에 그 명칭을 부여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면적으로는 당시까지도 다양하게 불리던 한국의 전통무술들의 명칭을 통일, 단일화 한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명칭의 통일이라는 의미에 머무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무술 일반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선행된 것이었으며, 한국의 전통무술을 무엇으로 개념화 할 것이며, 이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 인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의미했다. 태권도의 전통(traditional) 혹은 정통(legitimate)무술로서의 성격을 부인하거나 또는 상대화하려는 논의들은 이 같이 기 성립된 사회적 합의를 망각한 것이거나 부인하려는 견해들로서 그 같은 명칭 성립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에 관한 인식이 매우 빈약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본고에서는 태권도라는 한국의 전통무술의 명칭 제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최근의 태권도 역사 관련 논의와 관련하여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태권도라는 명칭의 제정은 50년대 이전에 난립하던 여러 전통 무술의 명칭을 통일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명칭의 통일이 아닌 전통 무술의 개념 정립, 나아가 무술 일반에 대한 개념의 정립이 선행된 작업이었다. 즉, 기술(Technique)적 의미가 아닌 인류의 행위양식이 가지는 보편성이라는 역사주의적 의미에 바탕 한 무술 개념을 깔고 출발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인류 보편적 적수공권 이라는 개념에 기반 하지 않고는 여러 성격이 상이한 무술 단체들을 단일한 명칭 하에 묶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술의 기술이 가지는 인류보편성이라는 성격에 착안한 것으로 세계의 각종 무술들이 그 명칭의 차이에 불구하고 실제 기술에서는 개인별 다양성이나 수련 체계의 상이성 등의 요인을 빼고는 실제상 어떤 유의미한 기술적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시각에 기반 한 것이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최초로 제안한 최홍희 장군은 이를 불(Fire)이 그 실체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다른 명칭으로 즉, 영어에서는 “파이어”로 러시아에서는 “아궁”으로 중국에서는 “훠”로 불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무술 개념 일반을 이처럼 인류 보편성의 차원에서 접근했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태권도라는 명칭 자체도 발과 손을 의미하는 한자음인 태(跆)와 권(拳)으로 조어를 하여 태권도가 어떤 특정한 동작들을 한정적으로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이 손 두개, 발 두개로 수행하는 모든 무술 동작을 망라하는 보통 명사적으로 쓰일 것을 의도했으며 이는 위에서 보듯 최홍희 장군의 의도적인 개념 접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개념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재래의 태껸 기술이나 가라데, 또는 중국 무술에 기반 한 여러 무술 단체들이 하나의 명칭 하에 통합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최초로 제안한 최홍희 장군은 자신이 어려서 한학의 대가인 한일동 선생에게 직접 태껸을 사사 받고 연마한 태껸의 발기술과 일본 유학중 배운 가라데의 손기술을 종합하여 이처럼 자신의 태권도 기술을 완성했다고 하여 그 같은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진보적이며 선각자적인 무술 기술의 인류 보편성에 대한 자각의 등장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초창기에 태권도계의 핵심 계파였던 무덕관이라는 무술 단체의 창시자인 황기의 경우도 어린시절 배운 태껸의 기술이 모체가 되었고 나중에 만주서 익힌 다른 무술 의 영향 하에 그 수련 체계를 완성했다 하여 전술한 최 홍희 장군과 동일한 인식에 기반 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무술 일반을 바라보는 이 같은 개념적 진보성은 이들 초창기 인사들의 만주, 일본 등에 걸친 국제적인 활동이라는 개인적 이력과 더불어 태권도와 그 명칭의 발음상의 유사성을 갖고, 또한 그것의 일종의 한자어로서 만들어 졌던 대상물인, 또한 역사 계승의식을 그곳에 놓아둔 대상물인 전통 무술 태껸이, 최근 정근표가 논한바와 같이, 각종 사서에서 그 명칭의 용례를 볼 때 어떤 특정한 기술 체계를 가진 일정한 패턴의 고정화된 무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상은 비무장 전투 기술 즉, 인류 보편적 적수공권 일반을 지칭하는 명칭이라는 점과도 큰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여러 사서들에 등장하는 태껸, 탁견, 수박등의 무술 명칭은 어떤 단일한 특징을 가진 특정한 무술의 명칭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예를 들어 공수도 시범을 본 이승만 대통령이 “태껸이구먼” 하고 일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태껸의 보통 명사적 용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시범을 보인 기술이 최홍희의 주장과 같이 태껸의 기술이 가라데 기술과 혼합된 형태였다 해도 그것이 이승만의 기억 속에 있는 태껸의 기술과 일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당시 시범을 보인 이들이 최장군의 직계 제자들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이들 인점과 설혹 그렇다 해도 무술기술의 개인별, 지역적, 혹은 계파별 다양성을 고려할 때 위 양자가 Identical한 기술이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같은 사서들에 등장하는 태껸이 어떤 특정한 동작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면 분명 어느 정도 계파 혹은 유명한 고수를 중심한 지역적 분파를 기준한 기술 계통의 분리를 지칭하는 예를 들어 “최충헌류 태껸”, “이의민파 수박희”등의 용례가 보여야 하지만 그 같은 세부적 기술 차이에 기준한 명칭의 다양성이 전혀 없이 그냥 “태껸”, 또는 “수박희”라고 칭해지는 것은 이것이 고유 명사가 아닌 “비무장 전투 기술”일반을 칭하는 보통 명사였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태껸이 현재처럼 일정한 체계적 수련 과정을 가지고 않았고 “관”과 유사한 행정조직등도 없이 마치 과거의 시골 장터 씨름판 기술이나 제기 차기처럼 전혀 비체계적으로만 전수, 수련 되던 것임을 볼 때 이것이 어떤 특정한 동작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라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최근 송덕기옹의 기술에 바탕 하여 태껸이 부흥 재생되어 그 직계제자인 인간 문화재 정경화에 의해 맥이 이어지는 것은 태껸의 모든 기술을 망라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해도 외국 무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토종 태껸기술의 전수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아무튼 이 같은 태껸의 명칭이 지니는 보통 명사적 성격과 최홍희나 황기같은 초기인사들의 여러 무술을 망라한 개인적 이력에 비춰 볼때 “태권도”의 명칭이 인간의 행위양식의 보편성에 기반한 보통명사로서 “태껸의 순 한글 명칭의 한자어로서 한국의 모든 전통 무술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서 개념 정립이 되고 이어 동 명칭 제정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그 역사적 대장정을 출발한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그 명칭의 제정은 단순한 명칭의 제정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무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정립이 동시에 행해진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은 구체적 기술 중심의 역사관이 아닌 역사계승의식에 중심을 둔 사관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명칭제정위원회는 사회 각 분야의 원로들이 참여한 것이었다. 즉, 이들은 한국사회의 대표성을 보지하고 있었던 것이며 태권도라는 명칭은 이를 전통 무술의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우선 태권도에 정통성(Legitimacy)을 부여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즉 태권도는 한국의 정통무술의 적자로서 태어난 셈인 것이다. 동시에 태껸의 명칭과 동의로서 즉, 한자와 순 우리말의 관계로 태어남으로써 전통성(Traditionality)을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건 이후에 어떠한 전통무술임을 주장하는 맨손무술도 그 명칭은 태권도로 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약 태권도의 명칭이나 행정 조직 하에 있지 않다 해도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전통무술을 표방하려 할 경우 “태권도”라는 개념의 하위 개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만약 태권도의 역사적 정통성(Legitimacy)이나 전통성을 부정하며 그 자신의 독자적 정통성이나 전통성을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면 이는 아무런 사회적 합의에 바탕하지 않은 독단적 주장으로 기 성립한 사회적 합의를 무시 한 것이거나 그 의의를 전혀 이해 못하는 사이비임을 면 할수 없는 것이다. 통상 정통성(Legitimacy)이라 할 경우 태생적 정당성, 즉 성립이나 출발에 있어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업적에 의한 정당성(Legitimacy by doing)이 필요한바, 과거 박정희 정권이 경제 부흥의 성공에 의한 “업적에 의한 정당성”은 갖추고 있었음에도 쿠데타에 의한 집권이라는 절차적 정당성 즉, 태생적 정당성을 결여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태권도에 적용할 경우 사회적 대표성을 갖춘 명칭제정위원회에 의해 사회적 합의를 얻고 성립됐다는 태생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을뿐더러, 동시에 국내적으로 국방 및 국민 체육과 교육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세계화와 경기화에 크게 성공하여 올림픽 가입에 까지 성공하였고 한국 고유의 정신과 신념 체계라는 한국의 고유의 고급 정신문화를 세계에 보급하여 부수적으로 한국의 문화 외교에 크게 기여, 국익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업적에 의한 정당성이라는 요건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태권도는 분명 정통성(Legitimacy)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전통성(Traditionality)라는 측면서 볼 때도 기술적으로 최홍희나 황기등 여러 초창기인사들이 전통 무술(Traditional martial art)인 태껸을 기술 체계에 포함 시켰고 지난 6, 70년대 이후에는 송덕기류의 태껸기술을 다수의 태권도인들이 배워 현대 태권도기술이나 동작의 명칭에 적용하여 온 점과, 무엇보다 명칭 제정 위원회에서 태껸에 계승의식을 두고 그 와 발음이 유사하고 인류 보편적 비무장 전투기술이라는 그 기술 특징에 걸 맞는 태권도라는 한자어를 태껸에 대한 한자어 정도의 동의어로서 사회적 승인을 얻었다는 점에서 전통성의 요건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명칭제정위원회에 의한 태권도라는 명칭의 승인은 그 태생적 정통성과 전통성을 마련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생적 정당성도, 절차적 정당성도 그리고 전통성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단체에서 독점적인 정통성과 전통성을 주장하는 것의 불합리성과 비 논리성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태권도라는 명칭의 성립과 사회적 승인의 획득은 역사계승의식의 중요성을 자각하여 이를 명칭에 반영했다는 의의가 있다. 사실 전술한 바와 같은 인간 행위의 인류 보편성이라는 관점서 볼 때 무술 기술의 명칭에 따른 구별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한국인 태권도 사범인 이준구에게 태권도기술과 스텝을 배운 이소룡이 영화속에서 태권도 발차기를 구사하여 일반에 쿵푸기술로 알려진 것이나 지난 86년 아시안게임 태권도경기에 다수의 가라데 유단자가 태권도 단증을 급조하여 태권도 경기에 참여하여 태권도 기술(?)을 보인것, 최근 중국에서 다수의 우슈인들이 태권도로 전향, 태권도 경기에서 쿵푸성(?) 태권도를 실현하는 경우 등에서 보듯, 무술은 그 명칭에 따른 구별 만큼이나 뚜렷한 기술의 유의미한 차이는 볼 수 없는 것이며 실은 소속된 행정조직이나 전통의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볼수 있는 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결국 무술의 역사적 전통성을 가르는 기준으로서 중요한 것은 역사 계승의식일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지 “우리는 태껸에 역사 계승의식을 둔다”하는 식의 선언적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그 명칭을 동일하게, 즉 태껸이란 명칭과 발음이 유사한 한자 조어이자 그 동의어로서 태권도라 명명하여 그 역사 계승을 분명히 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즉, 태권도라는 명칭의 성립과 사회적 승인의 획득은 태껸을 계승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역사 계승의식의 선포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과거 고려가 그 행정조직에 있어서나 다수의 인적 연속성의 면에서도 신라와 큰 관련이 있었음에도 고구려에 역사 계승의식을 두어 고려라 국명을 정한바 있었고 조선의 경우도 수 천년의 시차가 있는 고조선을 계승하기 위해 그 국명을 조선이라 한 예도 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일제에 의한 역사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헌법에 학문이나 관료층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적인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총독부가 아닌 상해 임정에서 국가의 법통이 계승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 바도 있다. 실제로 일시적이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연속성이나, 왕의 칙령의 변경이나-현대에 들어서는-법률의 개정에 의해 단 하루만에도 뒤 바뀔 수 있는 제도의 연속성에 의해 역사적 전통성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일수 있으며, 인간의 의식이 실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 요소임을 감안 하면 역사계승의식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태권도도 그 명칭 등장 초창기에 바로 이 같은 작업을 한 것이며, 개인별로 다양성을 가질 뿐 아니라 경기 규칙이 바뀌면 단기간 내에 변화 가능한 즉, 가변적 요소인 기술보다는 이 같은 역사계승의식의 뚜렷한 표명이 역사적 전통성의 결정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태껸에 역사 계승의식을 둠을 만천하에 공표한 태권도라는 명칭의 제정은 이 같은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태권도라는 명칭의 등장이 전제했던 “무술 기술의 인류 보편성”이라는 사고는 과학주의적, 합리주의적 역사관을 전제했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사실 후에 -최홍희 본인의 경기화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권도가 신비주의적 세계에서 탈피하여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된 무술로서 각 무술가들의 기량을 현실적으로 겨루어 보는 장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스포츠화(또는 경기화)가 진행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과학주의, 합리주의적 역사관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무술 기술의 개인적 다양성이나 가변성, 상호 영향등을 고려하면, 그 기술의 수대에 걸친, 또는 수백, 수천년에 걸친 순수한 전승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볼수 있다. 즉, 기술적으로 볼 때 명칭에 구별에 의한 독특한 기술의 누대에 걸친 전승의 신화보다는 개인적 다양성이라는 구별과 특징화가 보다 유의미한바, 이는 개인의 기술의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변화가 가능하고, 명칭의 구별에 기반한 어떤 무술의 순수 혈통적 기술이란 사실 매우 유아적이고 유치한 단계의 사고일 수 있다. 그러나 태권도라는 명칭의 등장은 이 같은 전승의 신화를 과감히 뛰어 넘어 인류 보편적 적수공권으로 개념화한 합리주의와 과학주의에 기반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기실 수정주의측의 비판과는 반대로 이 같은 인식은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전혀 수구적이거나 전통에 얽매이는 반동적 자세가 아니었다. 다만 기술적으로 볼 때 태권도는 태껸을 비롯한 한국 무술의 전반적 성향인 발기술 위주의 전통은 계승한 점은 사실이며 이는 인류의 행위양식의 보편성을 전제할 경우에도 일국 무술이 가지는 또는 어떤 단일 명칭의 무술이 가지는 전체적인 기술의 지향성이나 기본적인 공통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수 있으며, 태껸을 수련하여 그 기술 체계에 반영했다는 초기인사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에는 많은 개인적, 지역적, 시간적 차이에 기인한 예외들이 있다. 이는 보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본다. 중요한 것은 태권도라는 명칭의 등장은 기술의 누대에 걸친 전승의 신화를 뛰어넘은 합리주의적, 과학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에 의한 무술 기술의 인류 보편성이라는 사고는 현대 태권도 과학화의 선구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전술했다시피 그 같은 열린 사고가 없었다면 다양한 전통의 서로 다른 무술 단체들이 태권도라는 명칭하에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수정주의는 태권도를 태껸과 인적, 기술적 연속성을 가진 전통무술로 보는 시각에 수정에 가하려는 일군의 학자집단으로 소수설인바, 그 주장점을 요약하면, 태권도는 태껸과 인적, 기술적 연속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 같은 주장을 하는 초기 인사들의 언명은 사실로 보기 어려운 역사왜곡이고, 가라데 기술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태권도는 60, 70년대 경기화를 통해 태껸기술의 부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태권도라는 명칭 제정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볼수 있다. 먼저 이들은 전술한 바와 같은 태권도라는 명칭 성립의 전통성 및 정통성확립의 역사적 의의를 몰각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이를 몰각함은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홍희와의 개인적인 불화와 더불어 경기화라는 노선설정에 대한 이견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최홍희와 갈라서게 된 이종우등 경기화 추진 1세대원로들은 태껸이란 명칭을 제정하고 이에 선각자적 인식과 전술한바와 같은 의의를 부여한 최홍희의 업적을 가능한한 무효화 또는 평가절하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이들이 신비주의에서 과감히 탈피, 경기화를 추진하여 오늘날과 같이 태권도를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점과 김운용이라는 희대의 인재를 영입하여 세계화에 성공한 혜안을 가질 수 있었던 점에서 높게 평가되어야 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들이 그 같은 이견을 좁히는데 실패하고 최홍희와 결별한 후에 그의 그 같은 역사분야의 업적을 무효화하기 위해 왜곡된 수정주의를 양진방과 같은 젊은 연구자를 통해 유포시킨 것은 크게 비판 받아 마땅하다. 수정주의의 최초 주장자인 양진방이 이종우등 반 최홍희계열 원로들의 후원으로 국기원의 간부를 맡았다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 대학교수로 까지 진출했음은 이미 장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이것이 정통주의의 지나친 정치색과 역사왜곡을 크게 비판 했던 수정주의가 그 실체는 더욱 정치적이었고 더 많은 TEXT왜곡을 하게 되는 배경이다. 최홍희이래 그 뒤를 이어 나현성, 정찬모등 걸출한 학자들이 정립한 정통주의적 태권도 사관들은 아직까지도 학계와 일반의 정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정치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지난 86년 양진방이라는 젊은 학자의 석사논문 한편 으로 그리고 뒤이어 지식인층에서는 경원시되는 김용옥이라는 학자의 노력도, 공도 엿보이지 않는 단 1주일 만에 쓴 성의 없는 글 한편에 전통주의가 크게 흔들리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경희대학교의 최영렬 교수등과 같은 이들은 이를 상당히 정교하게 비판 한바 있었고 그 후 주로 그의 제자를 중심으로 한 젊은 신진연구자들에 의해 전통주의가 점차 정교화되고 오고 있으며 현실적 학문적 헤게모니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수정주의에 완승을 거둔바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태권도인 이창후가 바톤을 이어받아 동 작업을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태권도계 내에서 조차도 적지 않은 이들이 수정주의를 옹호해야 개명된 태권도인으로 보인다는 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이에 경도되어 있는 상황이고 김용옥이라는 개인이 가지는 유명세로 인해 그의 글도 일반에 꾸준히 읽히고 있어 전통주의 옹호 연구자들의 더욱 큰 노력이 요망되는 상황이다. 태권도의 명칭제정의 역사적 의의는 전술한 바와 같이 단순히 명칭의 통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무술이 무엇인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의미했고 그후 태권도가 반만년 전통무술의 역사를 계승한 적자로서 국내외에 소개되고 또 그렇게 세계화 될 수 있었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그 같은 역사적 의의를 몰각한 것이거나 반만년에 걸친 한국 무술의 전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또한 정통성이란 측면서도 태권도는 이를 계기로 태생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며 그 후 세계화에 성공하여 업적에 의한 정당성이란 측면서도 정통성을 확립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권도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도 이 같은 명칭 제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 후 태권도의 세계화와 국익에의 기여라는 역사적 사실 조차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서 볼 때 태권도라는 명칭제정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본 글을 저자의 허락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논문등에 인용없이 무단 사용하면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 될수 있습니다.
이현수 2002.08.14
태권도라는 명칭의 제정이 역사적인 결단의 소산이라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라데의 기술체계들은 갑자기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수벽이 되어버리는 것입니까? 역사적인 사실과 평가의 문제를 같게 취급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때 전통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게됩니다. 그 이전에는 그저 학설 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매모호한 과학성 등등의 개념을 도용하여 무술의 다양성이 공존함을 애써 무시하려고하지 마십시오. 인간이 똑같이 팔2개 다리2개를 가지고있지만 지역색이나 전수쳬게의 상이함에 따라서 다양한 형식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모든 무술을 통합해서 지칭하는 것이 태권도라고 하는 자기만의 언어해석은 언어도단입니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정확한 사실인식에 있는 것이지 아전인수격인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십수년간을 태권도는 타 무술과는 다른 우리만의 훌륭한 전통 무술임을 사범으 로부터 배워온 우리들에게 또 다시 인류보편의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 로 설득하려한다면 도무지 납득할수가 없을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역사관이나 평가이전에 정확한 사실입니다. 설령 그 사실이 가슴아픈 진실이 될 지언정 또다시 다른 젊은이들에게 아픔을 주어서는 안될것이며 그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태권도는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민족사관과도 구분 해야할 것입니다. 그저 우리의 무술이며 우리의 몸짓일 뿐입니다.
쯧쯧...현수씨.. 2002.08.15
읽어 보면 역사적 사실이 주류이고 평가는 별로 없는데....상처를 주는이들은 당신같은 뭣도 모르고 막 떠드는 사람야뇨? 아니면 알고도 떠드나? 다읽고도 그런 생각이라면 글쎄 잘모르겠군요...이해력의 차이인지 생각의 차이인지...
현수씨 2002.08.15
현수씨 당신이 보기엔 아래글이 평가요, 사실 서술이요? "전통성(Traditionality)라는 측면서 볼 때도 기술적으로 최홍희나 황기등 여러 초창기인사들이 전통 무술(Traditional martial art)인 태껸을 기술 체계에 포함 시켰고 지난 6, 70년대 이후에는 송덕기류의 태껸기술을 다수의 태권도인들이 배워 현대 태권도기술이나 동작의 명칭에 적용하여 온 점과, 무엇보다 명칭 제정 위원회에서 태껸에 계승의식을 두고 그 와 발음이 유사하고 인류 보편적 비무장 전투기술이라는 그 기술 특징에 걸 맞는 태권도라는 한자어를 태껸에 대한 한자어 정도의 동의어로서 사회적 승인을 얻었다는 점에서 전통성의 요건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있소? 평가는 아니잖소? 태껸 기본 동작 결여? 그건 80년대에 정립한거 잖소? 왜 이승만이 "태껸이구먼"했겠소? 좀 편견을 버리고 혹은 이상한 목적의식을 버리고, 무엇보다 합리적 사고 능력좀 갖추길 바랍니다. 괜히 이상한 집단이나 다른 이견을 단순히 수용해 단세포적으로 단정하지 말고 종합적, 중립적 판단을 해보쇼... 그래도 그렇다면 뭐...그땐 신념이 문제지 당신이 좋아하는 사실의 문제는 아닌게 되죠..기존의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 하려면 반증을 정확히 해 보세요. 후에 만들어진 또는 정립된것으로 전의 "사실"을 부정하는 오류는 바보 아니면 사기꾼 둘중 하나지요...
꼴통들아 2002.08.15
알다시피 태견은 체계가 없었다. 기본동작등도 사실 송옹의 개인적 기억에 의존해 80년대에 정립된것이고 그나마도 일부 사이비 집단에 의해 매도, 왜곡됐다. 그런데 그 80년대의 소위 태껸기본동작이 50년대에 정립이 시작된 태권도 기술체계에 없다고 태껸 배우고 후에 가라데 수련첵계와 손기술 도입하였다는 최홍희나 황기말이 뻥이라는게 말이요, 막걸리요? 송옹의 태껸만 고유것이고 최나 황, 지한재,한차교,등등 인사말은 다 뻥이고 사기라... 근본주의는 좋은게 아닙니다. 그런 악의적 비난은 학문이 아니라 자기네 집단이나 개인의 명예등만 생각하는 사기입니다. 사기... 무작정 깊은 성찰과 연구도 없이 기술이라는 너무도 덧없고 가변적인 요인만으로(이것으로도 사실 왜곡은 아님이 증명이 되지만) 당시 시대상황하의 역사계승의식이라는 역사속에 불변의 요소인 인간의 "의식"과 명칭에 의한 그 확립과 그 이후의 전통성에 기반했기에 잇을수 있었던 다양한 업적을 부정하려는 것은 정신병자나 일본 혹은 중국의 비양심적 사이비 학자아니면 할짓이 아니라 보여지는데... 이곳 싸이트나 여러 문외한에 가까운 이들이 왠지 배운것같아 보이리란 기대하에 학벌 좋은 정신병자들 따라 하는데...앵무새짓 그만 해요... 정신차리고 사실을 봅시다. 태권도가 왜 태수도가 아니고 태껸의 한자어인 태권도인지... 한국사회대표가 모인 명칭제정위원회에 의한 전통무술은 태권도로 명명하여 발전시키자는 사회적 합의가 뭘 의미하는지... 꼴통들아 정신차려! 잘못하면 좃도 아닌 역사문제로 인해 태권도 망하는 수가 있어! 월드컵때 못봤어? 1905년 한해 대일본군 교전횟수가 1500회 이상인 민족주의의 나라에서 가라데의 계승무술이 되면 국기자리 지킬것 같아? 그리고 태권도계아닌 사이비계통서 온놈들...니들 니네 집단만 생각치 말고 국익과 역사적 진실을 바로보는 양심을 가져... 니네 무술 사랑하면 니네 무술도 빨리 제도화해서 태권도처럼 발전 시켜서 열린 곳으로 끄집어낼 궁리나 해... 니네 스승들 태권도 시합서 꼴찌하는 선수와 뿥여 놔도 맞아 죽을 사기꾼 들이야... 실제로 뿥어 보는것..그것이 초기 태권도 경기의 과학주의 정신이다. 순 뻥으로...전승의 신화로 하루만에도 타인의 영햐으로 바뀔 개인기술 가지고 답답하게 신비주의에 함장되지 말고... 이부분은 반최홍희계열 태권도 원로들의 엄청난 업적이지... 아무튼 이놈의 나라는 미친놈들이 아니 양심없는 개새끼들이 너무많아...씹할...현수씨 당신 보고 그런거 아뇨... 그래도 당신 정도면 양반이지..그렇게 빈약하고 말은 않되도 논리갖춰 이야기하려 노력도 하고...그저 단정말고 생각을 좀 해요...생각을..청명한 정신으로...
정근표 누고? 2002.08.17
읽어보니 그렇다.그동안 몽매해서 인터넷마다 역사욕했는데 쪽팔리다. 김용옥이한테 뽕가서 그만,,,
태권도인 2002.08.18
그분이 태권도를 보급했다는걸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그분은 우리입장에서 보면 매국노 입니다, 북한에 간겄도 자기 이익을 위해 아니 anti- 박 정권을 위해 간거고 또 북한은 그를 마음껏 이용한겄뿐입니다. 그의 방해가 없었드라면 2000년이 아닌 더 일찍히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됬을거고.살아 돌아 왔드래도 마땅히 반공법에 의해 사형에 처해야 했을겁니다.
태권도사랑 2002.08.18
그분이 태권도를 보급했다는걸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그분은 우리입장에서 보면 매국노 입니다, 북한에 간겄도 자기 이익을 위해 아니 anti- 박 정권을 위해 간거죠, 다시말씀드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불화음으로 망명아닌 망명으로 캐나다에 갔다가 북한으로 간거고, 또 북한 측에서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구이자 별자리였다는걸 알고 그를 마음껏 이용한겄뿐입니다. 또 그는 이용을 당했구요. 한가지 근년의 예로, 만약 그의 방해가 없었드라면 2000년이 아닌 더 일찍히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됬을거라는걸 모르시진 않겠지요? 그러니 매국노 가 아니고 뭤니까? 설사 그가 살아 돌아 왔드래도 마땅히 반공법에 의해 사형에 처해야 했을겁니다. 그가 죽은후 이제와서 그의 추종자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진정으로 태권도를 위한다면 제발 그만들 하시고 요즈음 썩어가고 있는 태권도나 잘 보살펴 태권도가 정말 대한민국의 국기로 세계에 영원히 남게끔 힘을 합쳐 주셨으면 하여 할말은 많지만 오늘은 간단히 이 글을 올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태권도를 사랑하는 이 드림
정순천 2002.08.21
최홍희총재 개인의 관한 성토는 얼마던지 논하시길 부탁드림니다. 그러나 자세히 모러는 부분을 가지고 사실인양 인터넷에 말씀을 삼가 해주시기 부탁드림니다.. 최홍희총재의 군서열은 박정희 전대통령 친구가 아님니다. 軍서열상 박정희전 통령의 대 선배이자 한국군 창설자 중에 한분입니다.. 그리고 국가 보안법상 어떤 벌은 아직 논하지 마시십시요! 국정원이 아직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물론 최홍희총재님이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한것은 인정합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보는 시점이 언제가 될련지 한틈 지나가고 보기로 하죠... 사형이니.. 하는 극적인 표현을 하는것은 삼가 해주시기 부탁합니다- 반대를 위한 비판은 답변하기가 힘듭니다........ 정순천-
TKD man 2002.08.21
맞습니다. 최홍희씨는 박 전대통령의 선배였습니다. 그래서 후배가 대통령이 되니까 배가 아팠던거예요. 박 전대통령이 하고져하는일에 전혀 협조를 않했으니까요. 그래도 박 통은 선배라고 최씨에게 많은 배려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 동남아 국가의 대사로 있을때 국가를위해 일은 안하고 오히려 반정부 활동을 했던거예요, 심지어는 유학온 한국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예요. 박 전대통령이 그를 본국으로 불러 다른 직책을 준다해도 그는 마다하고 캐나다로 간건데 핍박은 무슨 핍박입니까? 만약 박 전대통령이 그에게 선배 대접을 안해 줬드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최씨가 과연 온전 했을까요? 그 살벌한 시기에…..? 북한측에서 보면 그가 군 장성이였겠다 반정부주의자인 그를 이용할 가치가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북한으로 간겄이 태권도 보급만을 위해 갔다고 믿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최 씨는 자기생애가 다 되가는줄알고 대한민국에 묻히고 싶어 여러경로를 통해 노력했지만 실패를하고 타계를 한거죠. 아무리 햇볕정책이니 뭐니해도 집고넘어 갈건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걸 우리 정부에서 모를리가 있었겠습니까? 이제 좋지 않은 과거 얘기는 그만 하고 우리 다같이 힘모아 비틀거리는 태권도를 잡아 후세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깁시다. 안녕히….. 2002.8.21 태권도를 사랑하는 이로부터.
채수용 2002.08.22
항일운동 공모자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룬 최총재를 담당한 일본군 장교 박정희. 해방후 군사반란의 주동자로 잡혀온 박정희를 제판한 군사법원의 최홍희. 과연....
태권도 사범 2002.08.24
태권도란 명칭이 반세기를 흘러 국내외로 크게부상하여 태권도에 종사하는 우리모두의 측근들은 아직도 한결같이 때로의 슬픔과 애도를 말없이 고인의 명복을 수없이 묵도하며 태권도 행정권을 가진이들에게 미래의 좋은 태권도 발전을 기대하며 오늘도 도복떨어지는 낙으로 살아가고있다 태권도를 사랑하는이들이여! 우리는 이제 태권도가 어디에서 왔다라는 말에 왈가왈부할때가 아니다 우리가 자식을 낳으면 이름을 지워주듯 태권도는 분명 반세기의 역사를가진 세계적으로 잘알려진 태권도임이 분명하다 중요한것은 미래의 태권도를 어떤식으로 발전하여 나아가는가를 연구해야한다 과거의 학구적인 태권도역사를 뒤집어놓고 사실을 밝히는 정도의 논술로 어떻게하면 쓴논문이 잘완성되어 박사학위를 받기위해 떨면서 내놓은 논문자체가 빨리박사되어 좋은자리차고 돈벌어 밥처먹기위한 논문일뿐이다 양진방이나 땟갈좋고 중도아닌 일반 철학박사란 김용옥이가 도포자락 걸처입고 입방아찧듯 떠드는 소리나 책자를 뒤척여보면 태권도는 실체의 의미와 감정도없이 연필이나 주둥이로하는 태권도의 정도를 어디에다두고 떠벌이는지 알고싶다 우리 다같이 생각해봅시다 예를들자면 자식을 가진 어떤 일반한가정의 아버지가 도둑질하여 먹고살다 붙들려 감옥에서 산다하자 자식은 자신의 아버지를 어느누구에게 "우리 아버지는 도둑이야" 라고 말할수있겠는가 ? 현재 양진방이도 도복을 안입은 태권도인으로써 태권도를 욕되게하여 밥벌어 먹고산다면 각국각지에서 도복입고 열심히 땀흘리며 목이터지도록 기합소리에 정을 가진이들의 주먹에 센드백이 되어야할것이다 태권도는 어느개인의것이아니다 우리모두의것이다 우리태권도나 다른 타무술의 존빙성을 논하자면 어던 특종인물로 하여금 자신의 재주와 특기로 발전하여 각나라의 근성과 지방성에 힘입어 발전되어 마치 산정상에 떨어진 빗줄기가 물줄기로 변화되어 험난한 계곡을 지나고 수십벼랑의 폭포를 내려 잔잔한 강에 이르기처럼 반세기를 걸처 기술발전거듭으로 현재의 정교성과 각무술의 정립이라면 될것이다 고인이 되신 태권도정립시킨 이들에게 오늘날의 감사와 노고에 치하를 명복으로 돌리며 이제 계곡을 지나고 폭포를 지난 현재 태권도 발전은 지난날의 택견이나 당수도등등의 여러무도인들의 화합으로 이루어놓은 일보다는 어렵지않을것이라고 본다 우린 어딜가든 흔히 볼수있는 동상을 생각해보자 대학재단을 만든이들에겐 대학내의에 우뚝선 동상이 있고 서울 시내에 들어서면 나라를 지키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있고 각나라 각도시의 그어느곳에도 좋은 자리에 동상이 있다 그렇다면 평생을 우리태권도의 발전을 위하여 살다가 고인이 되신이 초창기의 태권도인들의 작은 동상하나 국기원에 세울수 없는가 ? 71년도에 "국기태권도"란 박정희대통령의 필체 하나로 오늘의 역사를 증명한다고 볼수있는가 ? 국기원의 좁은 동산에 역사의 산지로 판단하고 몰려드는 외국태권도인들에게 자랑할만한 국기원이될수있는가 ? 좁은 땅에 구석구석 도복장사의 돈방석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내주는 국기원의 행정인들도 잘나서 자리에 있겠지만 머리에 든것없는 판단력이 부족한 무식인이라고 본다 방에서는 이불깔고 잠자고 화장실에서는 똥오줌싸는법이다 태권도를 사랑하는이들이여! 이제우리 태권도는 빛좋은 개살구가 아닌 금빛의 살구로 만들어야한다 이제 올림픽에서는 스포츠 태권도로 발전해야 하고 각국 각지의 도장에서는 유치원체육관이 아닌 도장으로 발전하여 차후 세기에도 보기좋게 둥글고 빛좋은 금살구를 물려줘야한다 모두들 보셨겠지만 "월드컵축구"의 열기는 대단했았고 곧바로 이어진 "월드컵태권도"를 기억해보자 도대체 태권도 홍보부장은 무었때문에 있는지 알수가 없다 각종 메스컴과 보도신문과는 친구도 없나보지요 그렇다면 국기원마당이나 쓸어야지... 태권도가 위로만 발전하는것은 미류나무나 다름없이 큰바람을 만나면 넘질수있고 넘어지면 다시세워 현존하기가 힘들듯이 우리의 태권도는 수백년을 살아도 아랑곳하지않는 소나무처럼 성장해야한다 현재의 태권도경기를 생각해보자 엄청난 판정시비와 채점기의 어린이 장난감처럼 단추누르는 플레이 스테이숀같은 채점방식을 어느스포츠 어느종목에서 볼수가 있단말이요 금년에 치뤄진 한일월드컵으로 국민모두가 잘보았듯이 그렇게 대형관중을 동원되고 잘발전되고 오랜역사를 가진 축구를보아도 주심도 맨몸으로 뛰고 부심도 이쪽저쪽 뛰어다니며 기를 들듯 어느스포츠가 경기장내에서 우리 태권도처럼 컴퓨터를 사용하나요 ? 태권도는 강한정신력을 바탕으로 고난위도의 기술을 바탕으로하는 스포츠이자 무술입니다 어떻게 무술경기를 하는 경기장바닥을 보란듯 임원들은 구두발로 밟고 다녀도됩니까 ? 우리에겐 태권도정신이 못박혀있어야 태권도의 올바른 기강을 세울수있다 우리모두 모범이 되어야 한다 좋은 물이 위에서부터 흘러야지 넓은 강이 깨끗합니다 태권도경기 규정을 속히 정립해야 한다 우리 태권도는 무술경기인만큼 강한투지를 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보다 더많이 때리고 더많이 부닥치는 태국복싱이나 유사의 치고받는 각경기를 보면 알수있듯이 강한경기일수록 경기중단수가 적고 이삼십여년전의 태권도경기와 약삽한 오늘날의 태권도 경기는 너무도 많은 차이점이 문재다 조금만 부상이면 넘어지는 방식을 벗어나 처음부터끝까지 열심히 뛰는 경기로 부활해야한다 그러기위해선 현재의 부상일경우의 1분계시를 30초로 바꿔 항상 긴장으로 연결해야되고 채점방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컴퓨터로 발전됐는지는 잘모르겠지만 맨주먹맨발로하는 경기에 는 단순한 부심 장비대책을 세워야하고 채점은 채점테이블에서 첨단방식을 이용해야한다 태권도를 사랑하는이들이여 ! 올바를 태권도 발전을 위해 좀더 냉정하고 맡은바에 충실합시다 아울러 태권도를 사랑한다면 태권도란 이름을 남겨두고 고인이되신 최홍희 총재께 명복을 빕시다 2002년 8월 24일 지구한구석의 태권도사범
태권가이 2002.08.28
** 아래내용들 모두 잘읽었소이다! 헌데 밑의 TKDman님의 내용이 상당히거슬리는군.! 대체 최홍희총재님에대해 얼만큼안다고그런말을하는가..! 말이나왔으니 한마디하겠다.! *최홍희(호는 창헌itf태권도의 창시자이며 태권도 라는무도명을작명한 인물임) 1918.함경북도 화대출생 일본중앙대학재학당시 카라태를 배운그는 조선에귀국 평양학병사건의 주범으로일제로부터 사형선고받기 며칠후에 광복이 되어구사일생으로살아났고 해방이후국가재건에참여1945년 서울 군사영어학교(국군창설요원)를수료후군문에 입문했다.그후 초특급승진육군장군이됨 초대태권도사단인 이크사단을 창설 1958년 대한태권도협회를창설해 초대회장을지님 1961년 육군소장으로예편하고 62년엔초대 말레이시아대사 역임.최홍희가펴양학병운동을일으켜옥고를 치를당시박정희는일본만주군 장교로서 독립군울 잡고다녔으며 광복이된 나라에서창군멤버로다시만남.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군사법정의 재판관중의 한명이 최홍희였는데 비열하게도 박정희는 동지들의명단을 넘겨 배신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후일 박정희는쿠데타를일으켜 대통령이되고 눈에 가시격인 최홍희를 군에서쫓아네 말레이시아로 내보냈다. 학창시절부터 일제에 반기를들고 일본과 백년전쟁을선포해 태권도를 만든 최홍희와 쿠테타후 전원군임무로 돌아간다는 당초혁명공약을 무시하고 결국대통령으로 장기집권후 피살된 독재자박정희를 과연누가 진정한 애국자 였는가를후세의 심판에 평가해볼텐가?!! 최홍희는 오직태권도 발전을위해 개인적욕심을 버리고 망명도 불사르고 빨갱이란 소리까지들으면서까지 사회주의국가나 북한에태권도를 보급한이유를남들에게 욕까지들으면서도 태권도를 살리기위해 뛰어다닌 결과를 오늘날 정치이데올로기에 구에받지않고 순무한무도의이념으로 멀리바라본그를 지금의 무도인들과 후세들은 높이평가하고있다!! 그리고 말이나왔으니하는 애긴데.. 도대체그렇게 최홍희를 부정하면서 태권도라는 무도명을 왜 그토록고수하는지 모르겠다 아예 태권도에 권 을빼고 처음처럼 태수도라고 하든지.. 아님아예 집어넣지말고 태도라고 하던지..뭐 시합에서도 손을좀처럼 사용하지않으니 딱어울리는구만..또. 족도,족술도,족기술등등(꾀 심했나?).최근 지나친경기화로인해 일부에선 무도의 본질로 회귀하자고하지만 태권도 본연의기술이 카라테인데 카라테를 카라테로 인정하지못하고 카라테잔당들을 모아 전통무술로 덮어씌우니 아무관련없는 택견까지 연관시켜 태권도(ITF의)까지빌어쓴것이다. 본인도 현재 WTF태권도를 하기때문에 맹목적인 비난은 힘들지만.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인정해 주는게 현명하리라 믿는다. 물론WTF도 인정해줄것은 짧은시간에 전세계에 보급해 무도로써 가장많은 수련인구를 보유했으며 경기화에성공해 그결과로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등의 성과도무시할순없다. 또 발차기 기술만으로 볼땐 전세계 그어떤무술도 태권도를따라올수없다.또하나 시범발차기를 볼때는 가히 환상적인데 묘기가 속출하며 화려하고아크로바틱하다.이는 경기화로인한 발전이기에가능했지만 그결과로 손기술이 퇴화된 느낌을 지울수없다. 암튼 서로를인정하고 기술교류도추진하며 태권도통합이 되는방향으로 나아갔으면하는 태권도인으로써의 바램이다..!!
뉴욕 2002.09.01
History will big punish you. 역사의 큰 벌을 받을 것.
김정곤 2002.09.03
순수한 스포츠란게 과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할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들고 ... 협회건 연맹이건 윗자리로 올라갈수록 정치와 가까워진다는 생각도 들고 .. 군부독재 아래에서 ... 그들에게 저항햇다면 ... 잘한거 아닌가 ? ( 지금 대통령하고 잇는 사람도 ,,군부독재 시절에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노 ? 저 인간 안 죽나 ? 그런 대접 받앗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빨갱이로 찍혀서 ..외국으로 피신하고 암살위협까지 받앗다는 건 ... 애들도 아는 사실인데 .. ) 그렇게 보자면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도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일본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 친일 매국노구만. 참내 .. 그들을 못챙겨준 우리가 한심한거 아닌감 ? 고향 싫고 조국 싫은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 ( 허긴 ...요샌 이민가고 싶다는 사람도 많지만서두 .. ) 할짓없는 인간이 썼습니다.
어설픈아놀드 2002.09.03
글을 읽어보다가 당신들이 도대체 얼마나 살았는지 궁금해지는군... 적어도 우리는 故최홍희총재 시절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모두 전해들어서 혹은 어디에 올라와 있는 글을 읽고 난뒤 자기 머리속에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서 여기나 혹은 다른곳에 글을 올리거나 다른사람들과 태권도가 이러니 저러니, 최홍희가 어떠니, 저떠니를 떠들고 있을거다. 역사를 떠벌리는 여러분들은 우리 한민족의 땅이 어디까지였는지 알고 있는가? 모두 알고 있을거다. 우리 조상들이 누비고 다녔던, 만주 벌판을... 북한...남한... 우리는 모두 같은 한민족이다. 여러분들이 얘기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어릴적에 배웠던, 방공사상이 머리속에 베어있기 때문에 이런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한민족이다. 같은 핏줄의... 반역(?), 배신(?).... 우리는 모른다. 왜.... 우리는 그 시절에 살지 않았고, 그 분들과 같이 얘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왈가왈부할 내용이 아닌거 같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태권도가 하나되는 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다. 마지막까지 횡설수설한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글을 읽고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렸습니다. 대구의 吳道館 후예..
태권도? 2002.12.19
성숙하신 분이로군요.. 다들 님만 같았다면... 훌륭하십니다요!
ㅋㅋㅋ 2003.10.04
최홍희 총재를 핍박하고, 최영의 총재가 그토록 원하던 고국땅에서 자신의 무술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는 김운용 총재 인명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고. 박정희는 역시 일본육사 출신의 반민족분자기질을 가진자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