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정체성
- 연재를 시작하면서 -
태권도의 정체성 혼돈에 대한 문제는 30여 년에 걸친 오랜 기간동안 곪아온 제도권 안의 비리에 서 시작한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진행(?)중에 있다.
1983년 처음 태권도사범을 처음 시작 했을 때, 나는 자만심과 주먹 공장의 공장장으로서 희열을
느꼈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범을 하면서 제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태권도 외형적 실력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생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여러 관장님을 모시면서 사범생활을 했던 20대가 아직도 아련하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당시 내가 수련했던 태권도가 "무도태권도"의 색채가 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30대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고 태권도의 정체성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가방하나 달랑 매고
또 다른 태권도를 찾기위해 유럽을 찾아 헤맨 1993년부터 국제연맹 故최홍희 총재의 죽음까지를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느낀 태권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이야기 해 온지 벌써 4년이다.
필자는 현직 태권도사범이다. 명함에 화려한 학력(學歷)이나 이력(履歷)도 없는 그저 태권도
사범일 뿐이다. 나는 태권도 사범이 참 좋다. 미완성인 "무도 태권도인"으로서 지금도 정진, 수련하면서 땀을 흘릴 수 있는 "태권도인"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 부족한 글을 거창하게 제목까지 달아서 올린 것은 북으로 간 태권도,
밖에서 본 태권도사, 쓴소리 로 구분하였다. 앞으로 무토를 통해서 앞서 말한 제목으로
부끄러운 연재를 하려고 한다. 나는 내 글이 지금도 수련 중에 있는 태권도와 무도를 사랑하는 평범
한 사범의 글로서 네티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 갔으면 한다. 욕심이 있다면 필자의 부족한 글들이 태
권도개혁과, 남북태권도통합을 이루고 나아가서 한국무도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태권도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태권도의 정체성"
전 세계인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우리의 자랑 태권도가 정체성의 혼돈과 한국내의 비리로
심각한 내홍이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3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표류하고 있다.
태권도란 무도의 명칭이 정착하는 과정에서부터 비리의 씨앗들은 잉태되었다.
이승만정권으로부터 박정희 군사정권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태권도는 국기원이란
철옹성에서 철저히 보호되면서, 겉으로는 세계화를 향해서 달리고 안으로는 전제군주와 같은 원장과
부원장이 작금의 비리를 만들어 내었다.또한 검증도 안된 태권도의 역사를 삼국시대로 포장 왜곡한 학자들까지 학회와 제도권에서 활동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왜곡된 태권도의 역사를 부추겨 왔다.
필자가 1983년 태권도역사를 처음 접할 때와 지금의 태권도사를 비교하면 강산이 열번은 변
한듯하다.
국내 일류대학의 태권도 동아리 홈패이지와 국기원에서 쓴 태권도사를 면면히 살펴보면 시
대상황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가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跆拳道史에서 사라져 있었야 했던 故최홍희란 이름이 이제와서 태권도사에
서 슬며시 거론이 된 것은 불과 3년전 인터넷 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 서면서 시작했다
이승만정권의 잘못된 민족주의와, 몇 사람의 아부성 붓으로 쓴 태권도역사가 오늘날 "태권도
사의 모습"이다.
태권도역사의 핵심에 있던 국제연맹의 최홍희 총재는 이제 세상을 떠났고, 한국 내 태권도계
도 이대로는 안된 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팽배하지만, 40여 년의 세월로 점철 되어 온 "태권도역사
의 허구성"과 "태권도계 비리"는 같은 수레바퀴로 달려 왔다. 아직도 태권도는 정체성의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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