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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태권도 승부조작 파문


2000년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 세계태권도연맹측이 한국 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심판에게 압력을 가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해 국제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USA투데이는 신동아 4월호에 실린 이종우 국기원 연수원 부원장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올림픽 당시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였던 이씨가 심판에게 간접적으로 압력을 넣은 사실을 시인했다"고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이부원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심판을 배정할 때부터 이 사람은 된다, 안된다는 식으로 내가 결정하다시피 했고, 한국 선수에게 감점을 준 심판에게는 겁을 줬다"고 말했다.

또 "예선전부터 강적들을 (심판을 통해)미리 죽이는 가지치기도 했다"며 "그러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한두개밖에 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올림픽위원회(USOC)는 이에 앞서 지난주 이부원장 발언의 진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도록 세계태권도연맹측에 요청해 왔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미국 대표팀의 단장이었던 존 할러웨이는 "예선전 때 한국 선수에게 감점을 준 콜롬비아인 주심이 이후 경기 배정을 못받고 귀국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심판을 맡았던 브루스 해리스 미국 태권도연맹 이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도 한국 선수 경기의 심판을 여러 차례 봤지만 어떠한 압력도 없었다. 특히 이씨는 당시 심판을 배정할 권한도 없었고, 영어도 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 사건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짐 이스턴 IOC 집행위원의 말을 인용해 IOC가 문제의 태권도 승부조작설을 조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동아 기사는 영문으로 번역돼 지난 몇주간 세계 태권도계와 미국의 IOC 위원들에게 배포됐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연맹 선재훈 사무차장은 "이미 지난 6월에 IOC로부터 이부원장의 인터뷰와 관련한 문의가 와 이부원장이 과거 태권도 심판 판정의 잘못된 점을 얘기하면서 몇가지 사례를 들었을 뿐 시드니올림픽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을 한 바 있다. 당시 24명의 심판들에게 압력 여부를 조사했으나 이들이 모두 부인한 바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관련기사>

IOC,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승부조작설 조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한국선수들의 메달획득을 위해 심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 한국측이 편법으로 승부를 조작했다고 주장한 이종우 전 국기원 부원장의 폭로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6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심사대상이 된 태권도" 제하의 기사에서 IOC는 이 전 부원장이 지난 4월 한국 월간지 신동아에 한국의 태권도 강국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드니 올림픽 승부에 개입했다"고 주장한 발언을 중시, 그 사실여부를 규명키로 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짐 이스턴 IOC 집행위원의 말을 인용, IOC가 문제의 태권도 승부조작설을 조사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동아에 실린 문제의 기사는 영문으로 옮겨져지난 몇주동안 세계 태권도계에 유포, 최근에는 미국 IOC 위원들에게도 배포됐다고 말했다.

시드니 올림픽 승부조작 주장을 한 이 전 부원장은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시드니 올림픽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승부에 개입했다면서 "내가 심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단지 1-2개의 금메달을 따는데 그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이스턴 집행위원은 "이 전 부원장이 태권도 내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인지 아니면 정직한 내부 고발자인지 여부가 아직 확실치 않다"며 "이 전 부원장은 자신이 한국선수들이 이기도록 하는데만 개입한 게 아니라 경쟁 선수가 결승전에 오르지 못하도록 탈락시키는데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빌 히블 전 미국올릭픽위원회(USOC) 위원장은 이와 관련, "신동아에 실린 기사를 봤다"며 5일 서울에 있는 WTF 본부에 팩스를 통해 이에 대한 조사를 정식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히블 부회장은 이에 관해 김운용 WTF 회장과는 논의하지 않았다며 운동선수는 심판제도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그 주장이 어떠하든 철저히 조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니타 드프란츠 IOC 위원은 이번 문제는 IOC 윤리위원회에 넘겨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신동아는 지난 4월호에서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 충격고백"제하의 기사를 싣고 ▲시드니 올림픽 승부 개입됐다 ▲최홍희와 김운용의 태권도 주도권 쟁탈 ▲김운용에게 태권도 6단 준 내막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댓글 10

새나라 2002.08.08
태권도에 피와 땀을 쏟으며 오늘날 최고의 격투기 스포츠로 발전시킨 일선의 지도자들과 해외 사범들의 등에 비수나 들이대는 등신같은 것들이 원로라고 국기원과 세계연맹에 어슬렁거려대니 태권도가 엉망이 되어가는겁니다. 이종우는 세계를 떠돌며 단장 장사를 한다는 비아냥의 대상이기도 하고 어설픈 가라데 조금해서 아직까지 태권도계에 원로 운운하며 돌아다니는데 제발 이번 기회에 이런 등신들은 태권도계에서 제거하고 젊고 양식바른 젊은 지도자들이 나서서 태권도의 본정신과 정도를 회복할 수있게되었으면 합니다. 이종우는 태권도의 명예와 국가명예를 실추시키고 세계스포츠계에 또 다른 혐오감을 만들어 낸 국제 스포츠 범죄인으로 단죄를 해버렸으면 합니다. 아휴 성질나.........
으이그 2002.08.08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실을 내포한 작자는 진짜 매국노나 다름업는 작자다! 북경올림픽때 중국에서 태권도를 빼내고 우슈로 대체할려는 마당에 이게 무슨 사건을 일으켰는데요? 이사건 내포한자! 매국노다!
ㅎㅎㅎ 2002.08.08
누가 그런 말도안되는 소리를!!! 승부조작이 가능한게 어디있냐? 그넘 친일파아냐? 그런소문이 무성하던데 뭐가 태권도 개혁이니 뭐니 떠들면서 진정 중요한건 모르는 매국노나 다름없는 넘이지
열받네 2002.08.08
태권도도 이미 끝났다 그 원인은 이종운지 매국논지... 지금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할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애국자네(?) 그게 태권도 사랑인가? 영원한 매국노로 매장시켜주지!!!
cho ji 2002.08.09
욕심을 버립시다
공수인 2002.08.09
신문에 이미 보도되어 다알고있는 사실 태권도의 원로대신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께서 말하다 당수도 공수도에서 시작된 충격기사발언등 야후를 검색해봐염
정근표(대학강사, 경희대 석사) 2002.08.14
A Taekwondo history with class 1954년 4월 11일에 있었던 “명칭 제정위원회”의 활동은 한국의 문화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서 이날은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가 발생한 날이다. 이는 그 후 반세기 이내에 한국의 고유한 문화 양식으로는 최초로 완벽한 세계화를 이룰 대상에 그 명칭을 부여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면적으로는 당시까지도 다양하게 불리던 한국의 전통무술들의 명칭을 통일, 단일화 한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명칭의 통일이라는 의미에 머무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무술 일반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선행된 것이었으며, 한국의 전통무술을 무엇으로 개념화 할 것이며, 이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 인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의미했다. 태권도의 전통(traditional) 혹은 정통(legitimate)무술로서의 성격을 부인하거나 또는 상대화하려는 논의들은 이 같이 기 성립된 사회적 합의를 망각한 것이거나 부인하려는 견해들로서 그 같은 명칭 성립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에 관한 인식이 매우 빈약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본고에서는 태권도라는 한국의 전통무술의 명칭 제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최근의 태권도 역사 관련 논의와 관련하여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태권도라는 명칭의 제정은 50년대 이전에 난립하던 여러 전통 무술의 명칭을 통일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명칭의 통일이 아닌 전통 무술의 개념 정립, 나아가 무술 일반에 대한 개념의 정립이 선행된 작업이었다. 즉, 기술(Technique)적 의미가 아닌 인류의 행위양식이 가지는 보편성이라는 역사주의적 의미에 바탕 한 무술 개념을 깔고 출발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인류 보편적 적수공권 이라는 개념에 기반 하지 않고는 여러 성격이 상이한 무술 단체들을 단일한 명칭 하에 묶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술의 기술이 가지는 인류보편성이라는 성격에 착안한 것으로 세계의 각종 무술들이 그 명칭의 차이에 불구하고 실제 기술에서는 개인별 다양성이나 수련 체계의 상이성 등의 요인을 빼고는 실제상 어떤 유의미한 기술적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시각에 기반 한 것이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최초로 제안한 최홍희 장군은 이를 불(Fire)이 그 실체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다른 명칭으로 즉, 영어에서는 “파이어”로 러시아에서는 “아궁”으로 중국에서는 “훠”로 불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무술 개념 일반을 이처럼 인류 보편성의 차원에서 접근했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태권도라는 명칭 자체도 발과 손을 의미하는 한자음인 태(跆)와 권(拳)으로 조어를 하여 태권도가 어떤 특정한 동작들을 한정적으로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이 손 두개, 발 두개로 수행하는 모든 무술 동작을 망라하는 보통 명사적으로 쓰일 것을 의도했으며 이는 위에서 보듯 최홍희 장군의 의도적인 개념 접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개념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재래의 태껸 기술이나 가라데, 또는 중국 무술에 기반 한 여러 무술 단체들이 하나의 명칭 하에 통합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최초로 제안한 최홍희 장군은 자신이 어려서 한학의 대가인 한일동 선생에게 직접 태껸을 사사 받고 연마한 태껸의 발기술과 일본 유학중 배운 가라데의 손기술을 종합하여 이처럼 자신의 태권도 기술을 완성했다고 하여 그 같은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진보적이며 선각자적인 무술 기술의 인류 보편성에 대한 자각의 등장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초창기에 태권도계의 핵심 계파였던 무덕관이라는 무술 단체의 창시자인 황기의 경우도 어린시절 배운 태껸의 기술이 모체가 되었고 나중에 만주서 익힌 다른 무술 의 영향 하에 그 수련 체계를 완성했다 하여 전술한 최 홍희 장군과 동일한 인식에 기반 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무술 일반을 바라보는 이 같은 개념적 진보성은 이들 초창기 인사들의 만주, 일본 등에 걸친 국제적인 활동이라는 개인적 이력과 더불어 태권도와 그 명칭의 발음상의 유사성을 갖고, 또한 그것의 일종의 한자어로서 만들어 졌던 대상물인, 또한 역사 계승의식을 그곳에 놓아둔 대상물인 전통 무술 태껸이, 최근 정근표가 논한바와 같이, 각종 사서에서 그 명칭의 용례를 볼 때 어떤 특정한 기술 체계를 가진 일정한 패턴의 고정화된 무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상은 비무장 전투 기술 즉, 인류 보편적 적수공권 일반을 지칭하는 명칭이라는 점과도 큰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여러 사서들에 등장하는 태껸, 탁견, 수박등의 무술 명칭은 어떤 단일한 특징을 가진 특정한 무술의 명칭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예를 들어 공수도 시범을 본 이승만 대통령이 “태껸이구먼” 하고 일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태껸의 보통 명사적 용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시범을 보인 기술이 최홍희의 주장과 같이 태껸의 기술이 가라데 기술과 혼합된 형태였다 해도 그것이 이승만의 기억 속에 있는 태껸의 기술과 일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당시 시범을 보인 이들이 최장군의 직계 제자들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이들 인점과 설혹 그렇다 해도 무술기술의 개인별, 지역적, 혹은 계파별 다양성을 고려할 때 위 양자가 Identical한 기술이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같은 사서들에 등장하는 태껸이 어떤 특정한 동작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면 분명 어느 정도 계파 혹은 유명한 고수를 중심한 지역적 분파를 기준한 기술 계통의 분리를 지칭하는 예를 들어 “최충헌류 태껸”, “이의민파 수박희”등의 용례가 보여야 하지만 그 같은 세부적 기술 차이에 기준한 명칭의 다양성이 전혀 없이 그냥 “태껸”, 또는 “수박희”라고 칭해지는 것은 이것이 고유 명사가 아닌 “비무장 전투 기술”일반을 칭하는 보통 명사였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태껸이 현재처럼 일정한 체계적 수련 과정을 가지고 않았고 “관”과 유사한 행정조직등도 없이 마치 과거의 시골 장터 씨름판 기술이나 제기 차기처럼 전혀 비체계적으로만 전수, 수련 되던 것임을 볼 때 이것이 어떤 특정한 동작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라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최근 송덕기옹의 기술에 바탕 하여 태껸이 부흥 재생되어 그 직계제자인 인간 문화재 정경화에 의해 맥이 이어지는 것은 태껸의 모든 기술을 망라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해도 외국 무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토종 태껸기술의 전수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아무튼 이 같은 태껸의 명칭이 지니는 보통 명사적 성격과 최홍희나 황기같은 초기인사들의 여러 무술을 망라한 개인적 이력에 비춰 볼때 “태권도”의 명칭이 인간의 행위양식의 보편성에 기반한 보통명사로서 “태껸의 순 한글 명칭의 한자어로서 한국의 모든 전통 무술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서 개념 정립이 되고 이어 동 명칭 제정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그 역사적 대장정을 출발한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그 명칭의 제정은 단순한 명칭의 제정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무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정립이 동시에 행해진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은 구체적 기술 중심의 역사관이 아닌 역사계승의식에 중심을 둔 사관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명칭제정위원회는 사회 각 분야의 원로들이 참여한 것이었다. 즉, 이들은 한국사회의 대표성을 보지하고 있었던 것이며 태권도라는 명칭은 이를 전통 무술의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우선 태권도에 정통성(Legitimacy)을 부여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즉 태권도는 한국의 정통무술의 적자로서 태어난 셈인 것이다. 동시에 태껸의 명칭과 동의로서 즉, 한자와 순 우리말의 관계로 태어남으로써 전통성(Traditionality)을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건 이후에 어떠한 전통무술임을 주장하는 맨손무술도 그 명칭은 태권도로 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약 태권도의 명칭이나 행정 조직 하에 있지 않다 해도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전통무술을 표방하려 할 경우 “태권도”라는 개념의 하위 개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만약 태권도의 역사적 정통성(Legitimacy)이나 전통성을 부정하며 그 자신의 독자적 정통성이나 전통성을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면 이는 아무런 사회적 합의에 바탕하지 않은 독단적 주장으로 기 성립한 사회적 합의를 무시 한 것이거나 그 의의를 전혀 이해 못하는 사이비임을 면 할수 없는 것이다. 통상 정통성(Legitimacy)이라 할 경우 태생적 정당성, 즉 성립이나 출발에 있어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업적에 의한 정당성(Legitimacy by doing)이 필요한바, 과거 박정희 정권이 경제 부흥의 성공에 의한 “업적에 의한 정당성”은 갖추고 있었음에도 쿠데타에 의한 집권이라는 절차적 정당성 즉, 태생적 정당성을 결여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태권도에 적용할 경우 사회적 대표성을 갖춘 명칭제정위원회에 의해 사회적 합의를 얻고 성립됐다는 태생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을뿐더러, 동시에 국내적으로 국방 및 국민 체육과 교육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세계화와 경기화에 크게 성공하여 올림픽 가입에 까지 성공하였고 한국 고유의 정신과 신념 체계라는 한국의 고유의 고급 정신문화를 세계에 보급하여 부수적으로 한국의 문화 외교에 크게 기여, 국익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업적에 의한 정당성이라는 요건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태권도는 분명 정통성(Legitimacy)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전통성(Traditionality)라는 측면서 볼 때도 기술적으로 최홍희나 황기등 여러 초창기인사들이 전통 무술(Traditional martial art)인 태껸을 기술 체계에 포함 시켰고 지난 6, 70년대 이후에는 송덕기류의 태껸기술을 다수의 태권도인들이 배워 현대 태권도기술이나 동작의 명칭에 적용하여 온 점과, 무엇보다 명칭 제정 위원회에서 태껸에 계승의식을 두고 그 와 발음이 유사하고 인류 보편적 비무장 전투기술이라는 그 기술 특징에 걸 맞는 태권도라는 한자어를 태껸에 대한 한자어 정도의 동의어로서 사회적 승인을 얻었다는 점에서 전통성의 요건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명칭제정위원회에 의한 태권도라는 명칭의 승인은 그 태생적 정통성과 전통성을 마련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생적 정당성도, 절차적 정당성도 그리고 전통성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단체에서 독점적인 정통성과 전통성을 주장하는 것의 불합리성과 비 논리성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태권도라는 명칭의 성립과 사회적 승인의 획득은 역사계승의식의 중요성을 자각하여 이를 명칭에 반영했다는 의의가 있다. 사실 전술한 바와 같은 인간 행위의 인류 보편성이라는 관점서 볼 때 무술 기술의 명칭에 따른 구별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한국인 태권도 사범인 이준구에게 태권도기술과 스텝을 배운 이소룡이 영화속에서 태권도 발차기를 구사하여 일반에 쿵푸기술로 알려진 것이나 지난 86년 아시안게임 태권도경기에 다수의 가라데 유단자가 태권도 단증을 급조하여 태권도 경기에 참여하여 태권도 기술(?)을 보인것, 최근 중국에서 다수의 우슈인들이 태권도로 전향, 태권도 경기에서 쿵푸성(?) 태권도를 실현하는 경우 등에서 보듯, 무술은 그 명칭에 따른 구별 만큼이나 뚜렷한 기술의 유의미한 차이는 볼 수 없는 것이며 실은 소속된 행정조직이나 전통의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볼수 있는 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결국 무술의 역사적 전통성을 가르는 기준으로서 중요한 것은 역사 계승의식일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지 “우리는 태껸에 역사 계승의식을 둔다”하는 식의 선언적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그 명칭을 동일하게, 즉 태껸이란 명칭과 발음이 유사한 한자 조어이자 그 동의어로서 태권도라 명명하여 그 역사 계승을 분명히 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즉, 태권도라는 명칭의 성립과 사회적 승인의 획득은 태껸을 계승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역사 계승의식의 선포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과거 고려가 그 행정조직에 있어서나 다수의 인적 연속성의 면에서도 신라와 큰 관련이 있었음에도 고구려에 역사 계승의식을 두어 고려라 국명을 정한바 있었고 조선의 경우도 수 천년의 시차가 있는 고조선을 계승하기 위해 그 국명을 조선이라 한 예도 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일제에 의한 역사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헌법에 학문이나 관료층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적인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총독부가 아닌 상해 임정에서 국가의 법통이 계승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 바도 있다. 실제로 일시적이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연속성이나, 왕의 칙령의 변경이나-현대에 들어서는-법률의 개정에 의해 단 하루만에도 뒤 바뀔 수 있는 제도의 연속성에 의해 역사적 전통성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일수 있으며, 인간의 의식이 실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 요소임을 감안 하면 역사계승의식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태권도도 그 명칭 등장 초창기에 바로 이 같은 작업을 한 것이며, 개인별로 다양성을 가질 뿐 아니라 경기 규칙이 바뀌면 단기간 내에 변화 가능한 즉, 가변적 요소인 기술보다는 이 같은 역사계승의식의 뚜렷한 표명이 역사적 전통성의 결정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태껸에 역사 계승의식을 둠을 만천하에 공표한 태권도라는 명칭의 제정은 이 같은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태권도라는 명칭의 등장이 전제했던 “무술 기술의 인류 보편성”이라는 사고는 과학주의적, 합리주의적 역사관을 전제했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사실 후에 -최홍희 본인의 경기화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권도가 신비주의적 세계에서 탈피하여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된 무술로서 각 무술가들의 기량을 현실적으로 겨루어 보는 장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스포츠화(또는 경기화)가 진행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과학주의, 합리주의적 역사관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무술 기술의 개인적 다양성이나 가변성, 상호 영향등을 고려하면, 그 기술의 수대에 걸친, 또는 수백, 수천년에 걸친 순수한 전승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볼수 있다. 즉, 기술적으로 볼 때 명칭에 구별에 의한 독특한 기술의 누대에 걸친 전승의 신화보다는 개인적 다양성이라는 구별과 특징화가 보다 유의미한바, 이는 개인의 기술의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변화가 가능하고, 명칭의 구별에 기반한 어떤 무술의 순수 혈통적 기술이란 사실 매우 유아적이고 유치한 단계의 사고일 수 있다. 그러나 태권도라는 명칭의 등장은 이 같은 전승의 신화를 과감히 뛰어 넘어 인류 보편적 적수공권으로 개념화한 합리주의와 과학주의에 기반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기실 수정주의측의 비판과는 반대로 이 같은 인식은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전혀 수구적이거나 전통에 얽매이는 반동적 자세가 아니었다. 다만 기술적으로 볼 때 태권도는 태껸을 비롯한 한국 무술의 전반적 성향인 발기술 위주의 전통은 계승한 점은 사실이며 이는 인류의 행위양식의 보편성을 전제할 경우에도 일국 무술이 가지는 또는 어떤 단일 명칭의 무술이 가지는 전체적인 기술의 지향성이나 기본적인 공통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수 있으며, 태껸을 수련하여 그 기술 체계에 반영했다는 초기인사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에는 많은 개인적, 지역적, 시간적 차이에 기인한 예외들이 있다. 이는 보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본다. 중요한 것은 태권도라는 명칭의 등장은 기술의 누대에 걸친 전승의 신화를 뛰어넘은 합리주의적, 과학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에 의한 무술 기술의 인류 보편성이라는 사고는 현대 태권도 과학화의 선구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전술했다시피 그 같은 열린 사고가 없었다면 다양한 전통의 서로 다른 무술 단체들이 태권도라는 명칭하에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수정주의는 태권도를 태껸과 인적, 기술적 연속성을 가진 전통무술로 보는 시각에 수정에 가하려는 일군의 학자집단으로 소수설인바, 그 주장점을 요약하면, 태권도는 태껸과 인적, 기술적 연속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 같은 주장을 하는 초기 인사들의 언명은 사실로 보기 어려운 역사왜곡이고, 가라데 기술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태권도는 60, 70년대 경기화를 통해 태껸기술의 부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태권도라는 명칭 제정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볼수 있다. 먼저 이들은 전술한 바와 같은 태권도라는 명칭 성립의 전통성 및 정통성확립의 역사적 의의를 몰각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이를 몰각함은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홍희와의 개인적인 불화와 더불어 경기화라는 노선설정에 대한 이견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최홍희와 갈라서게 된 이종우등 경기화 추진 1세대원로들은 태껸이란 명칭을 제정하고 이에 선각자적 인식과 전술한바와 같은 의의를 부여한 최홍희의 업적을 가능한한 무효화 또는 평가절하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이들이 신비주의에서 과감히 탈피, 경기화를 추진하여 오늘날과 같이 태권도를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점과 김운용이라는 희대의 인재를 영입하여 세계화에 성공한 혜안을 가질 수 있었던 점에서 높게 평가되어야 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들이 그 같은 이견을 좁히는데 실패하고 최홍희와 결별한 후에 그의 그 같은 역사분야의 업적을 무효화하기 위해 왜곡된 수정주의를 양진방과 같은 젊은 연구자를 통해 유포시킨 것은 크게 비판 받아 마땅하다. 수정주의의 최초 주장자인 양진방이 이종우등 반 최홍희계열 원로들의 후원으로 국기원의 간부를 맡았다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 대학교수로 까지 진출했음은 이미 장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이것이 정통주의의 지나친 정치색과 역사왜곡을 크게 비판 했던 수정주의가 그 실체는 더욱 정치적이었고 더 많은 TEXT왜곡을 하게 되는 배경이다. 최홍희이래 그 뒤를 이어 나현성, 정찬모등 걸출한 학자들이 정립한 정통주의적 태권도 사관들은 아직까지도 학계와 일반의 정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정치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지난 86년 양진방이라는 젊은 학자의 석사논문 한편 으로 그리고 뒤이어 지식인층에서는 경원시되는 김용옥이라는 학자의 노력도, 공도 엿보이지 않는 단 1주일 만에 쓴 성의 없는 글 한편에 전통주의가 크게 흔들리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경희대학교의 최영렬 교수등과 같은 이들은 이를 상당히 정교하게 비판 한바 있었고 그 후 주로 그의 제자를 중심으로 한 젊은 신진연구자들에 의해 전통주의가 점차 정교화되고 오고 있으며 현실적 학문적 헤게모니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수정주의에 완승을 거둔바 있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태권도인 이창후가 바톤을 이어받아 동 작업을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태권도계 내에서 조차도 적지 않은 이들이 수정주의를 옹호해야 개명된 태권도인으로 보인다는 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이에 경도되어 있는 상황이고 김용옥이라는 개인이 가지는 유명세로 인해 그의 글도 일반에 꾸준히 읽히고 있어 전통주의 옹호 연구자들의 더욱 큰 노력이 요망되는 상황이다. 태권도의 명칭제정의 역사적 의의는 전술한 바와 같이 단순히 명칭의 통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무술이 무엇인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의미했고 그후 태권도가 반만년 전통무술의 역사를 계승한 적자로서 국내외에 소개되고 또 그렇게 세계화 될 수 있었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그 같은 역사적 의의를 몰각한 것이거나 반만년에 걸친 한국 무술의 전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또한 정통성이란 측면서도 태권도는 이를 계기로 태생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며 그 후 세계화에 성공하여 업적에 의한 정당성이란 측면서도 정통성을 확립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권도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도 이 같은 명칭 제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 후 태권도의 세계화와 국익에의 기여라는 역사적 사실 조차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서 볼 때 태권도라는 명칭제정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본 글을 저자의 허락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논문등에 인용없이 무단 사용하면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 될수 있습니다.
슬픈이` 2002.08.15
하여튼 이종우 국기부원장 그 씹새는 안돼.. 그 인간이 울나라 태권도계를 다망친다니까..매일 개소리만 하고 김운용 똥구녕이나 계속 할타라...
공부하자 2002.08.17
그렇게 보니 그렇다.공부하니까 되잖아..
정근표 선배님께 2002.08.21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 임승민입니다. 혹시 선배님이신가 했는데 문체를 보니 선배님이신것 갔아서 직접 메일을 보내려 했는데 선배님 메일 등록이 안되셔서 의견란에 올립니다. 저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병역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알려 드리겠습니다. 메일 주십시요. 제 메일은 tkddoctor@hanmail.net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